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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死大江

‘태국판 4대강 사업’에 성난 주민들 “K워터, 빨리 발 빼라”

‘태국판 4대강 사업’에 성난 주민들 “K워터, 빨리 발 빼라”
르포 l 방콕 인근 탈로 마을을 가다
[한겨레] 깐짜나부리(타이)/이유주현 기자 | 등록 : 2013.10.02 21:02 | 수정 : 2013.10.03 11:52


▲ “방수로 건설 반대” 펼침막 타이 깐짜나부리의 탈로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22일 방수로 건설 예정지인 다리 위에 올라 ‘방수로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가리키고 있다. 깐짜나부리/이유주현 기자

* 케이워터 : 한국수자원공사

타이 수도 방콕에서 자동차로 2시간가량 걸리는 깐짜나부리 지방의 탈로마을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강변에 깃들어 있다. 저지대가 대부분인 타이의 여느 강처럼, 이 마을을 끼고 있는 매끌롱강은 강둑 높이까지 차올라 고요히 흘러간다.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평화로운 이 마을이 지난 7월 발칵 뒤집혔다. 타이 정부가 앞으로 5년 안에 이 마을 중심부를 관통하는 방수로를 만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지난달 22일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마을 주민들의 불안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민 60여명이 주민회관에 모여들었다. 방수로 건설을 맡은 ‘케이워터(K-워터·한국수자원공사)의 나라’, 한국에서 기자가 취재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주민들은 마치 공청회라도 온 듯, 질서정연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수로 건설과 관련해 주민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은 쏨끼엣(68)이 나섰다. 그는 “우리들은 매끌롱강 준설 때문에 이미 두번이나 이주를 당한 사람들이다. 30여년 전 준설로 마을을 옮겼고, 그래도 홍수 피해를 막을 길이 없어 또다시 이주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노인 중엔 이번에 또 이사를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쓰러지신 분까지 있다”고 하소연했다.

방수로가 건설되면 나타날 문제들도 걱정이었지만, 더 큰 분노는 정부가 그동안 자기들을 속였다고 여기는 배신감에서 비롯됐다. 쏨끼엣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정부는 농사에 도움이 될 배수로를 만들려 할 뿐이라고 했는데, 한달 뒤엔 방수로가 건설될 것이며 마을 주민들도 집을 옮겨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마을 청년이 정부가 연구용이라며 보여준 보고서와, 물관리사업 입찰에 응한 사업자들한테 제시한 과업지시서(TOR)를 비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이 사업이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며 환경부와 인권부에 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을 한 상태다. 쏨끼엣은 “우리 마을은 도로·관개 시설이 잘 돼 있어 농사짓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우리는 다른 데로 이사가기 싫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회관에 걸어놓은 펼침막에도 “우리 마을은 방수로 필요 없다. 방수로는 모두를 힘들게 한다. 우리는 갈 곳도 없고, 여기 말고 먹도 살 곳도 없다”고 적어놓았다.

방수로 건설계획에 마을 발칵
“매끌롱강 준설로 이미 두번 이주
또다시 이사가란 말이냐”
“배수로라더니…정부가 우릴 속여”

공사 맡은 ‘수공’에도 경고
“토지보상을 왜 한국회사가 하나”
“시간 끌수록 손해만 보게 될 것”


9000여명이 사는 탈로마을에선 집과 농토가 직접 방수로 터에 포함돼 매각해야 하는 주민들이 300여 가구 정도 된다. 나머지 주민들도 근심스럽긴 매한가지다. 매끌롱 강변에서 호텔과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인 전우진씨는 “만약 일이 잘못돼 수위가 1m만 높아져도 우리 가게와 호텔은 모두 잠긴다”고 말했다. 그는 <한겨레>가 탈로마을을 찾기 전날인 9월21일에야 방수로 건설 소식을 듣고 놀라서 주민회관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이 마을에서 가까운 타무앙댐 일대가 범람하면 깐짜나부리에서 어느 지역까지 물에 잠기는지를 가상 상황으로 그려놓은 지도를 가리켰다. 방수로를 통해 빼내는 물이 터러마을 앞을 흐르는 매끌롱강으로 합쳐질 경우, 담수 용량 여유분이 많지 않은 매끌롱강이 넘칠 위험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방수로 건설 예정 터가 어디냐고 묻자, 주민들은 방수로 건설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걸어놓은 다리 위로 몰려갔다. 방수로는 다리를 지나 주민회관 앞 도로 등 마을 한가운데를 가르게 된다. 마을 사람들 모두 앞으로 한국수자원공사가 토지 보상 작업을 진행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쏨끼엣은 “원래 이 방수로 공사 같은 것은 정부가 먼저 토지 이용 계획을 세우고 주민 의견을 청취한 다음에 사업자와 계약을 해야 하는데, 이번 사업은 아주 뒤죽박죽”이라며 “토지 보상은 정부가 할 일인데 왜 한국 회사가 와서 하느냐”고 물었다. 한 주민은 “한국에 돌아가면 케이워터한테 빨리 발 빼라고 말해 달라. 시간을 끌수록 손해만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탈로마을을 방문한 타이 환경운동가 쁘라츤 콘텟은 “방수로가 건설되는 곳은 타이에서 인구 밀집이 그나마 덜한 곳이지만, 상류의 깜팽펫, 중류의 우타이타니, 하류의 깐짜나부리 세 곳 모두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다”며 “이번 방수로 공사는 외국 기업이 끼어 있고 워낙 대규모 사업이라 저지하기가 쉽지 않지만 핵심 지역의 주민들이 저항한다면 정부도 강행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타이 물관리 사업
타이 정부가 진행 중인 물관리사업은 홍수 피해를 막으려고 5년 동안 3500억밧(약 11조원)을 들여 주요 강유역에 대규모 방수로·저수지·댐 등을 건설하는 것이 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 가운데 방수로 건설 등 6조 2000억원 규모의 공사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출처 : ‘태국판 4대강 사업’에 성난 주민들 “K워터, 빨리 발 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