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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개표부정’ 의혹,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기고] ‘개표부정’ 의혹,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경향신문]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 입력 : 2013-07-08 21:53:24 | 수정 : 2013-07-08 21:53:24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는 그동안 잠복된 더 심각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선관위가 방치하다시피 한 ‘개표부정’이다. 이것은 작년 말 대선 때에 문제 제기됐고, 대선 뒤 유권자에 의한 선거무효소송, 해외의 유권소 운동으로 진전되었으며, 최근에는 중앙선관위와 지역선관위 관련자들이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개표부정’과 관련, 먼저 ‘전자개표기’ 문제를 들 수 있다. 16대 대선 개표에서 사용된 전자개표기가 그 뒤 전산조직(컴퓨터시스템)으로서 공직선거법 부칙 제5조를 위반한 ‘불법장비’임이 드러나자 대법원은 선관위의 ‘서면자료’를 근거로 ‘단순 기계장치’라 했고(2003), 선관위도 이를 ‘투표지분류기’로 말을 바꾸었다(2006). 단순 기계장치라 했건, 투표지분류기라 했건 그것이 제어용컴퓨터와 투표지분류기로 구성된 통합체로 되어 있는 한, 그 명칭이 어떻게 바뀌어도 전산조직인 전자개표기임이 분명하다. 항변자들은 제어용컴퓨터가 없는 투표지분류기를 전기코드에 입력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투표지분류기는 대법원이 말한 단순 기계장비가 아니고 전산장비라고 주장한다.

▲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더 따져야 할 것은 그 기계가 선관위의 주장대로 투표지분류기라 하더라도, 선관위 내부시행공문에 전산조직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부칙 제5조의 규정 범위를 벗어난 선거(대통령·국회의원·시도지사)에 사용된다면, 그것은 직권남용으로 불법이라는 것이다. 법이 그렇다면, 그것이 투표지분류기인가 전자개표기인가를 떠나서 보궐선거 이외에는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자개표기를 통과하면서 혼표, 무효표가 발생”했다는 것은 “운용프로그램 조작”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여기서 선거법이 전산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18대 대선 개표에서 혼표, 무효표가 나온 것은 선거법 위반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 아닐까.

또 하나, 18대 대선에서 개표의 주 수단인, 100장 묶음의 투표지를 1장씩 효력 유무를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2명 내지 3명이 확인해야 하는 수개표(手開票:투표지효력 유무검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표상황표에 나타난 개표개시 시각과 수개표에 소요되는 시간을 종합할 때, 수개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국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법과 유권자를 우롱한 선관위의 직무유기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수개표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직선거법 제178조 위반이며 개표무효에 해당된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선거에 있고, 그 공정성이 정권의 정당성도 담보한다. 선거에서 특정세력을 유리하게 하려는 의도는 결과적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개표상황에서 보여준 이 같은 혼란은 법을 유린하고 유권자의 의사를 도둑질한 것이다. 누리꾼 수십만이 인터넷 공간에서 분노하고, 1만여명의 유권자가 선거무효소송에 참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직도 정치권과 언론은 묵언수행 중이다. 사이비언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야권은 왜 오불관언인가. 당신들에게는 거래가 끝난 사안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밝혀지지 않은 그 진실이 한국 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선관위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허술한 법망 정비는 시급하다. 재판을 맡은 대법원이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검찰도 고발된 선관위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정치권과 언론은 야합과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대승적 결단에 나서라. 유권자들에게도 피흘려 지켜온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때다.


출처 : [기고] ‘개표부정’ 의혹,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