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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사과' 남재준, <조선> 빼고 다 돌아섰다

'3분 사과' 남재준, <조선> 빼고 다 돌아섰다
[분석] 박근혜, '원칙' 깨면서까지 사과했지만... 야당과 언론의 사퇴요구 거셀 듯
[오마이뉴스] 지용민 | 14.04.16 13:57 | 최종 업데이트 14.04.16 13:57


(지난 대선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 "특검과 관련해서는 지금 현재 재판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 2014년 1월 6일 박근혜 신년기자회견 중

"정부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고,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 2013년 11월 18일 국회 시정연설 중

"지금 수사 중이거나 재판중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댓글 의혹 사건이 재판결과 사실로 밝혀지면 그 점에 대해서는 법에 따른 문책이 있을 것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 2013년 9월 16일 박근혜와 여야대표 회담 중


'재판 중인 사안'이란 이 표현은 박근혜 취임 이후 입장을 표명함에 있어 중요한 행동기준이 됐다. 채동욱 검찰 하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때에도 사과나 유감표명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재판 중인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사법부 최종 결과가 나오면 그 때 입장을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촛불이 거세게 일었던 시점에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를 비롯한 청와대, 정부, 여당은 야당의 강력한 '특검' 요구에 일관된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재판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 결과 사실로 밝혀지면 그 점에 대해서는 법에 따른 문책을 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의 '재판 결과 이후'라는 일관된 태도에 야당은 무력했다. 3권분립 원칙과 '무죄 추정의 원칙'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특검이고 사과인가라는 박근혜의 일관된 태도에 김한길의 야당은 무력했다. 천막농성을 하고, 거센 촛불집회를 했어도 박근혜의 사과는 끝내 받지 못했다.


원칙을 깨고 '재판 중인 사건'에 사과한 박근혜

그런 점에서 지난 15일 박근혜의 전격적인 사과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날 박근혜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사과했다. 박근혜는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나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한 셈이다.

재판결과가 나왔나? 아니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지난 2일 김 과장 등 2명을 기소한 뒤 14일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아무개 처장(3급) 등 국정원 직원 2명을 추가 기소했다. 즉, 박근혜의 사과는 검찰의 기소가 이루어진 시점에 나왔다. 지난 1년간 야당과 시민단체의 강력한 사과 요구를 '재판 중인 사건'으로 외면해 왔던 태도로 볼 때 180도 달라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에 박근혜가 사용한 단어는 구체적이다. '잘못된 관행'을 인정했고,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를 언급했다. 박근혜의 정통성을 뒤흔드는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재판 중인 사건'이라며 외면했던 박근혜가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에서는 설명하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번 박근혜의 사과는 취임 이후 네 번째 대국민 사과다. 정부 출범 후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한 대국민담화 이후 윤창중 성추문 사태,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에 이어 네 번째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과는 앞선 사과와 차원이 다르다. 재판 결과가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남아 있는데, 박근혜가 사과한 것이다.

어쨋든 살아남은 남재준 남재준 국정원장이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조선일보> 4월 16일자 1면. ⓒ 조선일보pdf

같은 날 남재준 국정원장 역시 기자회견 자리에 섰다. 남 원장은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정원장으로서 책임지겠다"고 말해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남 원장의 사과성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남 원장은 "일부 직원들'이 증거위조로 기소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원장으로서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박근혜가 자신의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남 원장을 감싸는 태도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표 수리 과정을 통해 국민들은 박근혜가 '정적'으로 분류된 공직자에게는 어느 정도 가혹하게 진상규명을 요구했는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채동욱 혼외자 조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반면 이번 남 원장은 국민들이 보기에 가혹할 정도로 감싸고 있다. 수사권한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증거를 조작했는데도, 박근혜는 사과한 뒤 감쌌다.


국정원법 제7조, 남재준에게 책임을 묻다

대국민 사과하는 남재준 국정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1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가 사과까지 하면서 힘껏 감쌌고 추락한 3대의 무인기가 '누가 보더라도' 북한 소행으로 주장되는, 쉽게 말해 국가안보가 더욱 주목받는 시점이지만, 남 원장이 끝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국가정보원법> 제7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법 제7조 (원장·차장·기획조정실장)
② 원장은 정무직으로 하며, 국정원의 업무를 총괄하고 소속 직원을 지휘·감독한다.
③ 차장은 정무직으로 하고 원장을 보좌하며, 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


14일 서천호 국가정보원 2차장이 관리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박근혜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수리했다. 청와대가 충분히 교감한 관리책임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국가정보원법> 상 국정원 직원에 대한 관리 책임은 '원장'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즉, 관리책임은 원장에게 있다는 것이다.

3항을 보면 국정원 차장은 '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를 한정해 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그렇다면 서천호 2차장은 도대체 왜 관리책임을 졌는가.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이 발생하는 그 시점에, 남 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직무 수행이 불가하다고 권한을 서천호 2차장에게 위임하기라도 했는가.

동법 <시행령>을 보면 국정원장의 관리책임이 더욱 명확하다. '정보사범 등'으로 표현되는 국정원 직원에 대해 내사 수사에 착수만 하더라도 '즉시' 국정원장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이후 검사의 처분이 있을 때에도 '즉시' 국정원장에게 통보해야 하고, 기소가 이루어져 재판결과가 나오더라도 검찰은 국정원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즉시'란 표현에 주목하게 된다. 국정원장은 소속 직원들에 대한 관리를 어느 경우에든 '즉시'하도록 법 시행령에 명문화돼 있다. 차장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시행령 제7조 (정보사범 등의 내사등)
① 정보수사기관이 정보사범 등의 내사·수사에 착수하거나 이를 검거한 때와 관할 검찰기관(군검찰기관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에 송치한 때에는 즉시 이를 국정원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②관할 검찰기관의 장은 정보사범 등에 대하여 검사의 처분이 있을 때에는 즉시 이를 국정원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③관할 검찰기관의 장은 정보사범 등의 재판에 대하여 각 심급별로 그 재판결과를 국정원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대동단결했던 조중동, '남재준'에서 갈라졌다

박근혜의 남재준 처리는 그동안 보여준 박근혜의 '사과 원칙'에도 맞지 않고, 국가정보원법의 관리책임과도 정확히 어긋난다. 국정원은 원장을 꼭짓점으로 한 피라미드 구조이다. '누가 보더라도' 차장이 책임지고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이례적으로 박근혜가 전격 사과했음에도 보수언론의 비판의 매섭다. <중앙일보>는 16일 '국정원,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놔둘 수 없다' 제목의 사설에서 국정원은 이제 더 이상 베일에 가려진 자유 수호자로 믿기 어렵게 됐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남재준 국정원장을 경질하지 않은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총체적 책임을 져야 할 남재준 원장은 개혁을 지휘할 자격이 없다. 그는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비슷한 입장이다.

<조선일보>는 입장이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라졌다. 지난 3월 2일에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남 원장에 대한 강력한 인사조치를 요구했다. 증거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진 지금에는 입장이 변했다. 4월 16일자 '남재준 국정원장 유임 결정 이후' 제목의 사설에서 "어쨌든 기회는 다시 주어졌다"고 한달 반 전의 책임지라는 주장을 슬며시 거둬들인 후 "남 원장이 이를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자신을 혁신하고 국정원을 진정한 국가 파수꾼으로 바꿔주기를 바랄 따름이다"는 당부의 말씀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박근혜가 이번에도 남재준을 감쌌지만 보수언론의 목소리는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과 '진정한 국가 파수꾼으로 바꿔달라'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이에 더해 진보언론에서는 격앙된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한겨레>는 16일 '남원장, 사과가 아니라 사퇴할 때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남 원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보여준 모습은 몰염치와 오만함의 극치다"라고 강력히 비판한 뒤 "남 원장의 사임이야말로 국정원 개혁의 시발점이다"라고 주장했다.

정리하면 박근혜는 보수언론조차 '스스로 사퇴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남재준을 대신해 사과하고 감쌌다. 남재준 원장은 3분 동안 사과하고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을 '일부 직원들' 탓으로 돌렸다. 국가정보원법 상 직원들 관리책임이 있지만 2차장이 관리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어쨌든' 그는 살아 남았다.

그러나 야당과 언론에서는 남 원장의 사퇴 요구를 거듭 할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지나친 감싸기이고 잘못된 관리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과연 박근혜의 남재준 구하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올해 연말에도 남재준은 독립군 군가 '양양가(襄陽歌)'를 부를 수 있을까. 박근혜의 남재준 감싸기의 본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됐다.


출처 : '3분 사과' 남재준, <조선> 빼고 다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