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성반도체 백혈병’ 첫 산재 인정 판결이 말하는 것

[사설]‘삼성반도체 백혈병’ 첫 산재 인정 판결이 말하는 것
입력 : 2011-06-23 20:57:43ㅣ수정 : 2011-06-23 20:57:43



서울행정법원은 어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직원 2명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당사자들이 근로복지공단(공단)을 상대로 낸 산재 인정 요구 소송에서 처음 나온 판결이다. 그러나 함께 소송을 낸 다른 직원 2명과 유족 1명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공단이 백혈병 발병과 근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산재 인정을 거부하자 지난해 1월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은 다른 삼성반도체 직원들이 진행 중인 산재 인정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단과 삼성전자는 법원 판결을 수용해 산재 근로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 측과 공단 측은 1년5개월간 치열한 법정 싸움을 벌였다. 쟁점은 삼성반도체 직원의 백혈병이 개인질병인지, 아니면 업무상 재해로 볼 것인지였다. 피해 당사자 측이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작업 환경이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과거 작업장의 유해물질 확인은 물론 백혈병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지난달 23일 양측의 최종변론 후 “현재 상황에 근거해 판단하면 원고가 아예 이길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공단은 소송 보조참가인으로 나선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3대 법무법인 중 한 곳을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웠다.

법원은 소송을 낸 피해 당사자 5명 중 2명에 대해서는 “백혈병 발병 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당시 작업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유해 화학물질에 일부 영향을 받았더라도 백혈병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법원 판결을 보면 백혈병과 업무 간 연관성은 있더라도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 수 있다. 어쩌면 5명 중 2명이 승소한 것도 기적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삼성전자는 직원들의 백혈병을 더이상 개인질병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이라도 법적인 싸움을 그만두고 회사를 위해 일하다 치명적인 병을 얻은 직원들에게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 정부와 국회는 기업이나 공단이 근로자의 병을 개인질병이라고 입증하지 못하면 산재로 전향적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관련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232057435&code=99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