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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조희팔 금융사기

섣부른 조희팔 사망발표, 경찰의 꼼수인가

섣부른 조희팔 사망발표, 경찰의 꼼수인가
[시사인 244호] 정희상 기자 | 기사입력시간 2012.05.22 12:29:55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던 경찰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은폐 조작이 생각난다." 5월21일 경찰청 지능수사팀이 발표한 단군이래 최대 사기범 조희팔 사망 소식에 대해 이 사건의 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이날 조희팔 사기사건의 주범 조희팔이 지난해 12월19일 중국 웨시하이시의 한 호텔방에서 애인과 함께 주점에 다녀온 뒤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조씨의 시신은 중국 현지에서 화장 처리돼 가족이 국내 한 공원묘지에 몰래 묻어두었기 때문에 유전자 감식을 통한 본인확인이 불가능했지만 다른 부수적인 자료를 토대로 사망한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이다.

▲ 조희팔(위)은 “현 정권이 날 못 잡는다”라고 호언한다. ⓒ시사IN 자료
경찰이 조씨가 사망했다고 판단한 부수 자료는 당시 호텔에서 한 남자가 구급차로 현지 병원에 실려갔고, 병원 의사가 이 남성의 사망을 확인한 뒤 사망진단서를 발급했으며 시신을 화장 처리한 후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조씨 가족이 비디오로 찍어 최근 경찰에 제출했다는 등이다.

하지만 경찰의 발표가 허점 투성이라는 지적과 함께 조씨의 위장 사망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먼저 일반인 화재사건 사망사건 수사에서도 유전자 감식을 거쳐 당사자라는 확인이 되지 않으면 사망을 확정해 발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물며 국가적인 중요 범죄인으로 인터폴 수배까지 해둔 조희팔에 대해 유전자 감식 같은 과학적 증거도 없이 성급하게 사망 확인이라고 발표했다. 각종 보험사기 사건 등에서 보듯 국내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엉뚱한 사람의 시신을 다른 사람인 양 둔갑시킬 수 있다. 조희팔씨가 중국 밀항 도피생활 중 거액을 들여 조선족 등 4명의 현지인 공민증을 위조해 지니고 다니면서 중국인 행세를 했던 정황으로 볼 때 ‘단군이래 최대 사기범’에 어울리게 제3자의 시신을 마치 본인인 것처럼 얼마든지 둔갑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주로 조씨 가족이 제출했다는 중국 현지 발행 부수 자료를 사망 판단의 근거로 들어 사망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씨 가족이 제출했다는 이 자료는 중국 공안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터폴 수배자인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확인해준 서류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조희팔 사망으로 단정해 발표한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의 섣부른 조희팔 사망 확인 발표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발표 시점을 둘러싸고서다. 경찰청은 지난 4년 동안 조희팔 일당을 형식적으로 인터폴에 지명수배 해두고도 체포 송환해오려는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급기야 조희팔사건 피해자들의 원성과 비난이 들끓자 지난해부터 대검찰청 국제기획단에서 적극 나서 중국 공안당국과 조희팔 일당 체포 공조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지난 2월8일경 중국 웨이하이시 공안은 조희팔과 함께 도망다니던 공범 수배자 2명을 체포했다. 검찰이 나선 뒤에야 조희팔 일당 일부가 검거된 셈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조씨의 두 공범이 송환돼 들어오면 이 사건 수사를 자신들이 맡겠다고 나섰다.


▲ 조희팔의 최측근인 최천식(왼쪽 위)·강호용(왼쪽 아래)가 중국 공안에서 조사받고 있다. 중국의 한 매체가 조희팔 일당 체포 소식을 보도했다(위)

하지만 그 무렵 조희팔 사건 수사책임자인 대구경찰청 수사과장이 밀항 직전 조씨로부터 9억원대 수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시사IN>이 고발 보도하면서 피해자들의 반발에 부닥쳐 경찰은 이 사건 수사를 검찰에 넘겨야 했다. 현재 조희팔과 유착 의혹을 받은 일부 경찰 간부는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상황이다. 2월8일 중국공안에 체포된 조희팔의 공범 2명은 지난 5월18일에야 검찰(대구지검 서부지청)에 송환됐다. 바로 이런 시점에 경찰이 석연찮은 조희팔 사망 소식을 내놓은 것이다.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경찰은 앞으로 수사를 적극 벌여 조희팔이 은닉한 피해자들의 범죄 장물을 찾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불신을 사고 있다. 현재 중국 현지에는 조희팔 다단계 사기 조직의 2인이자 자금 총책인 강태용이 숨어있다. 강씨는 4조원대에 이르는 조희팔 사기범죄 은닉 재산을 어디에 쓰고, 어디다 숨겨놓았는지 훤히 아는 인물이다.

▲ 2009년 3월 경찰이 조희팔의 중국 밀항을 방조한 것에 대해 피해자들이 태안해경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시사IN 자료

경찰이 진실로 범죄 은닉자금 수사만이라도 손댈 의지가 있었다면 자금 총책으로서 중국 은신처에서 조희팔 그림자처럼 함께 지내온 2인자 강태용을 체포 송환하는 데 노력을 집중했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작업 대신 서둘러 확증도 없는 조희팔 사망 주장을 펴고 나왔다.

이런 경찰 처사에 대해 피해자들은 “1인자가 죽었으니 사실상 이 수사가 끝났다고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나아가 조희팔 사건 수사에서 경찰이 손을 떼고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인 대구지검 서부지청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범죄 은닉자금 환수는 물론 조희팔이 사망했다는 경찰 주장의 진위도 검증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출처 : 섣부른 조희팔 사망발표, 경찰의 꼼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