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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주민 40명 암으로 사망... 이게 혹시 너 때문?

주민 40명 암으로 사망... 이게 혹시 너 때문?
['밀양의 미래' 봉두마을①] 송전탑 25개... 주민들, 지중화-집단이주 요구
[오마이뉴스] 김종술 | 14.02.19 17:38 | 최종 업데이트 14.02.19 17:38


밀양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 송전탑이 지어진 전남 여수 봉두마을에 최근 또 송전탑이 세워져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다. 40여 년을 송전탑과 함께 조용히 지냈던 봉두마을 주민들은 왜 지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밀양의 '미래'가 될 수 있는 봉두마을을 찾아 2박 3일 동안(17~19일) 취재했다. - 편집자말

특별취재팀 : 김종술·황주찬·신원경·문나래·소중한 기자


▲ 1970년대 송전탑이 들어선 이후 마을 주민 40명이 각종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도 7명이 암과 투병 중이다. 전남 여수 봉두마을 위성사진에 '암 사망자가 살던 곳(빨강)', '암 및 백혈병 투병자가 살던 곳(검정)', '송전선 주변 사고로 사람 혹은 가축이 사망한 곳(파랑)'에 점을 찍었다. ⓒ 신원경

윙~윙~ 지직, 지지직!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전남 여수 봉두마을 뒤 앵무산 자락의 송전탑이 울기 시작합니다. 이럴 때면 마을 주민들은 소름이 끼치고 무서움이 밀려든다고 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텔레비전 음량을 키운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1970년대부터 송전탑으로 둘러싸인 봉두마을에선 지금까지 폐암·대장암·위암·간암·혈액암·백혈병·뇌종양·전립선암·심혈관계통질환 등으로 40명이 사망했습니다. 현재도 각종 암과 신경계질환·뇌경색·뇌졸중·피부염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분이 30명에 이릅니다.

그동안 병들어 죽는 사람이 생겨도 '그러려니' 했던 마을 주민들은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운동을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자식 혼삿길 막힐까봐 가족의 병조차 알리기 어려웠던 주민들은 송전탑이 부모형제를 빼앗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4개 송전선로 따라 25개 송전탑이 마을 휘감아

봉두마을에 전기도 안 들어오던 1970년대, 한전은 거대한 송전탑을 마을에 세웠습니다. 당시 한전은 주민들에게 '동양최초' 시공이라고 말했답니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주민들은 울력하여 작업자를 도왔습니다. 새참도 해 먹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전깃불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에 불만을 표시하지도 못하고 주민들이 한참 뒤 돈을 모아 옆 동네에서 전기를 끌어왔다고 합니다.

당시 송전선로는 마을의 약 100m 뒤쪽에 154kV와 345kV짜리 두 개, 마을 앞에 154kV짜리 한 개가 세워졌습니다. 선로를 따라 송전탑 19기가 마을을 휘감았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6월부터 다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사용할 전기를 끌어가기 위해 송전탑 공사를 하면서 지금은 봉두마을에 있는 송전탑만 따지면 25개가 넘습니다. 주민이 200명인 걸 고려한다면, 주민 8명당 송전탑 1기가 들어서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7월 '봉두마을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만들어 공사장 인근에 농성장을 꾸렸습니다. 주민들은 송전선의 지중화(선로를 땅으로 묻는 공법)와 마을 뒤편 앵무산 너머로 송전탑 이전 또는 마을 전체 집단이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전은 "봉두마을의 요구만 받아주면 다른 마을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며 주민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합니다.


"500년 동안 17대가 건강하게 살았는데... 삶이 망가졌다"

▲ 봉두마을 주민이 17일 전남 여수 봉두마을회관에서 마을 위를 지나는 송전선로와 이를 연결하는 송전탑을 가리키고 있다. ⓒ 소중한

대책위는 1970년대부터 송전탑이 들어선 이후 마을을 떠나지 않고 거주하던 주민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40명이 각종 암으로 사망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현재도 7명이 암과 투병 중입니다. 그리고 각종 질병에 걸려서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이 30명이 넘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송전선과 20m 떨어진 ㄱ씨의 축사에서는 어미소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기형 송아지까지 태어났다고 합니다. 소가 반복해 죽자 이웃 분들이 알까봐 인근에 파묻기도 했답니다.

80여 가구 200여 명에 불과한 봉두마을에 40명의 암환자가 지속적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과 송전선로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전에서는 송전선로가 암을 유발했다는 근거가 있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주민들은 송전을 시작한 이후 암환자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며 그 원인으로 송전탑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암을 앓고 있는 위상복(83)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500년간 17대가 다들 건강하게 이곳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송전선로가 건설된 뒤로 삶이 망가졌다. 밭갈이하려고 소를 몰고 송전탑 밑을 지나다 보면 소가 뭔가에 놀란 것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몸부림을 치고, 졸졸졸 따라다니던 강아지도 송전탑 근처론 따라오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이 송전탑으로 빨려 올라가고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 거린다. 송전탑 근처는 죽음의 장소로 변해 버렸다."

▲ 봉두마을 주민들이 18일 마을 입구에 마련된 봉두마을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송전탑 공사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소중한

최근 마을 주민들은 형광등을 들고 송전탑 아래에 섰습니다. 형광등을 머리 위로 올리자 반짝반짝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관련기사 : "워매, 우리마을도 형광등이..." 765kV 송전탑 이어 345kV도)

위 할아버지는 "밭에서 농사짓던 사람이 3명인데 모두 폐암·위암이 걸렸다"며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선을 연결하지 않아도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는 그런 곳에서 온종일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의심했습니다.

위성산(남, 60)씨 역시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계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봉두마을회관 앞에서 위씨를 만났습니다.

"2009년, 처음에는 어깨와 목을 움직일 수가 없더니 지금은 다리까지 마비가 오면서 잘 걷지 못하고 있다. 통증을 잊기 위해서 하루도 안 빼고 약을 챙겨 먹고 있다. 지금은 농사를 접고 가까운 거리에 사는 손자와 시간을 보내면서 아픔을 잊으려고 하고 있다."

위씨는 두 살 배기 손자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며 아픈 다리를 끌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 이미 송전탑 19기가 있는 봉두마을에 지난해부터 추가 송전탑 공사가 진행 중이다. ⓒ 봉두마을송전탑반대대책위

기자는 50여 일 밀양에 머무르며 취재를 했습니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에 가축이 죽고 사람들까지 병에 걸려서 죽어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밀양의 미래가 봉두마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기자의 가슴 깊숙이 박혔습니다.

봉두마을 어디에 서든 송전탑 여러 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눈앞에 얽히고설킨 전선만큼이나 질병에 시달리고 우려하는 마음에 어르신들의 고통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밀양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암울할 뿐입니다.


출처 : 주민 40명 암으로 사망... 이게 혹시 너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