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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권은희 수사팀이 보낸 키워드 100개로 분석했다면…

권은희 수사팀이 보낸 키워드 100개로 분석했다면…
[경향신문] 이효상 기자 | 입력 : 2013-08-21 21:05:13 | 수정 : 2013-08-21 21:05:13


서울경찰청 디지털분석팀은 지난해 12월 14일부터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29) 노트북에서 나온 아이디·닉네임 40개와 분석팀이 임의로 결정한 키워드 4개 등 44개의 단어로 하드디스크를 분석했다. 분석팀의 분석 이틀만인 같은 달 16일 오후 11시 19분, 경찰은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청 분석팀이 정한 키워드는 ‘박근혜’, ‘문재인’,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4개였다.

그러나 분석팀이 묵살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팀의 요청대로 100개의 키워드를 분석에 사용했다면 중간수사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인 조사 받은 권은희 수사과장 지난해 대선 당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 실무책임자였던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8일 자정 무렵 '국정원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10시간 넘게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권우성 2013.05.08

지난 6월 발표된 검찰 수사결과 등을 보면, 서울청 분석팀은 하드디스크 분석 작업에서 김씨의 컴퓨터에 지난해 11월 2일 ‘투****’라는 ID가 작성한 ‘최고의 복지’라는 글이 html 파일 조각 형태로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이 글은 “공짜로 밥 먹여주고 공짜로 병원 보내주면 그게 최고인가? (중략) 부가가치세 1%만 더 올리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 절반은 들고일어날 것 같은데?”라는 내용으로 민주통합당의 ‘무상복지’ 공약을 반대하고 있다. 동시에 “증세없는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가 아닐까? 기업이 성공하고 그래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면 그것이 결국 훌륭한 복지가 되는 것이다”라는 부분을 적시해 정부 여당의 주장을 옹호한다.

국정원 직원이 특정 정치세력의 주의·주장을 비방 또는 옹호했다면 국정원법상 정치관여금지규칙 위반에 해당할 뿐아니라 선거 개입 정황이라 볼 수 있지만 서울청 분석팀은 이를 확인하고도 눈을 감았다.

서울청 분석팀은 지난해 12월 14일 김씨의 노트북의 한 문서에서 일련의 아이디와 닉네임, 해당 계정의 비밀번호 등이 담겨 있는 문서를 확인했다. 분석팀은 이 닉네임과 아이디를 통해 하드디스크를 분석했음은 물론 인터넷 페이지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도 수서서 수사팀이 보낸 키워드 100개를 참조해 분석했다면 중간 수사결과 발표는 달라졌을 것이다.

서울청 분석팀은 지난해 12월 5일 아이디 ‘토***’ ‘응*******’가 쓴 글 2건과 다음날 아이디 ‘이**’가 쓴 글이 인터넷 페이지에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이 글들은 모두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인 이정희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디 ‘토***’는 ‘남쪽 정부’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제 토론 보면서 정말 국보법 이상의 법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조차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라고 표현하는 지경이라니”라고 썼다. 전날 있었던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한국 정부를 ‘남쪽 정부’라 지칭한 것을 비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청 분석팀은 “디지털분석팀의 영역은 하드디스크만이었고, 인터넷 페이지 검색은 수사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답변은 통상적으로 피의자에 대한 최대한의 혐의점을 찾아내려 하는 사정기관의 수사 기법과도 차이가 있다. 이는 부정확한 중간 수사결과를 서울청 분석팀이 발표했음을 뒤받침한다.

수서서 수사팀이 보낸 키워드에 포함된 ‘정당’으로 검색했을 경우에도 특정 정치세력을 비방하는 글도 발견된다. 지난해 12월 6일 ‘세금이 아깝다 아까워’라는 제목의 글은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겠다는 바람에 국제사회 전체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중략) 근데 이 와중에 북한 대변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략) 이런 정당에 국고 지원이라니 정말 세금이 아깝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지난해 12월 3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두고 “과학기술자들에게 자문해 보면 둘(나로호와 북한 로켓) 사이의 차이는 러시아제인가, 북한제인가 하는 것 외에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대변인 논평을 비꼰 것이다. 이 부분도 중간수사결과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글들은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서 서울청 분석팀이 확인한 글의 예시로 제시됐던 일부분에 불과하다. 서울청 분석팀이 인터넷에서 확인한 국정원 직원의 글은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19일 국정조사에 출석한 서울청 분석팀은 “야당을 비판하는 글이 나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 당시에는 양 후보인 박근혜, 문재인이 댓글 (분석) 범위였다”고 말했다. 서울청 분석팀은 키워드를 줄임으로써 혐의의 범위를 스스로 축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종의 ‘자기검열’을 했다는 것이다.


출처 :권은희 수사팀이 보낸 키워드 100개로 분석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