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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死大江

“욕은 기본, 준설토에 묻겠다 협박당해”

“욕은 기본, 준설토에 묻겠다 협박당해
그래도 ‘강의 눈물’ 영상은 잘 돌아간다”

[인터뷰] 4대강사업 문제점 고발한 고철 ‘에코채널 라디오인’ 대표
[오마이뉴스] 이현진 | 11.04.05 17:57 | 최종 업데이트 11.04.05 17:57


고철 대표 인터넷 방송 '에코채널 라디오인'을 운영하고 있는 고철 대표는 2년 째 4대강 사업 저지 운동을 하고 있다. ⓒ 이현진

“누군가는 나에게 빨갱이라고 하더군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해온 인터넷 방송 '에코채널 라디오인' 고철(48) 대표의 말이다. 생태복지를 꿈꾸는 그에게 느닷없이 '좌파' 딱지가 붙은 이유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는 최대 국책사업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4일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에코채널 라디오인 사무실에서 만난 고 대표는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목격한 ‘위태로운 강’... “낙동강 다리들이 흔들리고 있다”

고 대표는 4대강 공사가 시작된 2009년부터 2년째 전국을 누비며 4대강 사업 현장을 동영상 카메라 담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를 처음 제안했을 때도 그는 낙동강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강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공사가 진행 중인 곳에서 멸종위기동물인 수달의 서식지가 준설공사 구간에 포함되고, 희귀식물 단양쑥부쟁이가 굴착기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직접 봤다.

"최소한 공사 전에 멸종위기종에 관한 교육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없었어요. 영주댐 공사가 한창이던 내성천에서 수달의 흔적이 발견됐어요. 그런데 대구유역청에서 4개월 만에 환경영향평가를 끝내고 수달의 개체가 미미하다는 결론을 내린 후였습니다. 단양쑥부쟁이의 환경영향평가를 했던 원주유역청 직원에 따르면 '평가가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에 이뤄진다'고 합니다. 수달이 나타나는 시간은 밤 늦게부터 새벽까지인데 만약 다른 시간대에 조사했다면 발견할 수 없는 게 당연해요."

그래도 이런 사례는 언론에 보도되기라도 했다.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고 대표가 직접 목격한 '위태로운 강'의 모습은 더 많았다.

"현재 보 공사 공정률은 70%, 준설 작업은 거의 다 끝났어요. 엄청난 속도죠. 그런데 낙동강의 박진교 공사 현장은 준설이 끝나서 물이 차올랐지만 모래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어요. 준설의 의미가 없어진 거죠. 게다가 내성천 상류에는 영주댐이 들어서서 하류로 들어가는 모래를 막고, 하류에서는 과도하게 모래를 파내는 바람에 다리가 무너질 위험에 처했습니다. 한 달 전에 갔을 때 수도교는 다리를 지탱하던 골재가 70cm 이상 드러나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흔들리는 낙동강의 다리들이 있는데 언론에는 보도가 안 되고 있습니다."

굴착기에 쓰러진 단양쑥부쟁이 4대강 사업으로 2급 멸종위기 식물 단양쑥부쟁이 군락지가 파괴됐다. ⓒ 에코채널


“욕설은 기본, ‘준설토에 묻어버리겠다’는 협박도 받아”

'환경전문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4대강 사업에 박식한 고철 대표는 사실 IT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고 대표는 이런 본업이 있음에도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부업'(?)을 위해 더 열심히 뛰고 있다. 인천 갯벌의 기억이 작용한 탓일까?

"어릴 때 인천 송림동에 살았는데 37년 전에만 해도 그곳이 갯벌이었어요. 학교 끝나고 갯벌에서 갯지렁이를 한 깡통 잡아가면 500원을 벌었죠. 그러다가 가구 공장이 들어서면서 갯벌이 없어졌어요. 산업화로 사람들은 직업을 얻었지만 사고로 죽거나 다치기도 했어요. 갯벌을 없앤 것이 환경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4대강 사업 현장을 누비고 돌아다니는 일은 4대강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한번은 낙동강 낙단보에서 뗏목탐사를 하다가 교각에 부딪혀 익사할 뻔했다. 현장을 취재하러 가면 공권력처럼 행동하는 건설사의 횡포에 욕설을 듣는 것은 기본이고, "준설토에 묻어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사태 때 광화문 근처에 살던 그는 촛불집회가 폭력적으로 진압되는 것을 목격했지만, 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개탄했다. 그래서 당시 뜻이 맞는 시민들과 인터넷 방송 '라디오인'을 만들었다. '에코채널'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4대강 사업 저지 운동에 나선 것도 '진실 알리기'를 위해서다.

지난 2010년 5월 2일, 금강보 공사 현장을 찾은 고 대표는 굴착기가 준설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 옆에서 트랙터로 호밀을 수확하는 농민의 모습을 봤다.

"그날이 마지막 수확이라더군요. 상당수 작물이 아예 쓰러져 있었는데 그 위로 '자전거 도로'라는 깃발이 있었어요. 국가 소유의 부지라는 명목으로 다 익은 곡식을 수확도 못하게 한 건데 폭력적이죠."


4대강 사업 현장 주민들 “나라에서 어련히 잘 하겠어”

금강보 공사현장 2010년 11월 4대강 사업의 하나인 금강보 공사가 한창이다. ⓒ 에코채널

고 대표는 2년 동안 4대강 사업 현장을 다니면서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주민들은 원칙적으로는 사업에 반대하지만 국가가 하는 일에는 무조건 찬성해야 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면서 "'나라가 어련히 알아서 해준다'는 생각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한정된 사람들만이 시청하는 인터넷 방송을 넘어 직접 사람들을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다.

"그동안 취재한 영상과 2010년 12월 4대강 저지 UCC 공모전에 출품된 영상을 추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강연도 필요할 것 같아 마침 교단에서 은퇴하신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님,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님, 최문순 민주당 의원님 등에게 부탁을 드렸죠. 무료 강연인데도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지난 1월 21일, 첫 번째 '강의 눈물' 전국 영상·강연 투어가 원주에서 출발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원래 강연 장소였던 원주 영상미디어센터에서 18일 돌연 "정치적 행사이기 때문에 대관할 수 없다"고 통보해 온 것. 부랴부랴 상지대로 장소를 옮겨 진행했지만 고 대표는 "왜 안 된다고 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연자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알렸다. 김정욱 교수는 4대강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과학적으로 설명했고, 유원일 의원은 위법성을 지적했으며, 최문순 의원은 미디어악법과 종편 선정을 연계해 왜 진실이 보도되지 않는지를 이야기했다. 딱딱한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을까봐 시 낭송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야말로 '복합문화강연 유랑단'이었던 셈이다.

"원주를 거쳐 2월 18일 과천, 3월 5일 영주, 3월 16일 대구까지 영상·강연 투어를 돌았는데 특히 대구가 인상적이었어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이잖아요. 60대 어르신이 오셔서 '주변 사람들이 4대강 문제를 전혀 몰라 답답하다'고 하소연하셨어요. 저희 목표는 이렇게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현장의 사진과 영상, 강연을 보여주는 거예요. '와서 설명해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강의 눈물' 전국 영상·강연 투어 3월 16일 대구에서 열린 4차 투어에서 노래패 '내가 그린'이 공연하고 있다. ⓒ 에코채널


4대강 사업, 오늘 완공돼도 내일 복원돼야 하는 이유

돈을 벌자고 하는 일도 아닌데 전국 투어가 꾸준히 진행될 수 있는 데에는 '라디오인' 식구들의 공이 크다. 자발적인 참여가 큰 힘이 된 것. 고 대표처럼 각자 생업을 갖고 있는 그들은 투어가 있는 날이면 전국에서 달려와 손을 빌려준다. 카메라와 빔 프로젝터도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기증받은 물품이다.

"(우리를 후원하는 분들은) 치기공사, 돈가스 전문점 사장 등 직업이 다양해요. 다들 이틀 밤새서 자기 일 하고 달려와 도와줍니다. 그분들은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뿐 아니라 후손들까지 잘 살았으면 하는 욕심에서 이런 일을 하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욕심쟁이죠."

다섯 번째 '강의 눈물' 전국 영상·강연 투어는 다가오는 8일 춘천에서 열릴 예정이다. 라디오인 식구들이 열심히 저지 운동을 하는 동안 4대강 사업도 공정률 70%를 넘기고 있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만 11명이 사망했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는다.

"완공이 되어 가는 상태에서 강 주변에 조경까지 진행되면 국민들은 겉모습만 보고 예뻐졌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더 강연을 다니며 알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4대강 사업 오늘 완공되어도 내일 복원되어야 한다'는 박창근 관동대 교수의 강연을 추가했어요. 박 교수님 외 다른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4대강 사업 연간 유지·관리비만 5,700억 원이랍니다. 이 정권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국민 세금이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준공된 다음날이라도 강연은해야 한다는 겁니다."

고철 대표는 인터뷰 다음날(5일)에도 낙동강 내성천으로 달려갔다.


출처  "욕은 기본, 준설토에 묻겠다 협박당해 그래도 '강의 눈물' 영상은 잘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