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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국정원의 ‘적반하장’…정치개입 들키자 무차별 소송

국정원의 ‘적반하장’…정치개입 들키자 무차별 소송
한겨레 기자·취재원 고소 왜?
직원 명의로 “고소” 밝혔지만 보도자료 등 국정원 차원 소송
누리꾼·경찰·기자 가리지 않아

지난달에는 감찰실장 앞세워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도 고소
“권한남용·인권침해 행위” 비판

[한겨레] 박현철 기자 | 등록 : 2013.02.03 19:45 | 수정 : 2013.02.04 15:32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씨가 <한겨레> 기자와 그 취재원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김씨는 익명의 누리꾼들까지 고소한 상태다. 국정원은 김씨 개인 명의의 고소라고 주장하지만, 국정원이 이에 대한 보도자료까지 직접 만들어 언론사에 알리는 등 조직 차원에서 ‘대국민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을 고소·고발해 입을 막으려 했던 이명박 정부의 행태와 일맥상통한다.

하경준 국정원 대변인은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고소는) 김씨가 자신의 변호사와 상의해 결정했지만, 국정원 직원으로서 업무 중에 발생한 사안이라 국정원이 보도자료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김씨의 입장을 들으려고 김씨 대리인인 강래형 변호사에게 전화했으나 강 변호사는 “취재에 응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과 지난달에도 자신의 오피스텔을 찾아간 민주당 관계자 및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자신의 글을 검색한 불특정 다수의 누리꾼들을 각각 주거침입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한 바 있다. 이제 기자와 경찰까지 포함해 자신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국정원 업무로 인해 발생한 사태에 대한 법적 대응을 김씨 혼자 결정했을 가능성은 낮다. 국정원은 경찰에 출석하는 김씨를 위해 국정원 직원들에게 경호를 맡기는가 하면, 이번에 김씨가 고소장을 접수시키기도 전에 미리 보도자료를 내는 등 경찰 수사 및 언론 대응 일체를 직접 관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정원이 직원 김씨 등 ‘개인’을 앞세워 정당·언론사·경찰 관계자들에 대한 고소를 감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정원은 2009년 9월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적이 있다. 박 시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희망제작소가 행정안전부와 맺은 3년 계약이 1년 만에 해약되고, 하나은행과의 후원 사업이 갑자기 무산된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말한 것을 문제삼았다. 하지만 법원은 “국가기관의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뤄지는지 여부는 국민의 감시 대상이므로 감시와 비판 기능은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인 국정원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정이었다.

이처럼 국정원 이름으로 법적 대응을 하는 게 실효성도 없는데다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자 직원 명의로 고소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에는 국정원 감찰실장이 이번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국정원의 위기는 정치적 고려에 의한 정보와 예산, 인력 활용으로 인한 무능화·무력화에서 기인한다”는 표 전 교수의 언론 기고글을 문제삼으면서도 이에 대한 고소를 국정원이 아닌 감찰실장 명의로 제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제 법적 처벌을 노린다기보다 ‘우리에게 덤비면 고소당하니까 조심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는 국정원의 숨은 의도”라며 “국정원에 대한 의혹 제기에 위법성을 물을 수 없다는 법리가 드러나 있음에도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은 권력기관의 권한 남용이며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반 변호사모임 사무처장은 “국내 정치에 개입하거나 시국사건 조작을 주도했던 국정원에 언론이나 국민이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정원은 소송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제도 개혁안을 마련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 국정원의 ‘적반하장’…정치개입 들키자 무차별 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