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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담뱃값 인상의 추억…‘박정희부터 박근혜까지’

담뱃값 인상의 추억…‘박정희부터 박근혜까지’
‘담배의 사회문화사’ 정권 세수 확보 담뱃값 유혹
흡연율 낮추기 위한 다른 정책은?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 입력 : 2015-01-04 19:51:06 | 노출 : 2015.01.04 19:56:47


2015년 새해 담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편의점 주인과 담배를 사려는 흡연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얘기부터 1970년 성행했던 '까치담배'(한 개비로 파는 담배)가 팔리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2000원이 오른 담뱃값 인상으로 벌어지는 살풍경이다.

애초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는 찾아볼 수 없다. 당장 옆에 있는 흡연자들에게 물어보라. 커피는 끊어도 담배는 끊을 수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흡연자들이 사재기로 쌓아둔 담배가 떨어지는 시점인 3개월을 전후로 해서 담배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상 이번 담뱃값 인상이 국민 건강을 걱정한 흡연율 낮추기가 아니라 서민증세에 있음을 누구나 알면서도 당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담뱃값 인상으로 국민 건강권을 지키겠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고 세금만 더 내는 '바보'가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거란 얘기다.

이번 담뱃값 인상을 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박 전 대통령이 세수 확보를 위해 서민의 주머니를 빼낸 노골적인 정책이 담뱃값 인상이기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은 서민증세 효과가 있기 때문에 국민의 저항이 심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수차례 담뱃값을 인상했다. 박근혜 정부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담뱃값 인상을 밀어붙였고 여야 합의를 이끌어냈다.

<담배의 사회문화사>(강준만 저)에 따르면 담뱃값은 정권의 오래된 세수 확보의 수단이 돼왔다. 담뱃값 인상이 정권에겐 좋은 추억을 남아있는 이유다.

지난 1905년 흡연율이 높아 국채보상운동의 주요 방법으로 금연운동이 꼽힐 정도였다. 1907년 대한매일신보는 "2,000만 동포가 석달 만 연초를 끊고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1,300만원이 될 터이니 국채 같은 것이 어찌 걱정이랴"라고 쓰기도 했다.

1945년 해방 정국엔 담배 공급을 두고 정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시 담배는 배급제였는데 절반도 배급되지 않은 현상이 나오면서 담배 생산품에 대한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고 않고 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이 쿠테타로 집권하고 내놓은 정책 중엔 '양담배' 금지령도 있었다. 공무원의 집무 태도에 관한 지침을 내려 보낸 것. 박 정권은 1961년 쿠테타 집권해인 7월 국가 재건의 의지를 표현한 '재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는 '파고다'라는 담배를 내놨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인 1962년 8월 1일 박정희 정권은 담배 11종 가격을 최고 60%에서 최저 16.6%까지 인상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31일 밤은 얼마 전의 화폐개혁 발표의 밤만은 못했어도 그래도 어지간히 어수선한 밤이었고 이는 애연가에게만 그치는 표정도 아니었다"고 전했다. 당시 담배 가게에서 소비자들과 실랑이하는 모습은 오늘날 담뱃값 인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습과 비슷했다.

강준만 교수는 책에서 "국민 건강을 염려한 가격 인상은 아니었다. 국고 수입을 위한 것"이었다며 "그래서 '연기는 하늘로 돈은 국고로'라는 기사 제목까지 등장했다"고 전했다.

▲ 담배의 사회문화사(강준만 저)

박정희 정권은 1965년 연초 제조창을 준공해 고급 필터담배를 만들었고 그해 담배 생산량은 작년 대비 11% 증가해 188억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어 박 정권은 1967년 10월 전격 담뱃값을 인상했다. 동아일보는 그해 12월 담뱃값 인상에 대해 "국민생활의 간접부담을 더욱 더 과중시키고 음성적인 재정적자를 메우려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 같은 비판에도 담뱃값 인상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1968년 12월 28일 담배 '신탄진'은 50원에서 60원으로, '파고다'는 40원에서 50원으로 올랐다. 1975년 4월 21일에도 담뱃값이 평균 46.7% 인상됐다.

박근혜 정부도 "담뱃값 인상은 흡연의 폐해로부터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청와대 안종범 경제 수석비서관)이라고 강조했지만 서민증세 효과로 세수 확보가 용이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정부는 담배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고 국민건강이 좋아진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번 담뱃값이 2000원 오르면 44억갑인 담배소비량이 29억갑으로 34% 줄어들 것이라면서 세금 수입은 약 2조 8000억원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소비가 15% 줄어든다고 해도 5조 6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히게 된다는 통계도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엔 담뱃값 500원을 올렸지만 전년대비 4.7% 소비가 증가했다. 일본의 경우 2010년 300엔이었던 담뱃값을 440엔으로 올렸는데 전년대비 판매량은 줄었지만 담배 매출은 전년대비 100% 이상 올랐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세수확보를 위한 '노림수'라는 지적을 피할 수 또다른 이유는 담뱃갑에 흡연을 경고하는 그림을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뱃갑 경고그림은 세계 70여개국이 도입한 금연 정책의 하나로 정부의 금연 정책 의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지는데 정부는 이 같은 정책을 내놓고도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 누리꾼은 "결국은 담뱃값은 올리고 경고 그림은 삭제해서 담배는 그대로 팔고 결국은 세금만 더 걷는다는 것으로 결론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는 지난 2일 흡연 경고그림 부착 의무화를 포함한 법안을 발표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흡연 의무화 경고 그림은 지난 2013년 임시국회에서도 논의됐지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도 통과하지 못했다.

담뱃값 인상에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도 실제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효과적인 정책은 방치한 채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인상 정책만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흡연은 중독성이 높아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낮기 때문에 가격 인상 효과가 적다. 가격이 올라가면 질 나쁜 담배를 찾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이다. 영국의 경우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담뱃값을 40% 인상한 결과 일반 담배보다 말아피우는 담배의 소비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에서 흡연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담뱃값 인상이 소득분배에 역행하는 현상도 예상할 수 있다.

▲ 2015년 1월부터 담뱃값이 1갑당 평균 2천원 인상된다. 한 편의점 담배 판매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담뱃값과 흡연율이 상관없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은 담뱃값이 OECD 평균의 61.6%이고 흡연율이 18.5%에 불과하지만 영국의 경우 담뱃값이 OECD 평균의 151.5%에 달하는데도 흡연율은 27%에 이른다.(2005년 기준)

금연 공간을 확대하면서 흡연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인데 담뱃값 인상은 흡연자에게 과중한 이중 부담을 강요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같이 담뱃값 인상에 대해 주요 반대 근거를 제시했던 사람은 2005년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담뱃값 500원 인상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2013년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담배가격을 10% 올리면 소비가 3.6% 감소한다"며 자신의 입장을 180도 바꾸고 담뱃값 인상을 주장했다.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찬반이 바뀌는 모습을 봐온 국민들이지만 또다시 알고도 당하는 ‘바보’가 돼버린 셈이다.


출처  담뱃값 인상의 추억…‘박정희부터 박근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