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정치개입 논란’ 국정원장, 지시내용 보니…

‘정치개입 논란’ 국정원장, 지시내용 보니…
[단독] ‘국정원장 정치개입’ 내부자료 입수
2011년 2월18일 “민노총·전교조 등 징계, 유관기관장 협조 얻어라”

[한겨레] 정환봉 최유빈 엄지원 기자 | 등록 : 2013.03.18 08:21 | 수정 : 2013.03.18 14:39


▲ 원세훈 국가정보원장(맨 앞)이 지난달 12일 북한 핵실험 관련 긴급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국정원 ‘원장님 지시·말씀’ 내용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지시사항을 담았다는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는 정치·사회·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국정원이 개입하도록 지시·주문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모두 국정원 본연의 구실인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필요한 정보활동’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등이 야당 정치인과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사찰과 고문을 일삼고 간첩사건을 조작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2010년 1월22일/ 세종시 논란 간여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2010년 3월19일/ 4대강 사업 관련
“일부 종교단체 정치 활동에 치중 바로잡으려는 노력 필요”

2011년 11월18일/ 서울시장 선거 후
“선거기간 트위터·인터넷 등 확실하게 대응 안 하니… 우리 원이 역할 제대로 해줘야”

2012년 4월20일/ 총선 직후
“선거 결과 다수의 종북 인물 국회 진출함으로써 원에 대한 공세 예상되니 대처”


■ 선거 등 정치 개입 의도 드러나 2011년 11월18일 지시사항에는 “선거기간 동안 트위터, 인터넷 등에서 허위사실 유포. 확실하게 대응 안 하니 국민들이 그대로 믿는 현상 발생. (중략) 선거가 끝나면 결과 뒤바꿀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원(국정원)이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함”이라고 적혀 있다. 같은 날 지시사항에는 “특히 종북세력들이 선거정국을 틈타 트위터 등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로 국론분열 조장하므로 선제적 대처”를 하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는 2011년 10·26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된 직후 나온 것으로, 당시 선거에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형성된 여론이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 국회의원을 종북으로 낙인찍기도 했다. 2012년 4·11 총선 직후인 4월20일 지시사항에는 “이번 선거 결과 다수의 종북 인물들이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국가 정체성 흔들기, 원(국정원)에 대한 공세 예상되니 대처”하라고 적혀 있다. 이는 4·11 총선에서 당선된 13명의 통합진보당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5월20일 지시에서는 “지난 재보선에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인물이 강원지사에 당선”됐다고 언급했다. 최문순 지사를 겨눈 말이다.

또 “4월 국회에서는 주요 개혁 입법들이 모두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2010년 3월19일) 등 국회 고유 권한인 입법활동에까지 개입할 것을 지시한 내용도 나온다. 당시 4월 국회에서는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주변 개발사업을 위한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 등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법안이 논의될 계획이었다.


■ 종교단체까지 ‘종북좌파’ 낙인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세력은 모두 ‘종북’으로 규정됐다.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2010년 3월19일 지시사항에는 “일부 종교단체가 종교 본연의 모습을 벗어나 정치활동에 치중하는 것에 대해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적시돼 있다.

그 나흘 전인 3월15일, 불교·천주교·개신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은 낙동강 상주보 건설 현장에서 ‘생명의 강을 위한 4대 종단 공동기도회’를 열고 4대강 사업 중단을 호소한 바 있다. 서울 봉은사의 조계종 직영사찰화 논란도 한창이었다. 2010년 3월11일 조계종 중앙종회는 특별분담금 사찰인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안건을 찬성 49명, 반대 21명으로 가결했다. 봉은사 주지로서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대 의견을 활발하게 표명해온 명진 스님은 직영사찰화를 반대하다 그해 11월 주지직에서 물러났다. 명진 스님은 이듬해 3월6일 마지막 법회에서 “원세훈 국정원장이 지난달 봉은사를 방문해 리영희 교수 49재에서 내가 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말에 대해 항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국정원이 자신의 퇴출에 개입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거나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와 공무원에 대한 중징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난다. 2011년 2월18일 지시사항에 “종북세력 척결과 관련,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민주노총), 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확실한 징계를 위해 직원들에게 맡기기보다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게 직접 업무를 협조”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직전인 2011년 1월26일 서울중앙지법은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당비나 후원금을 낸 혐의로 기소된 전교조 및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교사와 공무원 260명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만~50만원을 선고했다. 가벼운 벌금형에도 불구하고 이후 교육과학기술부는 일선 교육청에 이들을 파면·해임 등 중징계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 4대강 보위에 앞장선 국정원 ‘지시·강조 말씀’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4대강’이다. 2011년 1월21일 지시 내용을 보면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이 원활히 추진되기 위해 책잡히는 일이 없어야 하므로 지역민들에게 최대한 성의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문이 담겼다. 당시 경남 의령군 낙동강 19공구 인근 주민들은 “4대강 공사로 농지 침수 현상이 나타난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이 지역 성산마을 주민 40여가구는 2011년 1월5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책사업 때문에 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정부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4대강 사업이 장마철 이전 마무리되도록 지부장들은 지원에 만전을 기하고 공사현장의 안전문제 점검”(2011년 2월18일), “낙동강·한강변 등에 집을 지으면 4대강 사업의 완성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2011년 6월17일), “4대강 그랜드오픈이 한달여 정도 남았는데 지역단체 언론 등을 통해 행사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사전 면밀점검”(2011년 9월16일) 등 ‘4대강 사업 챙기기’ 지시사항이 다수 발견된다.

실제로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해온 한 환경단체 간부는 “2009년부터 지인을 통해 국정원이 나를 사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년쯤 뒤에는 해당 국정원 직원이 내게 직접 전화해 몇 번 만난 적도 있다. 국정원 직원은 나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편하게 해주는 것, 대통령이 가장 자신있게 내민 4대강 사업을 이루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세종시 논란과 관련해선 2010년 1월22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단체들이 많은데 (중략)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는 지시사항이 나온다. 2010년 1월11일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직후다. 세종시 수정안은 당시 야당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로 신뢰만 잃게 됐다”며 반대해온 법안이었다.


출처 : ‘정치개입 논란’ 국정원장, 지시내용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