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내란음모 정치공작

국정원판 ‘역사전쟁’

[한겨레21] 국정원판 ‘역사전쟁
[특집] 국정원 대선 개입 원세훈 공판에서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반대세의 비밀>…
[한겨레21 제981호] 이문영 기자 | 2013.10.14


<한겨레21>은 지난 6월 초 ‘반대세의 비밀? 국정원이 알려줄게’(964호 특집)란 제목의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뿐 아니라 단행본 출판물 형태로도 대남 심리전을 펼쳐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은 정보기관이 나서서 국민을 ‘대한민국 세력’과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이분화를 시도한다. 최근 원세훈 전 원장 재판에서 이 책이 언급되면서 국정원 역사 전쟁의 실체가 재확인됐다.

역사 전쟁은 교과서를 놓고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교과서를 들고 역사 전쟁의 전면에서 싸울 때, 국정원은 <반대세의 비밀>을 펴내며 역사 전쟁의 이면을 공략했다.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미래를 지배하려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 인터넷 댓글 달기도 국정원을 앞세운 정치권력이 대통령 선거라는 ‘전 국민적 역사쓰기’에 개입해 미래를 움켜쥐려는 역사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원세훈의 역사 전쟁은 음지에서 이뤄졌고, 남재준의 역사 전쟁은 양지에서 이뤄진다. 전자는 익명의 아이디 뒤에 숨어 암약했지만, 후자는 정체를 드러낸 채 국정의 선두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을 ‘국정의 원톱’으로 세우면서, ‘정보정치의 필봉’을 휘두르는 국정원의 역사 전쟁도 한층 노골화되고 있다. _편집자


▲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 발생 뒤인 9 월12일 대전 대덕구 통합진보당 대전시당사 앞에서 보수 단체 관계자들이 인공기와 통합진보당기가 함께 인쇄된 현수막을 불태우고 있다(왼쪽). 국정원 직원이 집필한 반 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

‘역사를 정치 무기화’하는 데 국가정보원이 앞장섰다는 <한겨레21>의 보도가 수사기관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뉴라이트가 주도하는 역사 교과서 전쟁의 ‘국정원판 버전’과도 같다. 국정원이 극우 학회 뒤에 숨어 집필한 편향된 현대사를 교재 삼아 사회운동화가 시도된 정황도 포착된다. 국정원이 국민을 상대로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원세훈 전 원장 취임 두 달 만에 발행

지난 8월2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을 규명하는 1차 공판에서 검찰은 증거 420~422호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국정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강의 자료였다. 강의안은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얼굴>(이하 <반대세>)을 토대로 작성됐다. 국정원이 <반대세>를 내·외부 교육에 활용했다는 증거였다. 책의 저자는 현대사상연구회로 돼 있으나, 국정원 직원인 이희천 국가정보대학원(국정원 직원 교육기관) 교수가 책을 썼다고 검찰은 밝혔다. 국정원이 책의 실체적 작성자로 보인다고도 했다. 국민을 ‘대세’(대한민국 세력)와 ‘반대세’(반대한민국 세력)로 나누는 책의 이분법에서 원세훈 전 원장 ‘종북관’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심리전단이 정치 활동과 선거 개입에 나서게 된 이론적 배경을 책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겨레21>이 지난 6월 초 단독 보도(제964호 특집 ‘반대세의 비밀? 국정원이 알려줄게’ 참조)를 통해 제기한 의혹이 검찰을 통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 쪽은 “국정원이 <반대세>를 대국민 심리전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고 본다. 재판에 출두한 국정원 관계자들의 발언과 책의 내용에도 유사점이 많았다. 국정원의 사상을 함축적으로 모아둔 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반대세>는 촛불시위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책을 연다. 책은 원세훈 전 원장의 취임(2009년 2월) 두 달 만에 발행(2009년 4월)됐다. 원 전 원장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물로 보인다. 전임 김성호 원장은 촛불시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됐다.


“특정 집단을 ‘반대세’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책을 만들어 국민을 상대로 배포·교육하는 게 국가의 정보기관이 할 짓인가. 그 자체가 자신들이 수호하겠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행위다.” - 국정원의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


책은 ‘반대세’의 뿌리를 찾기 위해 시대를 거슬러 오른다. 일제시대 사회주의운동에서 시작해 미군정기→이승만 정부→박정희 정부→전두환·노태우 정부→김대중·노무현 정부→이명박 정부를 시기마다 짚으며 ‘좌익세력의 활동’을 정리했다. 전국민중연대·한국진보연대 등을 ‘좌성향 단체’로 꼽는가 하면 ‘좌익세력의 전략전술’도 분석했다. ‘북한을 알아야 종북좌익이 보인다’며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별도 장도 배치했다. 국가 내 분열을 막아야 할 국정원이 특정 집단을 ‘반대세’로 지목해 북한과 연결시키며 ‘비국민화’하는 전략이다. 책은 “좌경세력을 얼마나 많이 순화시켜 대한민국 세력으로, 나아가 우익세력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대한민국 체제의 안정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고 주장한다.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 사진 외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 8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난 8월5일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에 007 가방을 들 고 출석해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오른쪽).

책의 저자인 이희천씨는 애초 국정원 정보요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국사 시험 교재를 집필한 뒤 원내에서 역사 전문가로 인식되면서 교수 요원으로 발탁됐다고 전해진다. 출간 직후 동료들한테 책을 돌린 뒤 ‘청와대에 보고돼 칭찬받았다’며 자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책 집필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이희천씨의 책 출간은 국정원의 지원 아래 이뤄졌다. 국정원은 “(이 교수의) 저술 참여는 정상적인 허가를 거쳐 이뤄졌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특정 집단을 ‘반대세’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책을 만들어 국민을 상대로 배포·교육하는 게 국가의 정보기관이 할 짓인가. 그 자체가 자신들이 수호하겠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했다. <반대세>는 국정원이 쓴 대남심리전 이론서이자, 정권 비판 세력을 ‘비국민화’하는 사상서이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역사책이란 지적이다.


민주당, <반대세> 분석 전문가 좌담회

<반대세>를 활용해 사회운동을 조직하려는 동시다발적 ‘협업의 흔적들’도 발견된다. 책 출간 직후 국방부는 책을 구입해 장병 정신교육 참고도서로 배포했다(국방부 발행 <국방일보> 2009년 8월5일 기사). 한 사단에선 초급 지휘관들을 대상으로 독서감상문 발표대회가 열렸고, ‘장병 참여형 정신교육’의 일환으로 책 내용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군대란 특수한 환경을 이용해 ‘국정원의 이분법적 역사관’을 체화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인터넷에선 ‘대세운동’이 시작된다. 책 표지에 저자로 이름을 올린 현대사상연구회가 인터넷 카페(2009년 6월 개설)를 만들고 대세운동을 펼친다. 단체 회장은 극우논객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다. 이희천씨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현대사상연구회는 카페 게시글에서 “2008년 미 쇠고기 촛불시위를 통해 대한민국이 큰 위협에 처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국민들에게 그 실체를 제대로 인식시키는 것이 절실하다는 애국적 사명감으로 만들었다”고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반미 촛불시위는 언론, 인터넷, 각계 좌성향 단체들이 종합 기획하여 만든 최대의 히트작”이라 했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나타날 위기를 막기 위해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을 위협으로 몰고 가는 세력의 존재를 알리고 이들의 전략전술을 낱낱이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 발동했다”고도 했다.

▲ 북한인권학생연대와 이 2011년 9월 각각 주최하고 후원한 ‘안보서평 공모전’ 포스터. 〈반대세의 비밀〉은 1~3회 공모전에서 모두 지정도서로 선정됐다(왼쪽). 〈반대세의 비밀〉출간 직후 현대사상연구회가 개설한 ‘대세사랑’ 인터넷 카페.

2010년 초부턴 언론매체들이 가세했다. 보수 인터넷 언론 <뉴데일리>는 3월부터 ‘대세운동’ 확산을 목적으로 연재 기사를 내보낸다. 대세운동의 의미, 특징, 미래 등을 설명하는 5차례의 기사와 <반대세>의 일부분을 발췌한 7차례의 기사를 띄운다. <뉴데일리> 기사 전후로 <코나스넷>과 <미래한국> 등도 동참한다.

대학생들의 독후감대회도 조직됐다. 북한인권학생연대는 2011년 4월, 9월, 2012년 5월 잇따라 안보독후감 대회를 진행했다. <반대세>는 세 차례 모두 지정도서로 선정됐다. 2회 땐 <월간조선>이 후원했고, 이희천 교수는 ‘저자 특강’도 했다.

인터넷 댓글 달기가 국정원의 게릴라전이라면 <반대세>는 진지전이다. 전자가 2012년 대선이란 ‘한판 승부’를 위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보수의 장기 집권을 위한 역사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정치 무기화’하는 지점이다.

민주당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는 10월8일 국회에서 <반대세>를 해부대에 올린다. <반대세>를 분석해 국정원의 이분법적 사고와 역사 인식을 진단하는 전문가 좌담회다. 검찰의 증거 채택이 계기가 됐다. ‘국정원의 비밀, 그들 이론의 실체는 무엇인가?’란 제목을 달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신경민·진선미 의원실이 공동 주관한다. 현대사와 역사 교육, 국정원법과 헌법, 법철학,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메스를 든다. <한겨레21>은 좌담회 발제자들의 분석을 토대로 국정원 역사 전쟁의 뿌리에 접근해본다.


확인 안 된 ‘소련 사주’ ‘좌경이념서클'

역사는 사실 논증과 토론의 영역이다. <반대세>는 학회 뒤에 숨은 국정원 ‘역사 공작’의 산물에 가깝다. 사실 오류가 적지 않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잡아냈다. <반대세>는 제주 4·3 사건을 1948년 초 남로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규정했다. 박 교수는 “4·3은 1947년 3·1운동 때 발생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남로당 지령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당시 제주도민들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반대세>가 각 시기 좌익세력 활동이라고 제시한 사례들도 지적됐다. <반대세>는 서울대 문리대 ‘신진회’(1957)와 서울대 법대 ‘사회법학회’(1958), 고려대 경제학과 ‘협조회’, 부산의 ‘암장’(1955)을 ‘좌경이념서클’로 지목했다. 박 교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서울대 60년사>에 따르면, 신진회에는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류근일씨가 활동했으며, 사회법학회에선 남재희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활동했다”고 짚었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붙인 좌익세력 활동 딱지도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 났다”며 일축했다.

<반대세>는 1948년 ‘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을 소련의 사주에 따른 것으로 썼다. 박 교수는 “미군정 자체 평가는 미군정의 친일 경찰 등용과 무리한 쌀 수집에 의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1845년 9월20일 스탈린은 북한 주둔 소련군 지휘관들에게 북한에 단독정권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는 대목에도 박 교수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스탈린의 지시는 무리하게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반대세>를 관통하는 기본 프레임은 ‘종북’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비판 세력을 종북으로 몰며 척결 대상화하는 흐름과 상통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종북은 가장 낡았지만 가장 힘이 센 ‘마녀사냥’의 잣대다. 종북은 교학사 역사 교과서 논란을 일으킨 뉴라이트 역사학의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교육과)는 “<반대세>는 친일 청산을 놓고 과감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21세기에 접어들었고 당시 생존자들도 거의 사라져가는 마당에 끊임없이 친일파 청산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한 좌익의 음모라는 주장”을 비판했다. “‘이승만 정부가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좌익세력에게 반정부·반국가 활동의 빌미를 주었다’는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 <반대세>는 친일 청산 문제에도 종북 프레임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북사관’ 아래에선 “이승만의 단정론도 박정희의 5·16 쿠데타도 모두 북한과 좌익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한 고뇌에 찬 결단”으로 둔갑한다. 이승만·박정희 부분은 김 교수가 “교학사 교과서가 <반대세>라는 국가정보기관의 교육 교재를 정규 고등학교용 교과서에 옮겨놓은 듯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보는 사례들이기도 하다. <반대세>는 효순·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를 두고도 “좌성향 단체들이 민족주의를 자극해 감정적인 행동을 유발시켜 외교관계는 물론 국익에도 손실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북한을 주적으로 상대하는 국정원 교육 교재와 미래 세대가 배울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인식과 사관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반대세>를 헌법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반대세>가 ‘강자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고 분석했다. 책은 “우리나라는 떼를 쓰면 통하는 떼법이 형법 위에 있고, 헌법 위에는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말이 있다”고 서술한다. 오 교수는 “정치 권력자의 횡포에 대항하여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표현하는 기본권이 집회 및 시위의 자유다. ‘떼법’과 ‘국민정서법’이란 말은 헌법 원칙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일방적 복종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권력자의 반법치적 용어”라고 꼬집었다.


전교조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와 똑같아

박주민 민변 사무차장(변호사)은 ‘좌편향 교과서와 교사가 반대세를 만든다’는 논리에 반박했다. 그는 “전교조에 대한 정부나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와 매우 닮아 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방송토론에서 전교조를 두고 ‘이념교육, 시국선언, 민노당 불법 가입 등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반대세>의 인식과 박 대통령의 시각과 일맥상통한다는 지적이다.


“반미 촛불시위는 언론, 인터넷, 각계 좌성향 단체들이 종합 기획하여 만든 최대의 히트작이다. (…)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을 위협으로 몰고 가는 세력의 존재를 알리고 이들의 전략전술을 낱낱이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 발동했다.” - ‘대세운동’ 인터넷 카페 게시글


‘원세훈 국정원’ 대선 개입 진실 규명은 ‘남재준 국정원’의 거센 역습 앞에 풍전등화다. 북방한계선(NLL)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를 ‘최적의 타이밍’에 터뜨리며 진실 규명 요구를 비켜갔다. 최근엔 국정원의 NLL 대화록 공개가 치밀한 사전 준비에 따른 ‘계획된 작전’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탈출구를 열어준 만능열쇠는 ‘종북’이었다. 수사를 이끈 채동욱 검찰총장은 내쫓겼고, 원세훈·김용판 두 사람에 대한 재판은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최현락 경찰청 수사국장 등 ‘김용판의 조력자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김용판의 외압을 폭로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만 경고 조처를 당했다. 국정원이 ‘셀프 개혁안’을 마련해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핵심 개혁 사항인 국내 정보 수집과 수사권은 존치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수만 개의 불꽃으로 타오르던 촛불집회는 1천 명대로 잦아들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은 ‘무소불위의 괴물’로 환생하고 있다.

최근 남재준 원장은 ‘국정원 새벽론’을 설파했다. “국정원은 나라가 어슴푸레한 새벽에 있을 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나아갈 길을 짚어주는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조선일보>가 붙인 표현이다. 남 원장은 “통일을 앉아서 기다릴 게 아니라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인식하에 외부적으론 북한 정권의 변화에, 내부적으론 국내 종북세력의 준동에 대비하는 쪽으로 조직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도 했다. “국정원엔 국가 유사시에 나와 죽음을 함께할 사람들이 많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남 원장의 ‘국정원 새벽론’ 키워드도 ‘종북’

‘남재준 국정원’의 역사 전쟁 키워드도 ‘종북’이다. 국정원에 어슴푸레한 새벽이 닥칠 때마다 움켜잡을 방향타 역시 ‘종북’일 것이다. 그렇게 현 정부 초기부터 국정원은 어둠을 헤쳐왔다.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이 쓰고 있는 ‘오늘의 역사’다.


출처 : 국정원판 ‘역사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