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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통합진보당 탄압

유신시대로 회귀한 정치, 그에 발맞추는 언론

유신시대로 회귀한 정치, 그에 발맞추는 언론
[이완기 칼럼] 부도덕한 언론의 비호를 받는 정권은 성공하기 어렵다
[미디어오늘] 이완기·언론인 | 입력 : 2013-08-31 07:35:07 | 노출 : 2013.08.31 07:35:07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신문들은 이 사건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있고 방송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내란이라는 엄청난 사건치고는 공개된 녹취록의 내용이 생뚱맞기 짝이 없다. 불과 130여명의 조직원이 총기 몇 자루로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나라를 전복시킨다는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목숨을 걸지도 모르는 내란 모의가 그런 공개된 장소에서 강연과 토론형식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공개된 녹취록이 13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대화의 전체 맥락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라면 그 또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상한 일이다. 그러기에 3년 여 동안 이 사건을 내사했다는 국정원이 왜 하필 지금 이 문제를 터뜨렸느냐는 것이 오히려 의문점이 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국정원의 부정한 선거개입에 대한 물타기 정도로 이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검찰 수사에 의해 부정한 선거개입으로 드러났지만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이에 대한 반성은커녕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중 NLL 관련 부분을 터뜨려 이를 덮으려했다. 한 동안 NLL 대화록은 민주당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국정원 사건을 적지 않게 희석시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술수로 국민의 의혹을 묵살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선서 거부, 답변 거부, 거짓 증언, 불손하고 오만한 태도 등 국정조사에서 드러난 원세훈, 김용판 등 핵심 증인들의 비굴과 교만, 그리고 일심공판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뻔뻔스런 태도 때문에 촛불은 더욱 달아올랐다.

▲ 지난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에서 국정원의 압수수색 장면. ©연합뉴스

그러나 국정원의 부정선거 개입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고 있던 무렵, ‘추억 속의 저도’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여름휴가를 보냈던 박근혜가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해법으로 내놓은 청와대 비서실 개편은 시대착오적이며 국민정서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김기춘이 누구인가. 유신헌법을 기초했고 박정희정권 하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으며 91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때 법무장관, 92년 대선 때는 초원복국집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겼던 인물이다. 그런 전력의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은 박근혜의 의도와 향후 정치적 행보를 짐작케 한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무덤 속에 묻혀 있던 ‘維新’의 망령들이 다시 세상에 나와 활개를 치고 있는 느낌이다.

▲ 조선일보 8월 29일자 31면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이런 분위기에 적극 발맞추고 있다. 지난 8월 29일자 정권현 조선일보 특별취재부장의 칼럼은 모처럼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검찰의 칼을 무디게 하고 촛불을 잠재우려는 권력과 언론의 합동작전을 보는 듯하다. 칼럼은 국정원 댓글 사건의 검찰 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정 부장은 “채동욱 검찰총장이 ‘왕따’가 된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왜곡 수사한 검사부터 구속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열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고 소개하는가 하면, 채 총장을 ‘국정혼란의 원인제공자’로 몰아세우고 채 총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보수단체들의 신문광고 문구를 발췌 인용했다. 칼럼은 이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그에 대한 점수는 검찰 내부에서도 후한 편은 아닌 듯하다”며 채 총장을 깎아내렸다.

칼럼은 채 총장의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듣기 좋은 이야기만 나열돼 있을 뿐 국가기강을 흔드는 체제전복세력이나 종북세력에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며 알맹이가 빠졌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급기야는 채 총장에 대해 정권의 비리수사나 재벌 때리는 일에는 기를 쓰고 달려들면서 ‘불법집회’, ‘폭력시위’, ‘종북세력 척결’ 등 이른바 공안사건 앞에선 주눅이 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채총장이 어떤 길을 갈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겁박하기까지 했다. 정권현 부장의 주장은 누가 보아도 ‘채동욱 총장 끌어내리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찬 칼럼이다.

한편 지난 12일 이미 다 드러난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에 대해 법원의 재판결과를 지켜봐야 된다며 유독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KBS 임창건 보도본부장의 메시지 또한 검찰 기소와 재판과정에 대한 모종의 시그널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임명, 임창건 본부장의 메시지, 정권현 특별취재부장의 칼럼 등을 지켜보면서 70년대 유신과 80년대 공안정국의 깊은 그림자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연합뉴스

보수언론과 방송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서는 극도의 신중을 기하면서 국정원을 옹호하는 자세까지 보였지만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익명의 국정원 관계자의 주장만을 가지고 혐의사실을 기정사실화 하여 보도하고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여과없이 보도되고, 심지어는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과장하고 심지어는 만들어내는 보도마저 횡행하고 있다. 이미 언론에서는 '재판'이 끝난 상태이다.

박근혜 정권이 제일 야당의 대화 제의도 거부하면서 일말의 반성도 없이 강경일변도로 버틸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전방위적인 언론의 비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박근혜 정권을 수렁 속으로 빠져 들게 하고 있다. 왜곡과 날조를 일삼는 부도덕한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정보정치에 탐닉하는 정권이 성공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민생을 이야기하고 싶으면 민주주의를 먼저 회복하여야 하며 민주주의를 배척하고 민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출처 : 유신시대로 회귀한 정치, 그에 발맞추는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