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종교와 개독교

두 얼굴의 장 목사… 장애인 학대 사건 그 후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장애인 학대 사건 그 후
‘지옥 같은 30년 공포’ 벗어났지만 몸과 마음은 상처투성이
[경향신문] 박순봉 기자 | 입력 : 2013-09-26 06:00:01 | 수정 : 2013-09-26 07:35:45


상처투성이다.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붉은 흉터, 부풀어 올라 있는 이마, 90도로 꺾인 새끼손가락…. 지문도 거의 남지 않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깊게 파인 주름.

장홍민씨(46·이하 가명)는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남동생 홍대씨(39)의 양팔 4군데에는 이름과 휴대전화번호 그리고 ‘지체장애 1급’이란 글자가 파란색 잉크로 깊게 새겨져 있다.

문신을 지우기 위해 5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수술을 받을 때마다 견디기 힘든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눈물을 보이면서도 항상 “아프지 않다”고 했단다. 참혹했던 과거의 더 큰 고통을 떠올리며 고통을 참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일그러진 사랑의 집 ‘어둠의 철망’ 2012년 6월20일 강원도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앞에 장 목사의 장애인 가혹행위를 규탄하며 사랑의 집으로 들어가려는 장애인단체들과 피해자의 부모 등이 준비한 손팻말이 놓여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 ‘아버지’ 가면 쓰고 잔혹행위… 피해자 4명 중 2명 숨져
팔에 새겨진 ‘지체장애’ 문신, 5차례 수술에도 흔적은 남아
새 터에 점차 적응하면서도 다시 돌아갈까 불안에 떨어


거리를 떠돌던 장홍민씨와 홍대·홍아(사망)·홍오(37·여)씨 등 4명은 30년 전 강원 원주의 한 장애인 보호시설, ‘사랑의 집’에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이들 누구도 ‘공포의 삶’이 시작될 줄 몰랐다.

이들은 각기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사랑의 집’에 입소하면서 ‘형제’가 됐다. ‘사랑의 집’ 원장 장모 목사(73·수감 중)의 학대와 착취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난해 6월 언론을 통해 장 목사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이들 남매는 ‘어둠’에서 구출됐지만 공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해 7월 ‘사랑의 집’에서 벗어난 이들은 ‘원주귀래사랑의집사건해결을위한공동대책위(대책위)’의 도움으로 현재 머물고 있는 시설에 둥지를 틀었다. 여성인 홍오씨는 인근의 다른 시설에 있다.

지난달 27일 지방의 한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만난 홍민씨는 여전히 ‘장 목사의 그늘’ 안에 있었다. 장 목사 얘기만 꺼내면 얼굴을 찡그리며 “가기 싫어요!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양손을 흔들지만 장 목사를 “아버지”로 불렀다.

▲ 원주 사랑의 집 장애인들이 가혹행위를 당한 흔적.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홍대씨는 ‘사랑의 집’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밤이 되면 눈에 보이는 허리띠를 모두 가위로 자르곤 한다.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원장 ㄱ씨는 “홍대씨가 하루에만 5~6개의 허리띠를 자른 적이 있다”며 “홍대씨가 사랑의 집에서 허리띠로 장 목사에게 많이 맞은 것을 알고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홍대씨는 한때 낮엔 활동가들과 대화를 하고 활발하게 행동해 사회에 적응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밤이 되면 몽유병 환자처럼 시설을 돌아다녔다. 밤사이 옷을 여러 번 갈아입기도 했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입은 채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기도 한다. 한 번 씻기 시작하면 홍대씨는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말을 걸어도 중단하지 않았다.

ㄱ씨는 “홍대씨는 요즘 새벽에 1시간 정도를 씻는다”며 “처음에는 ‘물에 대한 집착이 있는가’라고 생각했지만, 사랑의 집에서 홍대씨가 물고문을 당했던 영상을 보고 이유를 짐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홍민씨는 처음 시설에 왔을 때 1시간에 1차례 이상 소변을 봤다. 이상하게 생각한 활동가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했지만 신체에 문제는 없었다. 점차 적응하면서 현재는 2시간 간격까지 늘어났다. ㄱ씨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며 “마음이 안정되면서 소변을 참아내는 시간도 점차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있다. 홍민씨는 시설에 적응하면서 글도 배웠다. 시설 사람들과 함께 다녀온 제주도 여행을 자랑하기도 한다. 처음 ‘사랑의 집’에서 발견됐던 이들은 모두 삭발을 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머리도 길렀다. ‘사랑의 집’에서는 로션 한번 발라본 적이 없다. 홍오씨는 로션 바르고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덕분에 피부도 좋아졌다. 홍오씨는 손톱에 에메랄드색 매니큐어도 칠했다.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원장 ㄱ씨는 “시설 이름이나 위치가 노출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자에게 여러 번 당부했다. 서류상 어머니인 장 목사의 부인이 “자식들을 내놓으라”며 이들 형제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초 ‘장 목사의 부인이 죽은 홍아씨의 진료기록을 받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ㄱ씨는 “홍아씨가 ‘사랑의 집’에서 발견됐을 때 이미 대장암 3기였지만, 장 목사 측은 우리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 사망했다며 다시 홍민씨 등을 데려가려 한다”고 말했다. 홍민씨 형제들은 요즘 ‘사랑의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불안에 떨며 괴로워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홍민씨 형제들의 친자부존재 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제기해 진행 중이다. 법적으로 홍민씨 등의 부모가 장 목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홍민씨 등은 주민등록증도 받지 못한 상태다. 이미 성인이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관할 구청 등이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ㄱ씨는 “처음 장 목사의 동의 없이 장애인 수급비를 받는 것도 어려워 우여곡절을 겪다가 시청의 도움으로 겨우 처리했다”며 “현재 우리 시설에도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셈이라 거주한 지 2년이 지나면 어디로 보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형제 외에 ‘사랑의 집’에서 지냈던 한 1급 지적장애인은 사망한 지 10년 넘게 병원에 방치돼 있다. 장 목사 부부가 시신을 인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장애인 학대 사건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