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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분신한 이남종씨의 ‘국민’유서, 끝까지 ‘유서’ 아니라는 경찰

분신한 이남종씨의 ‘국민’유서, 끝까지 ‘유서’ 아니라는 경찰
수사과장 “국민이란 단어도 없고 유서가 아니다” 주장
장례위원회 “경찰 고인 죽음 축소 의혹” 적극 반박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 입력 : 2014-01-03 14:27:38 | 노출 : 2014.01.03 18:30:31


경찰이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분신했던 이남종씨가 국민에게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이남종씨 분신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생활고로 몰아가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부 언론에 책임을 돌리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경찰, “국민에게 쓴 유서는 없다”

분신 사건을 조사한 백승언 서울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은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다이어리 전문을 보면 어디에도 유서 형식으로 쓴 글은 없다. 가족에게 쓴 게 (유서의)전부"라며 "짐을 지우고 간다. 슬퍼하지 말라고 가족에게 남긴 글은 유서가 맞다고 보지만 다른 것은 유서라고 볼 수 없다. ‘안녕들하십니까’라고 시작된 글은 정부 비판과 불만이 가득하고 최근 대학가에서 나도는 글과 비슷한 형식의 글이며 나머지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라는 글도 5줄이 전부고 국민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말했다. 백 수사과장은 "장례위원회에서는 유서가 모두 7통이라고 하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국민에게 썼다고 하는 것은 유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씨가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는 펼침막을 내걸고 분신했고, 그가 쓴 다이어리에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음에도 형식상 유서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경찰의 입장은 이씨가 다이어리에 정부 비판적인 심정을 담은 글을 쓴 것을 가지고 좌파진영이 ‘유서’라고 억지를 쓰고 있다는 보수진영의 주장과도 맥이 닿아있다.

▲ 지난달 31일 이남종씨가 분신한 서울역고가차도에는 아직도 그날 불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치열 기자


최초 분신 사건 발생 후 경찰 조사 내용은

경찰은 유족의 공식 입장을 듣지 않고 보도자료를 내는 등 이씨의 죽음을 생활고를 몰고 가려고 했다는 장례위원회의 주장도 적극 반박했다.

남대문 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분신 사건이 발생되고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이씨가 타고 온 렌트카 인적사항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 정보와 실제 이씨가 일치하는지 보기 위해 이씨의 지문을 채취해 1월 1일 새벽 최종 분신한 사람을 이씨로 확정했다. 경찰은 최종적으로 이씨를 확정하기 전인 31일 밤 9시경 이씨를 분신한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이씨의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이씨의 동생과 연결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했다.

그리고 경찰은 동생의 경찰 진술을 바탕으로 해서 1일 오전 10시경 "유족인 동생의 진술에 따르면 이 씨가 신용불량 상태에서 빚 독촉으로 많이 힘들어 하였다면서 경제적인 이유 말고는 분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 이남종씨 분신 현장인 서울역 고가도로

장례위원회는 경찰이 동생의 진술만을 듣고 보도자료를 발표한 것에 대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씨의 다른 유족들은 경찰의 발표에 대해 유서에 경제적인 문제를 언급한 것도 없고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발한 바 있다. 결국 이씨가 분신하면서 주장했던 내용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경찰이 사실상 고인의 뜻을 훼손하기 위해 동생의 진술 중 생활고와 관련된 내용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백승언 수사과장은 "동생 분을 조사하면서 (유서가 쓰인)다이어리를 전부 보여줬다. 이런 내용이 특이 사항이 있는데 짐작하는 정치활동을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평소 전혀 그런 말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라며 "그리고 빚 독촉과 관련해서는 동생의 진술이 명확했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고 형이 고인의 카드를 써서 빚이 됐다고 했다. 경제적 이유 말고는 다른 게 없다고 해서 빚이 많은 것 같지도 않는데 과격한 방법으로 세상을 떠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했지만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씨 사망 두시간만에 보도자료 발표한 경찰

경찰이 보도자료를 낸 시점도 논란이다. 경찰은 1월 1일 오전 7시 55분경 이씨가 사망하고 오전 10시경 곧바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장례위원회는 유족들의 참고인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이었고 분신 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시점에서 서둘러 발표한 것은 정치적 파장을 줄이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31일 밤 수십명의 기자들의 취재 확인 전화를 받고 조사된 내용이 없어 다음날(1일) 오전 10시에 보도자료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었고, 보도자료 발표를 예고한 시간까지 수사된 내용이 동생의 진술 밖에 없어 이를 반영했다는 주장이다.

백승언 수사과장은 "고인의 죽음을 경제적 문제로 치부해 몰고 갔다고 한 부분은 분명히 동생분 ‘진술에 의하면’이라고 쓴 것이고 복합적으로 판단된다고 한 것인데 언론이 입맛대로 해석해 쓴 것"이라고 비난했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이씨가 가입한 보험이 동생으로 명의가 바뀌었다고 밝힌 부분 역시 "경찰조사에서 동생이 형이 이런 일을 하려고 보험자 명의를 바꾸려고 했나보다라고 해서 특이사항이라고 판단해 보도자료를 넣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경찰의 의도와는 달리 언론은 경찰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이씨의 분신은 '보험사기'를 노린 것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장례위원회, 유서 반환 지연한 것이 누군데?

유서 반환 과정의 마찰과 관련해 경찰과 장례위원회 측 주장도 엇갈리고 있다.

장례위원회는 이씨의 법률자문단인 박주민 변호사의 입회 조사에서 유서 사진 촬영을 막았고 국과수 감정을 이유로 들어 유서를 돌려주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변사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의 지휘를 받아 유서를 반환해야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검찰 지휘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변호사의 사진 촬영을 막은 것에 대해서도 변호인의 조사 입회를 허용하고 참여권을 보장했고 수사가 마무리되기 전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 장례위원회가 공개한 이남종씨의 유서

장례위원회 김상호 대변인은 경찰의 주장에 대해 “저희들이 고인의 뜻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유서를 하루빨리 공개하라고 한 것인데 의도적으로 지연한 것이 바로 경찰이다. 2일 오전 10시에 유서 반환 문제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또다시 1시에 오라고 늦췄고, 사진을 못 찍게 하고 하루를 넘긴 사실 자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2통의 유서는 국민에게 전한 유서가 아니라는 경찰 주장에 대해서도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 있고 공개된 상태에서 어떤 누구도 유서가 아니라고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내용을 보면 안부를 묻기 힘들다라는 대목과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과는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시시오. 두려움을 가져가겠다는 부분은 국민을 상대로 묻는 것이고 자신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가져갈 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달라는 대국민 메시지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장례위원회는 이씨의 장례 일정을 확정했다. 4일 오전 서울역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합동 참배하는 영결식을 마치고 오후 고향인 전라남도 광주로 옮겨 노제를 지낸 후 망월동 구 묘역에 안치한다는 계획이다.

▲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이남종 씨의 빈소앞에 정당, 시민단체 등에서 보낸 화환들이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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