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총학생회장 “조선일보의 편집술에 감탄”
지난 8일 56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경환씨
조선일보와 인터뷰 뒤 페이스북에 심경 밝혀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의 방향을 튼 정도인데
조선일보 기사는 마치 과거에 나쁜 데 빠졌다가
건실한 청년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으로 썼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 등록 : 2014.04.11 16:47 | 수정 : 2014.04.12 10:58
지난 8일 서울대 제56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경환(28·물리천문학부 05학번)씨는 다음날인 9일 아침 <조선일보>를 보고 당황했다. 신문 한 면을 절반 가까이 차지한 본인의 인터뷰 기사의 크기도 놀라웠지만, ‘기사 제목’은 더 당혹스러웠다.<조선>은 이날 이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친북 좌파 데모꾼이었던 나/ 광우병 시위 때(2008년) 운동권에 회의…/ 그날로 데모꾼 생활 접었다”는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사회면 머릿기사(7단)로 실었다. 기사는 세 살 때 사고로 오른손을 잃고 지체장애 3급이 된 이씨가 ‘서울대 첫 장애인 총학생회장’이 됐다는 점과, 과거 민주노동당 대학생 당원이자 민족민주 계열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그만둔 경험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씨는 같은날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성 운동권에 대해 갖고 있는 제 문제 의식이 과장 왜곡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을 썼다. 이씨는 이 글에 “저를 ‘애국 보수 반공 청년’으로 만들어주신 <조선>의 편집술에 감탄했습니다. (<조선>의) 기사만 보면 (내가) ‘광우뻥’ 선동에 속았음을 알고 반(운동)권이 된 걸로 생각될 수 있겠더군요”라고 썼다. 이씨는 특히, “우리 사회를 진보시키기 위해 노력하신, 그리고 현재에도 노력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는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 토대 위에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더욱 대중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구체적 의제 설정을 갖고 오늘날의 현실에 맞는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라고도 밝혔다. 자신의 진의가 기사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얘기로 읽힌다.
이씨는 11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서도 “나는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의 방향을 튼 정도인데, <조선> 기사는 내가 마치 과거에 나쁜 데 빠졌다가 건실한 청년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으로 쓰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사에는 ‘광우병 시위 때부터 데모 나가는 걸 그만뒀다’고 나오는데,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 때까지도 꾸준히 나갔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대해선 성찰의 계기가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기존의 운동 언어들로 포착되지 않는 게 많았다. 사람들의 정치 혐오, (이념적) 순수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같은 것도 문제라고 여겼다. 무엇보다도 그동안의 사회운동이 대중들의 구체적 삶의 문제들로부터 떨어져 있었던 건 아닌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이 주목한 ‘친북 좌파’라는 용어도 지나치게 부각돼 문제라고 했다. 이씨는 “내가 친북 좌파라는 용어를 쓴 건 맞다. 내가 더 이상 북한에 우호적이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뒤엎자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뜻에서 썼다. 하지만 이 낙인성 강한 용어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식으로 기사가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조선>과 인터뷰하고, 매체 특성에 맞춰 나름 각색해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를 이준석으로 만들려고 하나’라고까지 생각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조선>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해당 인터뷰 기사에 문제가 있으면 기자가 책임을 진다. 사실관계에 대해 당사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그에 맞춰 대응하겠다. <한겨레> 취재에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출처 : 서울대 총학생회장 “조선일보의 편집술에 감탄”
지난 8일 56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경환씨
조선일보와 인터뷰 뒤 페이스북에 심경 밝혀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의 방향을 튼 정도인데
조선일보 기사는 마치 과거에 나쁜 데 빠졌다가
건실한 청년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으로 썼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 등록 : 2014.04.11 16:47 | 수정 : 2014.04.12 10:58
▲ 조선일보 4월 9일자 |
지난 8일 서울대 제56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경환(28·물리천문학부 05학번)씨는 다음날인 9일 아침 <조선일보>를 보고 당황했다. 신문 한 면을 절반 가까이 차지한 본인의 인터뷰 기사의 크기도 놀라웠지만, ‘기사 제목’은 더 당혹스러웠다.<조선>은 이날 이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친북 좌파 데모꾼이었던 나/ 광우병 시위 때(2008년) 운동권에 회의…/ 그날로 데모꾼 생활 접었다”는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사회면 머릿기사(7단)로 실었다. 기사는 세 살 때 사고로 오른손을 잃고 지체장애 3급이 된 이씨가 ‘서울대 첫 장애인 총학생회장’이 됐다는 점과, 과거 민주노동당 대학생 당원이자 민족민주 계열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그만둔 경험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씨는 같은날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성 운동권에 대해 갖고 있는 제 문제 의식이 과장 왜곡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을 썼다. 이씨는 이 글에 “저를 ‘애국 보수 반공 청년’으로 만들어주신 <조선>의 편집술에 감탄했습니다. (<조선>의) 기사만 보면 (내가) ‘광우뻥’ 선동에 속았음을 알고 반(운동)권이 된 걸로 생각될 수 있겠더군요”라고 썼다. 이씨는 특히, “우리 사회를 진보시키기 위해 노력하신, 그리고 현재에도 노력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는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 토대 위에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더욱 대중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구체적 의제 설정을 갖고 오늘날의 현실에 맞는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라고도 밝혔다. 자신의 진의가 기사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얘기로 읽힌다.
이씨는 11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서도 “나는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의 방향을 튼 정도인데, <조선> 기사는 내가 마치 과거에 나쁜 데 빠졌다가 건실한 청년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으로 쓰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사에는 ‘광우병 시위 때부터 데모 나가는 걸 그만뒀다’고 나오는데,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 때까지도 꾸준히 나갔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대해선 성찰의 계기가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기존의 운동 언어들로 포착되지 않는 게 많았다. 사람들의 정치 혐오, (이념적) 순수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같은 것도 문제라고 여겼다. 무엇보다도 그동안의 사회운동이 대중들의 구체적 삶의 문제들로부터 떨어져 있었던 건 아닌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이 주목한 ‘친북 좌파’라는 용어도 지나치게 부각돼 문제라고 했다. 이씨는 “내가 친북 좌파라는 용어를 쓴 건 맞다. 내가 더 이상 북한에 우호적이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뒤엎자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뜻에서 썼다. 하지만 이 낙인성 강한 용어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식으로 기사가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조선>과 인터뷰하고, 매체 특성에 맞춰 나름 각색해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를 이준석으로 만들려고 하나’라고까지 생각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조선>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해당 인터뷰 기사에 문제가 있으면 기자가 책임을 진다. 사실관계에 대해 당사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그에 맞춰 대응하겠다. <한겨레> 취재에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출처 : 서울대 총학생회장 “조선일보의 편집술에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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