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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선거 때만 되면 시장 새로 지어준다고 하더니..."

"선거 때만 되면 시장 새로 지어준다고 하더니..."
작으면서도 어물전과 과일전, 잡화전, 의류전 다 있는 화순 이양오일장
[오마이뉴스] 이돈삼 | 14.04.11 16:32 | 최종 업데이트 14.04.11 16:32


▲ 작은 가게 앞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있다. 화순 이양오일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 이돈삼

"옛날에는 말도 못하게 컸제. 소전도 있을 정도였능께. 근디 지금은 형편없어. 점심때믄 장이 끝나부러. 이제는 볼 것이 없당께. 완전히 배 불렀어. 마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담배도 팔고 술도 솔찬히 팔았는디."

60년 가까이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김 할머니의 얘기다. 긴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는 장터 입구에서 가게를 꾸리고 있다. 상황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게 할머니의 얘기다. 게다가 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 화순 이양오일장 전경. 슬레이트 지붕의 장옥이 낡고 오래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 이돈삼

"선거 때만 되믄 장을 새로 지어준다고 하더니만, 아직까정 소식이 없네. 이번 선거에 나올 사람들도 장을 새로 지어주겄다고 하던디. 몰라. 장을 새로 지으믄 예전처럼 좋은 시상이 올런지 누가 알랑가."

할머니의 장탄식이 또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이번 선거 입후보자들에게 다시 기대를 하는 표정이다.

점심 때가 가까워지자 장터는 금세 고요해졌다. 모닥불을 피워 고구마를 굽던 할아버지도 보이지 않는다. 간간이 오가던 사람들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지난 4일, 전남 화순의 이양오일장에서다.

▲ 이양오일장에도 묘목전이 펼쳐져 있다. 나무 심기 좋은 계절임을 알 수 있다. ⓒ 이돈삼

▲ 이양오일장 풍경. 5일 만에 서는 장터지만 한산하기만 하다. ⓒ 이돈삼

화순 청풍면과 이양면을 잇는 이양교를 건너자 장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기에도 아담한 이양오일장이다. 매 4일과 9일에 선다. 영산강 줄기 지석천을 따라 20여 동의 장옥이 줄을 맞추고 섰다. 장옥의 슬레이트 지붕에는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하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장터다. 어물전과 과일전, 잡화전이 있다. 의류전도 보인다. 장터 곳곳에 봄도 스며들어 있다. 쑥과 냉이가 보인다. 부추도 나왔다. '대문을 걸어 놓고 먹는다'는 노지 부추다.

▲ 이양오일장의 어물전. 겉보기에 보잘 것 없지만 갖출 건 다 갖췄다. ⓒ 이돈삼

봄은 어물전에도 찾아와 있다. 봄햇살에 내걸린 조기가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다. 새조개는 껍질을 벗어던진 채 알몸으로 손님을 맞는다. 자그마한 함지박에서는 도다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난장에는 추억 속의 빗자루가 나와 있다. 수숫대를 엮어 만든 것이다. 옷에 물을 들이고 음식의 빛깔도 내주는 치자도 보인다. '약방의 감초'라는 감초도 만난다. 모두 국내산이다.

▲ 달래 씨앗. 검정 비닐에 가득 담긴 씨앗이 더 정겨워 보인다. ⓒ 이돈삼

▲ 도라지 씨앗. 씨앗전은 이양오일장에서 만나는 행운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갖가지 씨앗이 모인 좌판을 만난 건 행운이다. 70대 후반의 김종규·박양심 어르신 부부가 펼쳐놓은 것이었다. 장터와 함께 살아온 지 52년째 된다는 어르신들이다. 펼쳐놓은 봉지에는 더덕, 달래, 상추, 대파 씨앗이 가득 들어있다.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른다.

"엔간한 건 여그(스쿠터)에다 싣고 와. 짱짱해. 짐을 많이 실어도 끄떡없어. (장흥)배산에서 여그까정 오는디 카브가 너무 많아. 고약혀. 턱(과속방지턱)만 열두 군데여. 근디 눈 감고도 다녀불어."

박 할머니의 얘기다. 그러면서 씨앗 이야기를 들려준다. 돌갓으로 나물을 무쳐 먹는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들 어르신은 씨앗만 파는 것도 아니다. 마을사람들이 갖고 나온 씨앗을 사기도 한다.

▲ 씨앗전의 박양심 할머니. 50년 넘게 장터를 지켜 온 이양오일장의 산증인이다. ⓒ 이돈삼

"집에 돌갓 씨가 조금 있는디. 팔믄 얼매나 줄라요?"
"갖고 와서 낯빠닥을 보여줘야 알지. 어떻게 알겄소?"


손님과 주고받는 대화가 재밌다. 정겹기도 하다. 오래 전엔 장흥 장평과 보성 복내사람들도 이용했다는 이양오일장. 오는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엔 새롭게 정비될 수 있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 김종규 할아버지와 박양심 할머니. 50년 넘게 씨앗을 사고팔며 이양장터와 함께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news.jeonnam.g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 "선거 때만 되면 시장 새로 지어준다고 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