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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장남 전재국의 비밀 어떻게 수천억대 부자가 됐나

전두환 장남 전재국의 비밀 어떻게 수천억대 부자가 됐나
[토요판] 뉴스분석 왜? 성공한 쿠데타, 성공한 출판인은 조사할 수 없나
[한겨레] 윤형중 기자 | 등록 : 2013.06.21 19:35 | 수정 : 2013.06.23 14:59


▲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정축재와 친인척 비리로 1988년 10월 대국민 사과성명에서 “전재산을 국가에 맡기겠다”며 사회환수를 약속했던 서울 강남구 서초동 1628-1, 2번지에는 현재 시공사 본사 건물이 세워져 있다. 김태형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들은 신통력이 있나 봅니다. 전재산이 29만원밖에 없는데도 저택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종종 국외로 골프여행을 떠납니다. 그의 장남 전재국씨는 종이회사도 만들었어요.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것으로 드러나 최근 물의를 빚은 페이퍼컴퍼니냐고요? 아니요~ 진짜 종이로 장사하는 시공사란 회사가 있어요. 종이로 장사해서 수천억원대 부동산 자산가로 성장한 이야기, 지금부터 들려드릴게요.

전직 대통령 전두환의 장남
단행본·아동도서·잡지사업에
계열사를 7개로 늘려가며
출판업계에서 성공한 인물
능력을 인정받기는 하지만
자금 출처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중남미 카리브해에 있는 조세회피처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회사) ‘블루 아도니스’(Blue Adonis Corporation)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는 전재국(54·시공사 대표·사진)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이다. 출판업계에서는 그를 단순히 ‘전두환의 아들’이 아니라 출판 경영에 남다른 수완을 가진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직장생활 경험이 없던 유학생이 단신으로 귀국해 출판사 시공사를 설립했고, 십여년 만에 이를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출판사로 키웠으니 그런 평가도 무리는 아니다. 전씨가 거느리고 있는 대표적인 출판 관련 업체는 시공사와 계열사인 도서유통업체 북플러스, 대형서점 리브로 등이다. 출판업계에서는 드물게 ‘출판-도서유통-도서판매’ 사업체의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경영자가 바로 전씨다.

전씨는 ‘은둔의 경영자’이기도 하다. 전씨나 시공사의 성장 배경과 관련해서는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더 많다. 출판업계의 주요 인사 가운데서도 전씨와 직접적인 친분을 쌓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출판인의 모임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공사 토지·부동산은 ‘반납 약속’한 재산

어린이 및 미술 분야 서적 출판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는 등 출판 분야에서 입지전적 길을 걸어온 ‘출판경영인 전재국’과 최근 페이퍼컴퍼니 설립 사실을 들키며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회사를 키워온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이고 있는 ‘독재자의 아들 전재국’. 과연 그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전씨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공개된 인물정보를 보면, 전씨는 1978~1983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의 대학동기는 연세대가 아닌 성균관대 출신이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출신인 김경수 리브로 대표와 채형석 애경 총괄부회장이 전씨의 대학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김 대표는 2008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재국) 대표와 대학동기”라고 말했고, <매일경제>는 2010년 안용찬 제주항공 부회장을 인터뷰한 기사에서 전씨가 성균관대에서 채 부회장과 가까운 친구가 됐고, 연세대로 편입하면서 안 부회장과도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고 적었다. 전씨는 또 2010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79학번”이라고 말했다. 이 내용을 종합하면, 전씨는 1978년 혹은 1979년에 성균관대에 입학했고, 전두환씨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이후인 1980년에 연세대 경영학과로 편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진균 시공사 이사는 “대표님의 개인적인 신상에 관해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씨는 1983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엠비에이 과정을 밟았고, 1985년 석사장교로 짧은 군복무를 마쳤다. 선발되면 6개월 만에 군복무를 마칠 수 있는 석사장교 제도는 당시 3년에 육박한 일반병 군 복무기간에 비춰볼 때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석사장교 제도가 도입된 이듬해 전씨가 선발됐고,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씨마저 이 제도를 통해 군복무를 마치자 사회적인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노재헌씨가 군복무를 마치고서 얼마 되지 않아 이 제도가 폐지됐다.

시공사의 경영성과에 비해
전재국씨 재산 증식속도 빨라
영업이익 1억~3억원대일 때도
서울 강남 알짜배기 부동산과
파주의 대규모 부동산을 매입


전씨는 1985년 석사장교로 복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89년까지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같은 대학에서 2년 과정의 공공정책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씨가 완전히 귀국한 것은 1989년이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오디오잡지 <스테레오사운드>를 인수해 출판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수액과 자금의 출처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고, 시공사 쪽에서도 밝히길 거부했다. 전씨는 이 잡지를 인수한 이듬해인 1990년 ‘시공사’로 법인전환을 했다. 그는 2010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000만원을 가지고 출판사를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시공사가 1991년 10월 입주해 지금까지 사용하는 토지와 부동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가에 반납하기로 약속한 재산이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9개월 만인 1988년 10월 친인척 비리와 부정축재 혐의로 국민적 지탄을 받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이때 그는 “재산 모두를 국가에 맡기고 연희동을 떠나겠다”며 백담사로 향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1991년 장남 전재국과 차남 전재용씨에게 강남구 서초동 1628-1번지(349.1㎡, 평)와 1628-2번지(330.9㎡, 100평) 토지 및 건물을 증여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시공사 본사가 들어선 곳이 바로 여기다.


전직 임원도 “내부회계는 임원조차 잘 몰랐다”

시공사는 이곳에 입주한 이후 다른 대형 출판사들을 제치고 외국에서 이미 인정받은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잇달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첫번째로 출간한 책이 장 폴 사르트르가 쓴 <아랍과 이스라엘>이었고, 이어 존 그리셤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펠리컨 브리프>, <의뢰인> 등을 출간했다. 1993년엔 미국 작가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소설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내어 당시 최단기간 100만부 돌파 기록을 세웠다. 자본력과 영업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생 출판사로서는 기록적인 실적이었다.

사업에 자신감을 얻은 전씨는 더욱 과감하게 투자했다. 1996년 아동도서 브랜드인 ‘시공주니어’를 만들어 외국의 유명 아동서적을 냈고, 영국 디스커버리사가 발간한 디스커버리총서의 판권을 따내 1995년부터 ‘시공디스커버리총서’를 시장에 내놓았다. 마르지 않는 자금의 출처는 여전히 의혹 덩어리였다. <한겨레>가 만난 시공사의 전직 임원은 “시공사의 내부 회계에 대해선 임원조차 잘 모르고, 전재국 대표와 한두 명의 경영직 간부만이 회계정보를 공유했다. 시공사에 근무하면서도 대형 라이선스 계약이나 인수금액 등의 출처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자금의 규모가 회사의 영업이익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준인데 그 출처가 그때도 궁금했다”고 털어놨다.

전씨는 1990년대 중반 시공사를 아동, 단행본, 잡지 등 3개의 사업부문으로 쪼갰다. 알짜 사업부는 아동서적을 담당하는 시공주니어였다. 시공사가 외국의 유명 아동서적을 국내에 출간한 것에 대해서는 출판업계에서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공사의 한 전직임원은 “당시 한국엔 어린이가 볼만한 그림책, 동화책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처음 다양한 종류와 판형의 아동서적을 내놓자, 서점에선 크기가 다르다며 진열조차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식조차 열악한 상황에서 시공사는 아동도서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아동서적은 출판사의 안정적인 수익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시공사가 매년 4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이 중 250억원가량을 아동서적 부문의 매출로 알고 있다. 시공사의 아동서적은 매년 비슷한 수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시공사는 공시자료에도 사업부문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고, 밝히기도 거부했다. 단행본과 아동서적 사업에서 성공을 맛본 전씨는 잡지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첫 사업이었던 <스테레오사운드>를 비롯해 패션정보지 <유행통신>, 피시게임전문지 <피시플레이어>, 여성 생활잡지 <까사리빙>, 오디오비디오 전문지 , 게임전문지 <게임왕>, <온플레이어>, 음식전문지 <까사비스트로> 등을 발행했다.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시공사의 경영성과는 1999년부터이다. 이 시기부터 시공사가 감사보고서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사이트에 게시하기 시작했다. 법률상으로 자산총액이 100억원 이상 되는 업체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았더라도 회계법인의 외부감사를 의무적으로 받고, 감사보고서를 공시하도록 돼 있다. 1999년 시공사의 자산규모는 130억원이었다. 이 당시 시공사가 거둔 경영성과에 비해 전씨의 재산은 빠른 속도로 증식한다. 1999년과 2000년 시공사의 영업이익은 각각 1억2000만원, 3억700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씨는 1998년부터 서울 강남의 알짜배기 부동산과 경기도 파주의 대규모 부동산을 매입했다. 1998년 4월24일 시공사 본사 주변인 서초동 1628-3번지(329.2㎡, 100평)의 토지와 2층 건물을 사들였고, 같은 해 8월엔 파주시 문발동 521-1번지(1515.4㎡, 450평) 토지를 매입했다. 이곳엔 현재 파주출판단지가 조성됐다. 2000년 5월엔 서초동 1628-10번지(382.9㎡, 115평)의 토지와 3층 건물을 구매했다. 전씨가 개인재산으로 매입한 토지와 건물에는 현재 시공사와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부동산임에도 개인이 직접 투자를 한 셈이다.

비슷한 시기부터 전씨는 계열사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1999년 오프라인서점 ‘리브로’를 열어 이듬해 강북의 4대 서점 중에 하나였던 ‘을지서적’을 인수했다. 2000년엔 출판사 뫼비우스, 온라인콘텐츠업체 ‘파프리카미디어’ 등을 설립했고, 2002년엔 출판사 지식채널 등도 인수했다. 전씨는 2007년에도 도서 도소매업체인 북플러스의 지분 44.5%를 인수하는 등 계열사를 늘려갔다. 현재 전씨 혹은 시공사가 최대주주인 업체는 북플러스, 리브로, 뫼비우스, 파프리카미디어, 지식채널, 케어플러스, 스타일까사 등 확인된 것만 7개다.

전씨가 운영하는 기업의 규모를 가늠하려면 단순히 출판사 시공사만을 봐선 안 된다. 지난해 매출 442억원을 기록한 시공사와 비슷한 규모의 기업이 북플러스와 리브로다. 북플러스와 리브로는 지난해 매출액이 각각 501억원, 351억원을 기록했다. 전씨는 지분율이 시공사 50.53%, 북플러스 60.5%, 리브로 39.73%로 모두 최대주주다. 다른 주주들도 대부분 가족으로 구성돼 있다. 시공사는 전씨의 부인 정도경씨와 전두환씨의 자녀들인 전재용, 전재만, 전효선씨가 각각 5.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전씨의 딸이자 전두환씨의 손녀인 전수현씨 역시 리브로의 지분 12.35%를 가지고 있고, 전씨의 부인 정도경씨는 시공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계열사에 이사 혹은 감사로 등재돼 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전후로 잦은 부동산 거래

전씨가 운영하는 업체들간 내부거래도 눈여겨볼 만하다. 북플러스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200억원 이상의 매출이 리브로에서 발생했다. 2007년엔 북플러스의 매출 651억원 중에서 271억원이 리브로와의 거래에서 나온 셈이다. 북플러스와 리브로의 거래액은 2010년에도 223억원을 기록하며 200억원 이상을 기록했으나, 2011년과 지난해엔 각각 94억원, 62억원으로 줄었다. 시공사는 출판시장에서 유일하게 출판사-도서유통업체-대형서점의 수직계열화를 이룬 대기업이기도 하다. 한 중소출판사 대표는 “한국의 출판 시장은 기본적으로 실제 몇부를 찍었고 얼마나 팔렸는지가 파악되지 않는 불투명한 시장”이라며 “대형 유통업체와 서점을 끼고 있는 출판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씨가 영국령인 버진아일랜드에 2004년 7월 ‘블루 아도니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아랍은행에 이 기업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했다는 사실이 6월 3일 <뉴스타파>를 통해 밝혀지자, 전씨는 같은 날 ‘보도참고자료’를 내며 발빠르게 대응했다. 전씨는 자료를 통해 “이 일은 1989년 미국 유학생활을 일시 중지하고 귀국할 당시 가지고 있던 학비, 생활비 등을 관련 은행의 권유로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입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씨는 왜 2004년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고, 아랍은행 계좌에 입금한 금액이 얼마인지에 대해선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다. 시공사의 대외업무를 맡고 있는 정진균 경영이사는 “알지도 못하고, 더 밝힐 내용도 없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전씨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기 전후에 잦은 부동산 거래를 한 점도 의혹의 대상이다. 2002년 6월과 8월에 전씨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8-8번지(621㎡, 187평)와 458-16번지(324㎡, 98평) 토지를 잇달아 매입했고,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기 한달 전인 2004년 6월에도 경기도 연천군의 땅을 딸 수현씨의 이름으로 대거 사들였다. 이때 수현씨의 나이는 불과 18살이었다. 전씨는 또 2004년 아들과 딸이 미성년자 시절부터 보유한 서울 강남 논현동과 마포 서교동의 부동산을 처분했다.


출처 : 전두환 장남 전재국의 비밀 어떻게 수천억대 부자가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