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한겨레21] ‘좌빨’, ‘종북’ 운운 공기업 강사들, 알고보니 ‘총리실 낙하산’

‘좌빨’, ‘종북’ 운운 공기업 강사들, 알고보니 ‘총리실 낙하산’
[줌인] 총리실기재부도 안보산업 육성
[한겨레] 고나무 기자 | 등록 : 2012.02.12 14:59 | 수정 : 2012.02.12 17:18



<한겨레21> 취재로, 기획재정부와 총리실이 공공기관에 안보교육 사실상 지시한 사실 드러나…
예산 실무 권한 가진 기획재정부 요청 거부하기 힘든 공공기관이 지출한 혈세 강의료 1억원 국발협이 독점해


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지난해 박승춘(64) 보훈처장이 만든 극우안보단체인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에 강연 몰아주기를 한 사실이 <한겨레21> 취재로 밝혀졌다. 또 기재부가 지난해 286개의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일제히 안보교육을 하라고 지시하는 등 이명박 행정부가 안보산업을 육성한 정황이 확인됐다. 박승춘 처장은 최근 ‘2040세대 안보교육론’으로 논란을 빚었다.


“기재부가 시켰으니 따라야 한다”

기재부 내부 문건을 보면, 기재부 정책총괄과는 2011년 3월11일 전국의 공공기관에 ‘공공기관 안보교육 실시 협조 요청 및 교육계획 제출 요청’ 공문을 보냈다. 전국의 26개 공기업, 83개 준정부기관, 176개 기타공공기관 담당자가 이 문서를 받았다. 기재부는 공문에서 교육계획서는 물론 교육실적 제출도 요구했다. “점증하는 안보 위협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각 기관에 안보교육 실시 요청을 드리오니 첨부의 공지문 및 양식을 참고하셔서 3·18(금) 15:00까지 교육계획서를 본 연락방으로 제출하여주시기 바랍니다.(교육실적 제출은 추후 요청 예정)”

기재부 정책총괄과는 <한겨레21>에 “지시가 아니라 협조 요청 공문”이라며 “그러므로 산하 공공기관에서 실제로 안보강연을 진행했는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기재부가 예산을 짜고 배정하는 중앙 행정부처임을 고려할 때, 기재부의 이런 해명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예산 실무 권한을 지닌 상급기관의 ‘요청’을 산하기관이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한 공기업 직원은 “기재부가 시켰으니 따라야 한다. 안 그러면 경영지표로 압박한다. (안보강연을) 자율적으로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경영평가를 잘 받아야 하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공문을 받자마자 지난해 4월28일 국발협 소속의 <조갑제닷컴> 기자 김성욱씨를 불러 팀장급을 포함한 직원 146명에게 안보교육을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난해 6월15일 국발협 소속인 유성선 강원대 교수에게 안보강연을 맡겼다. 73명이 참석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2011년 당시 전국의 공공기관과 공기업 286곳에서 안보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기재부는 공문의 첨부문서로 극우안보단체인 국발협 강사가 다수 포함된 안보전문 강사 명단을 내려보냈다. 안보강사 명단은 총리실에서 작성했다. 기재부 정책총괄과는 “산하 공공기관에 안보강사를 알려줘야 하는데 기재부가 확보한 자료가 없어 총리실에 안보강사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총리실이 명단을 작성해 제공했다”고 밝혔다. 총리실 일반행정정책관실은 <한겨레21>에 “당시 담당자가 국방부와 보훈처에 문의해 국발협 강사를 추천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리실은 구체적으로 국방부와 보훈처의 누가 어떤 이유로 국발협을 추천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지난해 2월 보훈처장에 취임했다. 그는 참여정부 당시 교신 기록을 언론에 공개해 퇴임한 인물이다. 이후 여러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야당 전체를 ‘친북’으로 모는 비판 발언을 쏟아냈다. 최근엔 2040세대에게 안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보훈처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는 내·외부의 비판을 샀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만든 국발협에 특혜

국발협은 박승춘 보훈처장이 처장 취임 전인 2010년 8월 안보강연을 명분으로 만든 국방부 등록 민간단체다. 이들은 홈페이지에서 “선진 시민의식과 안보관의 연구·교육·홍보를 통하여 국민들의 국가관과 안보관을 정립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며 국가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밝혔다. 안규백 민주통합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국발협 소속 강사는 73명이며 이들은 주로 퇴역한 영관급 이상 장교, 퇴직 고위 관료, 탈북자다. 그러나 명분과 달리 이들은 공익단체는 아니다. 엄연히 ‘안보교육서비스업’을 명목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사업체’다.

기재부의 지시와 관련해 주로 세 가지 점에 비판이 쏠린다. 군부대나 민방위대와 달리, 외교안보 문제와 무관한 기재부가 안보교육을 무리하게 강요했다는 지적이 먼저 제기된다. 한 공기업 간부는 “보수 강사를 동원한 안보 장사에 공기업을 들러리 세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재부가 안보산업 육성에 부당하게 뛰어들었다는 취지다.

총리실, 기재부의 강연 몰아주기가 특혜인 것도 문제다. 총리실이 작성해 기재부에 제공한 안보강사 명단 44명 가운데 31명이 국발협 소속이다. 국발협은 2010년 여름에 만들어져 실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박승춘 국발협 초대 회장이 국가보훈처장 자리에 임명된 지난해 2월부터 특혜를 받기 시작한다. 국가보훈처가 나서서 관할 지자체와 보훈병원 등에 국발협 강사에게 안보강연을 맡기라고 공문을 보내는가 하면, 국방부는 2011년 2월 국발협에 예비군 안보교육을 맡기기로 협약을 맺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해 2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국발협 강사로 구성된 민방위 안보교육 우수안보강사 명단을 내려보냈다. 이번 취재로 총리실과 기재부도 이런 몰아주기에 동참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국발협은 <한겨레21>에 자신들은 극우주의와 무관한 “순수한 안보단체”라고 설명했다. 특혜 의혹도 부인했다. 현 국발협 회장은 박승춘 보훈처장과 육사 동기인 이상태 전 국방대 총장이다.

기관들의 이런 유기적인 움직임의 결과, 거대한 안보산업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토지주택공사는 지난해 안보강연 때 강사료로 국발협 강사에게 40만원을 지급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김성욱씨에게 47만8천원을 지급했다. 일부 공공기관이 안보강연을 하지 않아 250곳에서만 안보강연(강사료 40만원 추정)이 실시됐다고 보수적으로 가정해도 1억원 규모의 안보산업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안보시장 형성의 재원은 모두 세금이다.


이명박 정부가 육성한 안보시장 4억원 이상

세금으로 형성된 이런 안보시장이 2011년 급격히 많아졌다는 데 문제가 있다.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2010년까지 동영상 교육이나 생활지식 교육으로 안보교육을 대체했다. 2011년 지자체는 일제히 안보강연을 부활시켰다. 전국의 지자체에서 2억4천만원을 넘는 세금이 안보강연에 사용됐다. 지자체는 강사 실명을 대부분 비공개했다. 전국에서 안보강연을 한 455명 가운데 144명이 국발협 소속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사실상 겹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발협 소속 강사가 3분의 1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훈처는 관할 지자체는 물론 보훈병원의 간호사와 의사를 상대로도 안보강연을 하라고 지시했다. 군부 주위에 형성된 안보시장도 거대하다. 안규백 의원실 자료를 보면, 국발협 강사 73명이 지난해 3~11월 군부대에서 예비군을 상대로 모두 1323회 강연했다. 국방부는 “협약에 따라 무료”라고 주장했다. 협약을 보면 예비군 안보교육 강의 자료는 “국발협이 자체 제작한 교안으로 교육한다”고 규정된다. 강사료가 아닌 안보교재 시장을 국발협이 선점한 셈이다. 행안부가 만든 자율정예 민방위대 안보강연에도 국발협 강사가 참여해 강사료를 받아갔다. 소방서, 중·고등학교 등으로 안보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보수적으로 따져봐도, 이명박 행정부가 육성한 안보시장의 규모는 4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영역이 많아 그저 추정일 뿐이다. 이렇게 세금으로 형성된 안보시장을 73명의 국발협 강사가 독식한다. 수억원의 국민 세금이 퇴역한 영관급 장교들의 용돈과 생활비로 지급되는 셈이다.

안보강연이 극우적으로 편향된 점은 더 큰 문제로 지적받는다. 총리실이 작성한 안보강사 명단에 극우보수적 언행으로 이미 논란을 샀던 인물이 많았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안보강연을 한 김성욱씨는 <조갑제 닷컴> 기자다. 1997년 연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는 김씨는 <대한민국 적화보고서><노무현의 난><거짓의 촛불을 끄자·대한민국을 부수는 민주악당들·전교조가이드북·이건 나라도 아닙니다> 등의 저서를 썼다. <조갑제닷컴> 홈페이지에서 가장 최근에 발견되는 김씨의 기사는 ‘안철수 재단 박영숙 이사장의 정체’다. 김씨는 “박영숙씨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앞장서온 운동권 인사”라며 박 이사장의 옛 발언들을 소개했다. 김씨는 ‘윤이상의 거짓말 폭로하는 한 장의 사진’ 기사에서 윤이상씨가 경남 통영 출신 신숙자씨 가족의 “입북을 사주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김씨의 기준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군부를 제외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시민단체 등 거의 모든 비판세력이 “사회주의를 노골화한” 세력으로 분류된다.


좌빨, 종북 욕하고 돈버는 강사들

그는 농수산식품유통공사 강연에서도 극우적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선거를 언급했다. “(북한은) 2012년 전쟁과 평화의 억지 구도를 만들기 위해 도발을 벌이며 기존의 대남 적화 전략을 관철시켜갈 것이다. 남한의 친북 좌파가 이들의 향도 노릇을 충실히 수행해갈 것임은 물론이다. …남한의 동조세력은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 6·15 및 10·4 선언의 연방제만이 해법인 양 햇볕정책 복원을 선동해갈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간단하게 ‘종북’으로 정리된다.

총리실이 안보강사로 추천한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엄기영 전 문화방송 사장 사퇴를 압박했다. 홍관희 전 안보전략연구소장은 6·15 공동선언을 “북한의 적화통일 방안을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용공 이적행위”라고 주장한 이력 탓에 2008년 통일교육원장 최종 후보에서 탈락한 바 있다. 재향군인회 안보부장과 충북 재향군인회 안보부장도 강사에 포함됐다. 2012년에도 안보시장으로 세금이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행정부가 창출한 일자리다.


출처 : ‘좌빨’, ‘종북’ 운운 공기업 강사들, 알고보니 ‘총리실 낙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