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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국정원 사태, 정상국가라면 보수가 들고 일어날 일”

“국정원 사태, 정상국가라면 보수가 들고 일어날 일”
한홍구-서해성의 쾌도난담
[한겨레] 정리 정인환 기자 | 등록 : 2013.06.30 16:06 | 수정 : 2013.07.01 18:58


▲ 한홍구(왼쪽) 교수와 서해성 작가가 지난 11일 서울 재동의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음지’를 지켜야 할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버젓이 ‘양지’로 나섰다. 법으로 금지된 정치 개입이란 치부를 가리기 위해, 아예 독자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위기로 내몰린 것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 자체다. 6월27일 오후 헌법재판소가 내려다보이는 서울 종로구 재동의 한 카페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서해성 작가가 마주 앉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장이 대통령과 독대하는 ‘대통령 주례 대면보고’도 취임 직후 폐지했다. 옹근 10년 전의 일이다. 그 새 ‘정권정보원’으로 완벽하게 되살아 난 정보기관의 수장이 ‘조직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꺼내든 것은, 참담하게도 기밀이어야 할 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이다. 참여정부 시절 3년여 동안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과거사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교수는 대담에 앞서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줄리언 어산지가 울고 갈 일이 일어났어”

서해성 작가(이하 서) 이번 사태를 보니, 백주에 누설하는 건 기밀이 아니라는 것 아닌가. 한국엔 위키리크스가 필요 없게 됐어. 줄리언 어산지가 울고 갈 일이 일어났으니.(웃음)

한홍구 교수(이하 한) 핵심은 두 가지야. 하나는 선거에 개입했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걸 덮으려고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는 것이지. 선거개입이야 ‘제 버릇 개 못주는 구나’ 싶었지만 대화록 공개는 정말 황당했어. 하긴 정치개입이 국정원의 버릇은 아니지. 권력자의 버릇이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깔끔했어. 취임 직후에 국정원이란 권력을 내려놨으니까. 나 같으면 임기 말까지 기다렸을 텐데. 안타깝게도 정파의 고수가 사파에게 살해를 당하는 무협지 같은 일이 벌어졌지.

국정원장이 대화록 공개한 뒤 국회 출석해 답변하는 표정을 보니 정치개입수준이 아니라 아예 내놓고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국정원 직원이라도 된 거 같고.

남재준 원장이 ‘조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대화록을) 공개했다’고 했거든. 그런데 국정원은 지켜야 할 ‘명예’가 없어요. ‘불평도,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는 게 정보기관의 숙명이거든. 국정원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그동안 국정원이 손댄 모든 곳이 음지가 됐어. 선거도 그렇고, 민주주의도 그렇고.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중앙정보국(중정)이 이렇게까지 정치 전면에 나선 일은 없거든요.

중정은 정부 위의 정부였지. 지금과 흡사해. 국정원장이 대화록 공개하면서 청와대와 상의 안했다고 하잖아. 자기들이 만들어 줬으니 설명할 필요를 못 느꼈다는 건가, 설마. 남산시절(중정)만 해도 대통령 밑에서 움직였는데 세곡동(국정원)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청와대랑 상의를 했다고 해도 엄청난 문제지만 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문젠 거지. 둘 다 박근혜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하지만 청와대와 상의를 하지 않았다면 국정원장이 대통령인 셈이거든. 청와대가 (세곡동) 대모산 밑에 있는지 북악산 밑에 있는지 헛갈리는 상황이 됐어. 대통령으로선 이 문제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통치 자체가 어려워질 거야.

그야말로 ‘양치기 소년’의 최후야. 늑대가 온다고 소리를 질러댔는데, 알고 보니 자기가 늑대였던 거지. 양치기 소년의 한국 이름이 매카氏야!

정보국氏가 아니고? 양을 치기는 쳤대? (웃음)

버전이 발전해서 ‘(서해)바다에 늑대가 나타났다’고 난리를 친 거잖아. 노 전 대통령의 ‘죄악’은 그 늑대 우리를 철거하겠다고 나선 거고. 그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평화야.

아냐. 통일이야. 앞으로 통일운동하기 힘들어졌어.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피로 지켰다고 했는데, 엄청난 피를 흘려가며 지켰던 휴전선을 없애는 게 통일이거든.

언니가 서해를 피와 땀으로 지켰다고 하시던데, 민주화운동도 피와 땀으로 했거든. 민주화에 대해선 그간 예절을 지키셨던가?

그 피는 피가 아니라고 보는 거지, 뭐.


“앞으로 <명심보감>은 필요가 없게 됐어. 예절이 필요 없어 졌거든”

그나저나 앞으로 <명심보감>은 필요가 없게 됐어. 예절이 필요 없어 졌거든. ‘준비한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어쩌구 하는 모든 예절은 새누리당 식으로 하면 ‘굴종’이야. 좌익척결 원조로 알았던 전두환 가카도 “주석님께서는 광복 후 오늘날까지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모든 충정을 바쳤다. 한민족의 동지적 차원에서 경의를 표해 마지 않는다”고 했다면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최고로 치는 전두환이 종북 원조인 거지.

그러니 ‘총풍’은 아동스러운 거야. 딱총 놀음 수준이 됐어.

이번엔 애들 푼 게 아니라 아예 원장님이 직접 뛰셨거든.

한홍구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 청산을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비통해 할 일인데 서해성이 그렇게 통쾌해 하면 안 되지. 그야말로 ‘ㅅㅂㅅㅂ’다!

반민특위 실패로 친일청산 안 됐지, 과거사 청산도 결국 같은 운명이었어. 한 놈도 감옥 못 보낸 과거사 청산은 그 놈들 이력과 죄상을 세탁해준 셈이야.

과거사위 활동하면서 내가 느낀 게 있어. 적당히 때가 탄 옷은 빨아 입으면 돼. 그런데 동생 아벨의 피가 뭍은 형 카인의 옷은 불태워버려야 하는 거야. 그걸 세탁해 입으려 했으니 문제였던 거지. 재발 방지대책은 딱 하나야. 감옥 보낼 사람은 보내고, 댓글 단 놈들도 최소한 파면은 시켜야 돼. 그래야 그런 명령 내려도 공무원들이 대들 근거가 생기거든.

말할 자격은 없지만, 봐줄 테니 해결 방안 좀 설명 해보셔.


“국정원법에 차기 대통령을 위해서도 일한다고 돼 있는 것 같아”

▲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5일 오전 인사청문회 이후 90여일 만에 처음으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한 직원이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정원 개혁에 필요한 건 대통령의 태도변화, 제도적 개혁, 인사 개혁, 과거사 청산, 이렇게 4가지야. 과거사 청산은 솔직히 50~60점 수준이었어. 대통령이 국내정치에 국정원 동원하지 않겠다는 태도변화는 95점~100점을 줄 수 있어. 정말 도덕적이었지. 그런데 그게 정치적으로 바보짓이었어. 제도개혁도 못했고 인사개혁도 못했거든. 똑같은 놈들이 똑같은 제도 안에서 반성문 쓰는 시늉만 했던 거지. 물러나고 나니까 순식간에 말짱 도루묵이 된 거고.

국정원 보면서 생각나는 게 독수독과(毒樹毒果)야. 나무를 바꾸지 않으면 국가 이익이나 상식과 무관한 짓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어. 공화정은 절차의 투명성이 있어야 유지가 돼요. 그런데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지. 선거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개입 자체가 문제인 거지. 절차에 치명적 하자가 생겼거든. 놀랍게도 김무성 ‘형님’께서 선거 전에 벌써 대화록을 봤다는 거 아냐. 대화록 내용을 줄줄 읽어 내렸다는데 정말 기가 막혀요. 정상회담 대화록을 어떻게 일개 국회의원이 볼 수가 있는 건지, 원.

저쪽 캠프 대장이었으니까, 일개 국회의원은 아니고. 국정원 태도를 보면 국정원법에 차기 대통령을 위해서도 일한다고 되어 있는 것 같아.

김무성 발언에 대해 대선 때 민주당이 왜 아무 말도 안 했는지 이해가 안 가요. 그리고 언니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던데,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인데 모른다고 해서 모르는 일이 되는 게 아니지. 국정원이 인하대에 전화해서 로스쿨 인권법 동아리 학생들 동태파악까지 했다는데 이건 중정 때야. 국정원은 정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때 같으면 전활 왜 해. 잡아다 조지면 되는데. 국정원은 여전히 그때가 그리울 거야. 새누리당 야당시절에 국정원 출신 정형근 의원이 국정원 개혁안을 내놓은 게 있어요.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었거든. 그거라도 했어야 돼.

솔직히 대화록 공개한다고 해서 딴에 기대하는 게 있었어요. 보통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비밀스런 얘기가 제법 있을 줄 알았어. 막상 보니까,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 다녀와서 다 한 얘기더라고. 조금 실망스러울 정도였어요.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투명했다는 거지. 새삼 생각해봐도, 저 치들은 참 끔찍한 종자야. 50년대에는 대통령 후보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죽이더니 이번에는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끌어내 다시 죽이고 있어. 자신들이 죽음으로 몰아갔으면서 말이지. 다른 한편 이번 사태를 보면서 새누리당이 ‘걱정’ 되었어요. 해방 뒤부터 내내 분단장사 해 먹었잖아.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까지 종북으로 몰았는데 안 먹히고 있으니, 앞으로 더 크게 써먹을만한 게 없을 테니 말이지.

새누리당 쪽에선 생각이 다를 걸?

그 세력이 당황한 게 보여요. 대화록 도깨비 방망이를 꺼낸 게 6.25거든. 그런데도 아무리 물을 타도 안 먹혀요. ‘물 타기’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원래 대폿집에서 ‘영자야, 김 사장 취했다. 막걸리에 물 타라’에서 나온 말이 거든. 그 물 타기는 그닥 나쁜 게 아니었어. 취한 손님 술 좀 덜 자시게 하려는 일종의 배려였지. 막걸리도 아끼고! 국정원은 예전처럼 이번에도 국민을 상대로 물 타기를 했어요. 노 대통령까지 동원해 물을 서해바다에 엄청나게 들이 부은 거지. 근데 국민들은 술에 취하지 않았어. 아니, 그 바다에 지금 배를 띄우고 노를 젓고 있는 거야.

정보기관의 지적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어요. 선거 개입한 범죄를 대화록 공개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 지적 능력이 문제야.

‘거짓말 원리’가 작동을 했다고 봐야 돼요. 처음엔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요. 사람들이 반응을 하자 두 번째는 재밌는 거야. 재밌으니까 자꾸 반복하는 거지. 세 번째부터는 자기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게 돼요. 거짓말을 진짜라고 확신을 가지게 되는 거지. ‘NLL 포기’ 발언이 없는데도 그렇게 말했다고 믿는 것처럼. 이건 대한민국에서 ‘민’자를 없앤 사건이야. 헌법에 대한 침탈, 민주주의에 대한 침탈이지. 주권자를 그렇게 봤다면 헌법이 위기에 와 있는 거지. 이미 우리는 정상적인 공화정이 아니게 됐어.


“박근혜가 남 원장을 파면하고 수사를 지시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요”

전직 육군참모총장(남 원장)을 수괴로 한 내란인 거지. 이 문제는 박근혜가 남 원장을 파면하고 수사를 지시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요. 대통령 자신도 수사 받을 준비를 하고. 김무성 의원 비롯해 정문헌 의원 등 대화록 내용 유출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해야 하고. 안 그러면 탄핵감이야.

대화록 공개에 대해 북한이 ‘최고 존엄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면서? 그 말이 맞긴 맞아요. 최고 존엄, 곧 국민에 대한 모욕인 거지. 반드시 모든 대통령은 성공해야 돼. 개인 문제가 아니라 나랏일이니까. 취임 초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참 국민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008년 촛불집회 때는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수준이었어요.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만 바로 잡으면 됐거든.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다시 하자’고 했으면 그만이었지. 그렇게 하지 않아 문제가 커졌던 거고. 근데 이번엔 그렇게 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야. 공화제와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졌어.

MB정부가 민간인 사찰하고 이런 게 촛불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묵은 습성이지, 손쉬운 통치방식을 선호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기가 얼마나 복잡하고 불편해. 그런 점에서 민주정부 10년 동안 정말 저 분들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원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짧게 걸렸어요. 늘 하는 얘기지만,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건 정권교체가 아니라 세력교체야. 차기든 차차기든 민주세력이 재집권한다 해도, 그 다음에 정권이 다시 넘어가면 미래에 이런 일이 또 생길 수밖에 없어요.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문민통제야. 우린 그걸 군에 대한 민간정부의 통제로만 생각했어요. 군대가 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오랜 기간 군부독재와 싸웠으니까. 근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보기관과 검찰 등 사정기관도 통제가 가능해야 돼요. 군대만 물리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언젠가 복지문제가 화두가 될 때, ‘개그콘서트’에 ‘나를 술푸게 하는 사회’란 코너가 있었잖아. 그때 개그맨 박성광이 나와서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했는데, 해준 게 많아요. 사찰도 해주고, 선거개입도 해주고.(웃음)

문민통제는 군부독재에 대한 반대만이 아니라 비선출 권력에 대한 국민의 통제를 말하는 거지. 검찰 최고 책임자도 어서 빨리 선출로 뽑아야 해요.

솔직히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요. 20세기 100년을 놓고 보면, 처음 10년은 망해가는 왕정시대였어. 그 뒤 36년은 일제의 강점기였고, 해방 뒤 5년가량 푸닥거리를 하다가 전쟁이 터졌어요. 이후 쭉 독재가 이어졌지. 그러니까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인) 20세기 말 단 3년이 전부란 얘기야. 1987년 6월 항쟁 직후에 민주화가 됐으면, 과거사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사였을 거야. 그럼 청산이 제대로 됐겠지. 그러질 못했잖아. 민주정부 10년하면, 오랜 독재가 남긴 독기가 빠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야. 10년 만에 권력에 복귀한 세력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언론과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판단했지. 그 결과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국정원은 거의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식으로 급격히 과거로 돌아간 거지. 그 5년의 집대성이 박근혜 정권 창출을 위해 국정원이 정치 전면에 나선 것이고. 역대 국정원장 대부분이 뒤끝이 안 좋은데, (남 원장처러) 이렇게 빨리 감옥 예약한 사람은 처음 봐요.(웃음)

자신들이 위기라는 걸 자백한 셈이지. 차마 자백은 할 수 없다 보니 감당 못하다가 결국 ‘자뻑’을 한 거야. 대화록 공개로 정치 전면에 나선 것은 그만큼 지난 대선이 불공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반증이 되는 셈이고. 순리대로 정권을 잡을 수 없었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국가를 운영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 아닐까.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와 정말 차이가 많은 게 큰 문제야. 상식적인 권력이라면 남북관계와 통일을 생각하면 대화록 공개는 엄두도 상상도 못할 테고, 정보기관이 선거든 문건이든 나서게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야.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던 미국의 닉슨 대통령.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궤적을 따라가는 듯 보인다. AP 뉴시스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워터게이트’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 같아. 적어도 미국에선 정파를 떠나 거의 모든 언론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체계가 있어요. 민주국가에서 언론은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에선 언론이 조직적으로 일탈을 돕고 있고.

한국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우리가 싸우는 악이라는 게 진보냐 보수냐 이런 게 아니라 몰상식이란 게 가장 비극인 거죠. 그런 점에서 좌빨 종북몰이는 말이 안 돼. 정상국가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이 지켜지지 않거든. 국민이 원하는 게 그거지, 좌빨 세상이 아니거든. 저들이 노리는 건, 그런 몰상식에 대해 국민들이 피곤해 하는 것이고.

촛불 들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5년 전 촛불집회를 재연시키는 정도로 가서는 안돼요. 정말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면, 선거에서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을 바꿔야 돼.

우리나라 국경일이란 게 거의 다 일제와 관련 있는데 이것부터 바꿨으면 싶어요. 4.19, 5.18, 6.10을 공휴일로 지정해서 민주주의의 기억을 제대로 관리해야 해요. 민주주의가 보편 속에, 일상 속에 들어오지 않고는 몇 명 감옥 보낸다고 해서 일이 다 풀리는 건 아니야.

제헌절도 공휴일에서 빠졌잖아!

언니가 대통령된 뒤 발언에서 민주주의란 말 듣기가 어려워요. 명색이 민주공화국인데, 취임 뒤 첫 번째 내놓은 국무회의 내용이 경범죄처벌 강화라니. MB때부터 지금까지 기본권을 포함한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정치권력과 일상에서 실종됐어요.

실은 이 모든 게 다 얽혀있는 거거든. 악이란 게 거슬러 들어가 보면, 다 뿌리가 같아요. 저렇게까지 막가파식으로 나오는 거 보면서 예전 한겨레 그림판 생각이 나더라고. 임수경 민주당 의원이 대학생 때 1989년 방북하고 돌아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수사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박재동 화백 만평인데 내용이 기가 막혀요. 안기부 요원이 ‘너 이러다가 진짜 통일되면 책임질 거야?’ 이러는 거야.(웃음) 통일을 그렇게 두려워해요. 박정희 정권 때는 북한에 대한 실질적이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 국민 가운데 누가 북한을 두려워하겠어. 통일되면 종북세력이란 말을 쓸 수 없게 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운 거지.

그래서 더 당황하고 있는 거야. 대화록 까면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거든. 이미 그런 장난에 놀아날 대중이 아니라는 거지. 여러 모로 북한이 우리를 집어삼킬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진짜 ‘종북세력’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 대해선 ‘찌질하다’ 이렇게 생각하지.(웃음) 그런 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한심해.

난, 새누리당이 걱정이야.(웃음)

답이 있나? 북한이 무섭다고 계속 해야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까지 종북으로 몰았으니, 이제 더 센 거는 국지적 군사도발 밖에 없어 보이는데, 정말 이렇게 가야 하나.


“힘 센 놈이 ‘또라이’ 전략을 쓰면 진짜 ‘또라이’가 되는 건데”

상식적으로 남재준 원장을 파면하고 구속수사 하는 게 맞지. 그거 말고는 대책도, 출구전략도 없어요. 그렇게 가지 않을 것이란 게 문제지.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갔으니, 벽에다가 대포라도 쏘는 수밖에. 답답한 건 이거겠지. 대포를 쐈는데, 북이 대응을 안 하면 어쩌나 하는. 한 10발 쏘면 북에선 30발정도 대응을 해줘야 먹히거든.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을 때 국제사회가 초긴장상태였어요. 남쪽이 대응사격할까봐. 지금까지 한반도 긴장의 주역은 북한이었거든. 원래 약한 쪽이 ‘또라이’ 전략을 쓰는 거니까. 그런데 이제 남쪽이 한반도에서 긴장도를 높이는, 남북관계를 꼬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 힘 센 놈이 ‘또라이’ 전략을 쓰면 진짜 ‘또라이’가 되는 건데 말이야.

격투기 선수가 유치원에 가서 ‘일 대 일로 맞장 뜨자’고 행패 부리면 쓰나. 유치원생들이 자기한테 ‘한 주먹 거리도 안 된다’고 모욕했다고 말이야. 엊그제 신문 보니까 남한 경제규모가 북한의 30배래요. 1명이 30명과 맞먹는다는 거지. 이런 애는 학교에서 엎어져 잠만 자도 옆반 아이들까지 공포스러운 거거든. 앞으로 진짜 걱정은 남북관계도 그렇지만 내치야. 내치가 어려워지면 국민만 개고생인데 한숨만 나와요. 자기한테 문제가 있으면 국민을 더 조지는 거 숱하게 봤잖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가 터져 골치는 아팠겠지만, 이런 막가파가 없어요. 민주당도 그걸로 선거 무효화를 주장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다시는 이러면 안 된다’하고 관련자 처벌하고 문제 있는 부분 잘라내면 됐을 것인데 말이야. 엄정하게 처리했으면 되레 ‘박근혜 정부는 다르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었고. 도대체 합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대응이야. 말하자면, ‘세포자살’과 같은 거지.

솔직히 전혀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보이질 않아요. 상처를 깊게 입은 사람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전면 부정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극단적인 상처가 생성시켜내는 불신인 거지. 수평적 대화는 물론 어렵지. 자신을 감추는 방편 중 하나가 권위가 될 때, 생각만 해도 무섭잖아. 이런 경우 또 다른 폭력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 가능성이 높고. 대단히 원형질적이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말이에요.

솔직히 김영삼 전 대통령이 6.15에 대해 거의 발작 수준의 반감을 보이는 건 이해가 돼요. 박근혜가 10.4에 대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도리어 남북관계를 한 단계 높여 10.4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으면 ‘통일 대통령’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보수쪽은 당연히 지지했을 거고, 진보쪽에서도 반대할 이유도 명분도 없거든. 좋은 카드가 얼마든지 많은데, 저질에 뒷감당도 안 되는 짓을 왜 했을까 싶어.

내가 사람들한테 욕먹어 가면서도 언니 대통령은 통일사업은 열심히 할 것이다. 왜냐? 다른 건 별로 할 게 없으니까였거든. 게다가 가업이든 나랏일이든 7.4공동성명도 있잖아. 이거 다 물러야 할 판이 되었어요. 요 며칠 사이에 생각이 든 건 두 가지야. 우선 국가운영에 대한 묘안이 진짜 없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야. 지금까지가 모두 이미지였을 뿐이라면 국민은 얼마나 불쌍한 거야. 개인적으로 정치인의 문장 구성력에 관심이 많아요. 거기서 지적 능력과 태도가 거의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거든. 몇 가지 단어를, 어떻게 현장에서 구성하느냐 하는 거죠. 알다시피 언니는 문장이 퍽 단순해요. 정치인의 말이 때로 상대적으로 복잡한 까닭은 이해관계 조절능력이 정치인의 핵심 과제이자 덕목인 데 있거든. 선과 악으로만 가리게 되면 반드시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어요. ‘참 나쁜 대통령’ 같은 표현처럼 말이야.

두 번째는?

통치자의 캐릭터지. 언니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자기 자신의 무오류에 대한 확신이 지나쳐요. 이게 자신의 성장기, 그러니까 중학교 시절부터 완전한 어른이 될 때까지 극히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밑인 청와대에서만 생활한 일, 퍼스트레이디 경험, 여기다 자신이 겪은 고도의 비극적 경험과 무관하지만은 않아 보여요. 자신을 무오류로 믿도록 한 구조와 그렇게 믿어야만 헤쳐갈 수 있었던 경로의 결합인 거지. 이번 사태가 이렇게 커진 건 ‘너 방귀뀌었지’ 했더니 더 심한 말로 뒤집어씌우고자 한 거거든. 제 잘못을 가리기 위해 남의 ‘잘못’을 들춘 건데, 그게 국민이 ‘잘못’이라고 동의도 하질 않아버리고 강도도 너무 셌던 거야. 오류 불인정의 가장 나쁜 태도이자 방법인 거지. 사람이란 모순투성이인데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가면 되는 건데 말이죠.

우리 사회가 운이 없는 게 촛불집회도 이명박 정부 임기 초반에 벌어졌거든. 이번 일도 그렇고. 임기 중반을 넘겨 이런 일이 생겼으면 ‘레임덕’으로 여기고 지나가면 될 텐데 말이야.

5년 뒤가 아니라 앞으로 5년이 더 걱정이에요. 삶도 정치도 늘 현재인데 말이지.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공개할 생각을 했다고 해도 실제 공개됐다는 것을 지금도 자꾸만 믿을 수가 없어요. 국정원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말이지.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해서 내 맘대로 하는 거지.(웃음) 정말 이런 짓을 하면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 당장 물러나게 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을 못한 거야. 이런 형사범죄를 저지르면서 말이야.

민주주의와 국민에 대한 모욕의 끝판왕이야. 이완용 언행을 보면 친일을 할 때도 나름대로 다 명분을 쌓고 불가피성을 말해요. 친일이나 독재나 다들 조국과 민족을 팔았는데, 이번 국정원은 조직 이기주의뿐인 걸 보면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어.

그런 짓을 함으로써 국가의 위기를 초래한 거지.


정상적이라면 되레 보수가 들고 일어날 일이야

▲ 금산간디학교, 산마을고등학교, 산청 간디학교 학생회 학생들이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사태는 진보-보수하고는 하등 관계가 없어요.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고, 국가기밀을 만천하에 공개했거든. 정상적이라면 되레 보수가 들고 일어날 일이야.

진정한 보수라면 펄펄 뛸 일이지. 국정원의 국기문란과 국격훼손, 내란행위라고 날 세워 비판해야지. 적어도 박근혜에게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느냐’고 비판해야 정상이지. 말 그대로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질서를 뒤흔든 행위니까.

언니 대통령이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그리고 불량식품을 4대악이라고 규정하고 강력하게 처벌한다고 했거든. 불량식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불량민주주의가 판을 치고 있어요. 임기 시작인데 이제라도 민주주의의 본질을 알뜰하게 새로 깨우치셔야 해요. NLL뿐 아니라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예의도 갖추고. 그게 없으면 남은 임기동안 정상적 통치는 불가능해요.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가 새누리당이거든. 민주화가 없었다면, 지금도 육사 출신이 번갈아 대통령하고 있을 테니까.

전두환이 걍 지금껏 해먹고 있겠지. 얼마나 젊어!(웃음)

민주화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자들이 민주주의를 능멸하고 있어. 2008년 촛불집회 때만 해도 민주주의의 위기란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어요. 정부가 하도 뻣뻣하게 나오니까, 저항이 삽시간에 확산된 거지. 이번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야.

자, 결론 내립시다. 너무 길면 독자들이 짜증내요. 앞으로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 시작이지. 이게,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몰라요. 2008년 촛불도 예상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 거고. 다만 저쪽에는 정부·언론·재벌·국정원·검찰·군 같은 한국 사회의 거대한 권력집단이 똘똘 뭉쳐 있어요. 깨어서 뭉치는 시민뿐이 대안이 없는 거지.

복지운동을 제2의 민주화운동이라고 그 동안 떠들어왔는데, 생활민주주의 말이지. 정말 단순하게 제2의 민주화운동을 다시 해야 할 판이야. 제2의 문민화를 위해, 민주주의의 거함을 만들어서 물 타기의 바다를 헤쳐가야지.

그나마 희망적인 건 박정희 향수를 이번엔 떨쳐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더 이상 ‘박정희 신화’는 안통하게 됐거든.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대통령을 뽑아놨더니, 이게 보통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국민들도 알게 됐으니까. 국민은 발전을 거듭했는데, ‘그분들’만 제자리에 멈춰서 있었던 거지.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놓은 국정원도 이번에 함께 장례를 치러주고 말이야.


출처 : “국정원 사태, 정상국가라면 보수가 들고 일어날 일” 한홍구-서해성의 쾌도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