법원 ‘유해 작업환경이 암 발병 원인’ 인정

법원 ‘유해 작업환경이 암 발병 원인’ 인정
구교형 기자 | 입력 : 2011-06-24 00:23:34ㅣ수정 : 2011-06-24 00:23:40


ㆍ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사망자 일부 승소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한 23일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유사한 소송을 준비 중인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공정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재판부는 반도체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일반인에 비해 암 발병률이 높다고 봤다.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국내 반도체 제조사 및 협력업체 전·현직 직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여성 노동자의 발병률이 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비록 신뢰구간의 폭이 넓어 통계적 의미는 없지만 작업환경이 발병에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또 급성 백혈병의 경우 발병 원인에 대해서도 의학적으로 명확히 드러난 것은 없지만 유해물질에 계속 노출되면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봤다.


승소한 고 황유미·이숙영씨 모두 여성이며 설비가 노후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근무했다. 재판부는 “고인들이 근무했던 습식식각 공정은 다른 공정에 비해 유해물질이 더 많이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함께 근무했던 다른 직원들은 당시 안전보호구가 있었지만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방진 작업복과 토시, 면 마스크만 착용한 상태로 일했다고 증언했다.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반도체에 근무했던 노동자와 그 유족이 낸 산재 신청을 대부분 불허해왔다. 고 황유미·이숙영씨 유족도 2009년 5월 유족보상 및 장의비 지급 신청을 냈다가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회신만 받았다. 공단 측은 불허의 근거로 해당 사업장에서 유해물질이 측정되지 않았거나 노출기준 미만으로 측정됐다는 삼성반도체 작업환경측정 결과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결과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들 조사는 상·하반기 중 특정 시기를 정해 각 공정별·단위 작업장소별로 1회만 측정해 평소 작업환경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삼성에서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 공개를 거부해 증거수집 기회가 봉쇄됐는데,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노동자 측에 입증토록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고인들의 건강 상태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2005년 6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퇴사한 고 황유미씨는 입사 때 받은 건강검진에서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2004년에도 콜레스테롤 기준치 초과 외 다른 질병이나 가족력도 없었다.

재판부는 패소한 고 황민웅씨와 퇴사한 김은경·송창호씨에 대해서도 유해물질 노출 가능성은 인정했다. 다만 고 황민웅씨는 1995년 이후 줄곧 설비업무 등을 담당해 지속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절단·도금 공정에 근무한 김은경·송창호씨 역시 염산이나 질산 등에 노출됐지만 상대적으로 백혈병 발병과 유관성이 큰 벤젠이나 트리클로로에틸렌(TCE) 공정에 투입되지 않았다는 게 주요한 패소 이유였다.

이날 판결로 향후 유사한 소송의 결과도 주목된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모씨 등 4명은 지난 4월 “산재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냈다. 한씨는 95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6년간 LCD 모듈과 납땜 업무를 수행하다 건강이 악화돼 2001년 8월 퇴사했다. 한씨는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240023345&code=94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