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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②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②
정윤회 딸 ‘판정 시비’부터 박 대통령 “나쁜 사람”까지
‘공무원 인사’ 뒤흔든 희대의 사건은 ‘수첩 인사’에서 비롯

[한겨레] 정유경 기자 | 등록 : 2014.12.10 15:51 | 수정 : 2014.12.11 23:20


[더(the) 친절한 기자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파문’이 일주일째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일보>의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 보도가 나온 지난달 28일 이후 주요 신문들이 1면부터 5~6면(신문사에선 이를 종합면이라고 부릅니다)까지 이 이슈로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안이 무겁다는 얘깁니다. <세계일보> 보도 이후, <중앙일보>의 정윤회씨 인터뷰, <조선일보>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인터뷰가 이어졌고, 급기야 <한겨레>가 지난 3일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한 구체적인 사례 및 박근혜가 직접 개입했다는 단독 보도를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우선 많은 뉴스들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만 스무 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정씨가 국정에 개입한 것이 확인되면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겨레>는 그래서 ‘더(the) 친절한 기자들’을 통해 이번 파문의 전말을 A부터 Z까지 찬찬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 2탄과 3탄을 이어가면서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이 기사 url만 가지고 계시면 업데이트된 요약정리를 계속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시작합니다. 꽉 잡으세요.


▲ 정윤회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지난 <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정윤회 게이트 총정리’ 1탄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를 둘러싼 일련의 보도들을 묶어 맥락을 정리했습니다. 사태의 원인은 윤창중으로 시작해 문창극에 이르기까지 ‘인사 참사’가 이어지면서, 정치권과 상의도 없이 ‘밀봉 인사’를 고집하는 박근혜에 대한 여야의 불만이 커져 간 것이었습니다. 인사하는 사람 따로 있고, 책임지는 사람 따로 있느냐는 겁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 때는 이남기 전 홍보수석과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태를 책임지고 불명예 퇴진했지만, 둘 다 윤창중 기용을 추진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권 지지도까지 떨어뜨린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파문’ 때는 여권 중진들이 서로 이런 말도 안되는 인물을 누가 박근혜에게 추천했는지를 두고 ‘너냐’, ‘아니다’ 지목하는 희극이 벌어졌습니다. (▷ 관련 경향신문 기사 바로가기)

인사같이 중차대한 일을 혼자만의 결정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정치권에서 상식적인 일은 아닙니다. 여권 중진 의원들도 아니라고 하니, 혹시 따로 박근혜가 상의하는 어떤 ‘비선’이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쉬쉬하던 ‘정윤회’란 이름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두 차례에 걸친 국무총리 인선 실패 전후입니다. 특히 지난 6월 25일은 밀린 포문이 일제히 터져나왔습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식 채널 아닌 소규모 비선 라인”이 공적인 인사 검증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지원 새정치연합의원은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사를 청와대) 비선 라인이 하고 있다는 의혹을 모든 언론, 국민, 정치권이 하고 있다. 만만회가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인사 책임론’ 속에서, 정윤회씨 외에도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오랜 박근혜의 보좌진 진영과 박근혜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간의 알력 다툼의 결과가 보고서 유출의 형태로 터져나왔을 가능성을 다뤘습니다.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 보고서’를 둘러싼 복잡한 흐름 중에서도 두 가지 큰 맥락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로, 청와대의 ‘공식 문서’가 만들어진 배경입니다. 앞서 설명한 인사참사를 둘러싼 책임공방을 들 수 있겠지요. 둘째로는, 정말로 보고서 내용이 사실인지, 청와대의 인사에 공식 라인이 아닌 ‘외부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입니다. 여기서 해당 보고서의 디테일에만 집착해 ‘십상시면 정확히 10명이 맞냐’거나 ‘정말 매달 두 차례 그 중식당에서 모였나’라거나 검찰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청와대 문건은 도대체 누가 유출한 거냐’ 등에만 주목하면 큰 줄기를 놓친 채 곁가지만 보는 모양새가 됩니다.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첫 보도를 시작으로 12월 2일 <조선일보>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단독 인터뷰까지에 대해 얘기했던 총정리 1탄은 첫 번째 의문을 풀어주는 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외부세력(정윤회)이 국정에 개입했느냐, 는 밝히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정윤회 국정개입’ 실제 사례 캐낸 <한겨레> 보도

여기에 ‘반전’을 더하고, 궁극적인 두번째 의문에도 불을 밝힌 것이 <한겨레>의 단독 보도입니다. <한겨레>는 12월 3일자에서 “정윤회 관련 문체부 국·과장, 박 대통령이 직접 교체 지시” 라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박근혜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일개 과장까지 일일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해 인사 조처를 요구하는 전례 없는 ‘꼼꼼함’을 보였는데, 하필 그 사안이 정윤회 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정윤회씨의 딸 정아무개 선수가 지난해 7월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마장마술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와 그 전 부인인 최순실 씨 사이에는 딸 정아무개(19)씨가 있습니다. 이 딸은 승마선수로, 국내 선수권 대회에서 다른 선수 한 명과 1, 2위를 번갈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전국승마대회에선 이 다른 선수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출전권을 따내려면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판정 시비가 일었습니다.

그런데 판정 논란이 일면 대개 협회 내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던 관행과 달리, 시합 다음날 느닷없이 상주경찰서에서 심판위원장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했습니다. 이어 전례 없는 승마협회 비리 조사 및 감사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대회 다음달인 5월엔 청와대에서 승마협회를 감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문체부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두달 뒤 ‘감사 결과 보고서’를 올렸는데, 문체부의 진아무개 체육정책과장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협회도 문제지만 정씨 편에도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청와대가 원했던 감사 결과가 아니었던 걸까요? 2013년 8월 21일, 박근혜는 유진룡 문체부 장관 등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렀습니다. 수첩을 꺼내 들고 진 과장과 주무책임자인 노아무개 체육국장의 실명을 ‘콕’ 찍어 거론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1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공무원들은 인사에 몹시 민감합니다. 정기 인사 시즌도 아닌데 특정 공무원이 갑작스레 다른 곳으로 발령나면, 발령의 배경을 두고 온갖 설이 난무합니다. 업무에도 지장이 생길 정도입니다. 문체부는 박근혜의 지시에 따른 ‘돌출 인사’가 일으킬 이런 잡음을 우려해 한두달 뒤에 있을 정기 인사 때 자연스럽게 진 과장과 노 국장을 교체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박근혜는 집요했습니다. 이틀 뒤 두 사람에 대한 인사 조처가 이뤄졌는지 재차 확인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열흘만인 9월 2일 전격 경질(‘대기발령’)됐습니다.

이 보도의 의미는 큽니다. 우선 보도가 사실이라면, ‘민간인’ 신분의 정윤회씨 부부가 딸의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박근혜 권력까지 동원해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인사를 뒤흔든 희대의 사건이 됩니다.

게다가 청와대는 이 보도 이전까지 내부 공식문서인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를 ‘찌라시’로 격하하면서 문서에 적혀 있는 ‘외부 세력 개입설’을 ‘허위’로 애써 단정지어 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외부 세력’이 개입한 구체적인 정황과 사례가 드러난 것입니다. 하필 ‘박근혜의 비선 실세’로 꼽힌 정윤회씨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에 박근혜가 직접 나서서 국·과장의 좌천 여부를 깨알같이 확인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라는 해명은 상당한 부분에서 진실성이 의심받게 됐습니다.

대통령이 일개 과장급의 인사까지 챙길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기존의 ‘통념’도 깨졌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고유 권한입니다만, 그것도 공직사회의 검증과 같은 절차적 투명성을 갖춘 가운데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의 장과 같은 고위급 인사에 한정된 얘기였습니다. 부처의 국장과 과장급 인사는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의 고유 권한입니다.


침묵 지킨 청와대 확인 사살한 <조선일보>의 역습

<한겨레> 보도에 청와대는 애써 침묵을 지켰습니다. 대신 김종덕 현 문체부 장관이 <한겨레> 보도 하루 뒤인 지난 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지시에 의해 그런 문체부 국장과 과장 인사가 이뤄졌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진 과장 등의) 업무 능력이 떨어져서 (유진룡) 전임 장관이 인사했다고 본다”고 변명했습니다.

이번에도 반격은 다시 <조선일보>에서 나옵니다. 12월 5일자 <조선일보> 4면은 ‘박근혜가 직접 지시한 게 맞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인터뷰를 실으며 ‘확인 사살’에 나섭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한겨레> 보도가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한 이야기”라며, “정윤회씨 쪽이나 그에 맞섰던 쪽이나 다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두 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올린 건데, 정씨 입장에서는 상대방만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을 (우리 문체부가) 안 들어주고 자신까지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괘씸한 담당자들의 처벌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관련 조선일보 기사 바로가기)

또한 유진룡 전 장관은 재임 시절 갈등설이 일었던 김종 문화체육부 차관을 두고, ‘김종 문화체육부 차관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하나로 묶어 생각하면 정확하다”며 “김 차관의 민원을 이재만 비서관이 V(박근혜)를 움직여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유 전 장관 자신은 청와대와 인사 청탁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반면 차관은 청와대(3인방) 쪽에 서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신임 대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기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과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렇다면 왜 하필 문체부였을까요. 문체부는 소속·산하 기관이 48개나 됩니다. 박근혜를 도운 사람들에게 보은할 자리가 그만큼 많은 셈입니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기관장에 오른 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2013년 3월), 정성근 전 아리랑국제방송 사장(지난 2월),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지난 4월), 자니 윤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지난 7월) 등은 모두 대선 전부터 박근혜를 도왔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인사 압력’을 넣은 상대가 하필 유진룡 전 장관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입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취임했다가 6개월만에 경질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아리랑TV 부사장직을 두고 사석에서 인사 청탁을 넣었는데, 유진룡 당시 차관이 부탁을 들어주기는커녕 부사장 직을 없애버리는 ‘배 째라’식 강경 대응을 했다가 경질되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습니다. 당시 “배신자로 낙인찍혀 ‘조직의 쓴맛’을 보았고(…) 그 대가가 아무리 가혹하고 힘겹더라도, 끊임없이 정의의 호루라기를 불어야 합니다”(김정권 전 의원)라는 글을 당 누리집에 걸어가며 유진룡 전 장관을 ‘노무현 대통령의 부당 인사개입에 맞선 영웅’ 취급했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들이, 이번에는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박근혜가 비슷한 인사개입 사례를 만들자 되레 “배신의 칼날이 무섭고 가벼운 처신이 안타깝다”(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며 유진룡 전 장관을 비난하는 모습도 공교롭습니다.

아무튼 유진룡 전 장관이 박근혜의 청와대에서도 밉보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석달째를 맞아 ‘내각 쇄신’을 하겠다며 지난 7월17일 유진룡 전 장관을 ‘면직’ 처리 했다는 점에서도 그런 근거를 볼 수 있는데요. 당시 후임자로 지명됐던 정성근 전 후보자가 음주운전 및 사생활 논란으로 청문회 첫날을 넘기지 못하고 ‘자진사퇴’한 다음날이었습니다. 후임자도 없이 장관 자리를 공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보통 물러나는 장관도 후임자가 확정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던 정홍원 총리조차 후임자가 확정되지 않아 계속 자리를 이어가던 차였습니다. 유진룡 전 장관이 직언을 했다가 단단히 찍혔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확인된 박근혜의 문체부 인사개입

유진룡 전 장관이 사실 관계를 확인해주며 파문이 커지자, 정부 여당과 청와대는 허둥지둥한 모습을 노출했습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오전까지 “인사는 (유진룡 당시) 장관 소관”이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7시간 뒤 다시 기자들 앞에 서서는 “(진 과장과 노 국장의 경질은) 박근혜가 주문한 체육계 적폐 해소에 성과를 내지 못했던 탓”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해명으로 우선 박근혜가 인사권자인 유진룡 전 장관을 제치고 직접 일개 부처 국과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한겨레>가 보도했던 정윤회 부부 개입 의혹과 달리 ‘진 과장과 노 국장의 미흡한 성과’에 전가한 말이기도 합니다.

권종오 기자의 취재파일로 청와대의 해명에 대해 대답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박근혜가 국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7월 23일이고 두 사람의 잘못을 지적한 것은 8월 21일입니다. (…) 한 달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소극적이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되고 이것이 경질의 사유가 된다면 대한민국 공무원 중에 보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 관련 SBS 보도 바로가기)

국회에서는 <조선일보>의 유진룡 전 장관 인터뷰가 보도된 5일 오전 김종 차관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질의를 받던 도중 부하 직원인 우상일 체육국장에게 “(이 파문을 둘러싼 구도를) 여야 싸움으로 몰아가야” 한다는 조언이 담긴 쪽지를 받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김종 차관은 또 유진룡 전 장관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방침도 밝혔습니다. 현 문체부 장관은 청와대 개입이 사실무근이라는데 다음날 청와대 대변인이 개입한 건 맞다고 뒤집으면서 장관의 기자회견을 거짓으로 만들고, 현 문체부 차관이 전 장관을 고소하는 전대미문 사태까지 이르면서 문체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상탭니다. 이 와중에 지난 4월 ‘공주 승마’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정윤회 부부의 딸이 2014인천아시안게임국가대표로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점을 인정받아 승마 특기자로 지난 8일 이화여대에 합격한 사실이 드러나 화제가 됐습니다. (▷ 관련 기사 : 정윤회 딸,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체육특기자전형 합격)

다시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강도 높은 검찰 조사가 이어지면서 문제의 보고서에서 삭제됐던 부분들도 속속 드러났습니다. 이에 따르면, 정윤회씨를 필두로 한 모임에서 ‘경질’이 검토된 것은 김기춘 비서실장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아일보>는 12월 6일자에서 정윤회씨가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비리나 문제점을 파헤쳐서 빨리 쫓아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감찰보고서에 실려있다고 보도했고(▷ 관련 동아일보 기사 바로가기), <중앙일보>는 12월 8일자에서 역시 정윤회씨가 ‘김덕중 국세청장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 장악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내용이 감찰보고서에 실려있다고 보도(▷ 관련 중앙일보 기사 바로가기) 했습니다.

이 보고서 내용은 사실일까요. 마침 희한하게 맞아떨어진 감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정현 의원과 김덕중 전 국세청장은 각각 6월과 8월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정현 의원은 7.30 보궐선거에서 ‘기사회생’했지만, 자리에서 물러날 때만 해도 사퇴 배경을 놓고 경질성 등의 의혹이 분분했습니다. 김덕중 전 국세청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윤회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인사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배경입니다.

실세니 계파 논란이 달아오르자 박근혜는 정면승부하는 ‘강수’를 뒀습니다. 7일 일요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여당 지도부 오찬에서 “정윤회는 이미 오래 전에 내 옆을 떠난 사람이고, 동생(박지만 회장)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는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박근혜 입에서 직접 정윤회씨와 박지만 회장 사이의 권력쟁투와 관련한 해명이 나온 겁니다. 물론 한 마디로 인사참사의 ‘배후’는 없다는 얘기이긴 했습니다.

이 발언은 다음날인 월요일자 신문의 1면을 일제히 장식했습니다. 박근혜는 또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지목된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1부속비서관, 안봉근 2부속비서관에 대해서도 “보좌진 했던 사람들도 정확하게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권력 암투를 벌였다면 내가 옆에 뒀겠나”며 세간에서 제기되던 ‘문고리 권력 3인방 문책설’마저 일축했습니다. (▷ 관련 기사 : 박 대통령 “절대 안 흔들려”…문체부 인사 의혹엔 ‘함구’)

▲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왼쪽 사진)과 ‘십상시 모임’ 최초 제보자인 전직 지방국세청장 출신 박아무개 씨(가운데), 박씨가 정보 출처자로 지목한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이 9일 오전 3자 대질 조사를 마친 뒤 각각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거나 뿌리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의 말대로라면, 김기춘 비서실장도, ‘문고리 권력 3인방’도, ‘외부세력’ 정윤회도, 박지만 EG 회장도 박근혜의 인사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되는데요. 정윤회씨가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청와대 감찰보고서와 각종 인사들의 관련 증언, 그리고 정윤회 부부와 연관된 일에 직접 부처 인사를 뒤흔든 박근혜의 지시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 ‘외부세력’ 정윤회씨나 박지만 EG 회장의 영향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우연히 이뤄진 일일까요? 그렇다면 문제의 청와대 ‘인사 참사’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청와대의 실세가 이 진돗개다.” 의문을 잔뜩 남긴 ‘강경 발언’을 마친 박근혜가 여당 의원들 앞에서 이런 ‘농담’을 던졌다고 합니다. 청와대에는 새롬이와 희망이라는 두 마리 진돗개가 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 모두 박장대소했답니다. ‘농담’의 때와 정도를 가리는 게 어떨까, 싶지만 박근혜의 ‘진돗개 사랑’은 유명한 얘깁니다. 지난 2월 5일 “한번 물면 살점이 떨어져도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을 공직자들에게 거듭 강조했습니다. 윗분의 ‘개 사랑’ 에 감화를 받아서인지, 개 비유도 넘쳐납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나는 정권의 와치독(감시견)”(12월2일자 <조선일보>)이라고 주장했고, 정윤회씨는 “(토사구팽) 사냥개였지만 이제 진돗개가 되겠다”(12월1일자 <중앙일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들의 비유는 또 우연일까요?

청와대는 강경한 검찰 수사 드라이브를 거는 동시에 언론사 명예훼손 ‘고소’로 사태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비서진 8명이 <세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데 이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8일자에 ‘김기춘 비서실장 지시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조응천 전 비서관 검찰 진술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동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거든요. <세계일보>는 사상 초유의 언론사 압수수색까지 각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모로, 참 나쁜 ‘수첩’입니다.


출처  정윤회 딸 ‘판정 시비’부터 박 대통령 “나쁜 사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