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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김무성 선친 김용주의 ‘친일 발언’

[전문] 김무성 선친 김용주의 ‘친일 발언’
[한겨레] 등록 : 2015-09-17 17:55 | 수정 : 2015-09-17 17:56


김무성 선친 김용주(金田龍周·가네다 류슈)의 애국기 헌납운동 독려 광고.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민족문제연구소는 17일 서울 동대문구의 민족문제연구소 5층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 김용주씨의 친일 행적 논란과 관련해 사료를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냐, 애국자냐는 논쟁이 있었던 김용주에 대해 기초 사료로 검증한 결과,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씨가 일제 강점기 때인 1943년 경북에서 열린 친일 행사(징병제 시행 감사 적미영격멸결의 선양전선 공직자대회)에서 한 발언의 전문이다. 이 발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자료집 <김용주 과연 애국자였나?> 중 ‘징병제 찬양 및 전쟁 동원 선동’ 부분에 나와 있다. 굵은 글씨체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강조한 대목들이다.



【자료】.징병제시행감사적미영격멸결의선양전선공직자대회기록(徵兵制施行感謝敵米英擊滅決意宣揚全鮮公職者大會記錄).(전선공직자대회사무국, 1944.1.28)

제2일(1943년 10월 2일 오전9시 개회)

제1의제에 대한 제안 (83쪽)

경북 (金田龍周 君)

명에 따라 제1의제에 관해 저의 제안을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반도에 재주하는 2천5백만 민중에게 어떻게 철저히 젖어들게 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구체적 방책으로 다음 5가지 항목을 들고 싶습니다.

첫째,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세일계의 천황을 받들어 그 국체가 세계만방에 유례가 없이 숭고하며 존경스러움은 황조조국(皇祖肇.)의 대본이 되는 제정일치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천황은 황대신궁의 대제주이시며, 동시에 국가의 원수이시며, 국가와국민을 비롯한 치정, 즉 정사는 황조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명령과 신덕을 황손이신 천황이 받들어 위로는 천의(神慮)를 살피고, 아래로는 만민을 빠짐없이 구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정치도 신께 제사를 올리는 일부분으로 이것이 일본 국체의 정치이론입니다. 군신일체, 국민일심도 여기서부터 생겨나며, 인간의 일생 유일무이한 생명을 호국의 영(鬼)으로서 기뻐하고 분투하며 사라지게 하고, 우리 대군의 주변에는 바다를 가면 물을 정갈히 할 사체, 산에 가면 풀이 자라나게 할 사체가 될 일본 무사의 혼도 귀여운 자식을 야스쿠니의 신께 바치는 일본의 어머님의 강함도 그 근원은 신과 천황에 귀일하는 국민의 표현입니다. 신국 일본은 국가국민의 근원을 나라의 창조 신과 그 황손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반도의 실정은 유식계급과는 별도로 일반민중은 아직도 일본신도와 국체 본의에 투철하지 못합니다. 종래의 다신적인 인습에 따라 일본신도와 종교적 일반적인 신에 있는 미신적 귀신과의 인식에 판단이 부족하고 참으로 곤란한 사정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선동조동근(內鮮同祖同根)인 사실(史實)을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고사기에는 스사노오노미코토(素.嗚尊)가 고천원(高天原)으로부터 신라국에 내려오신 것을 시작으로 무수한 내선관계 사실이 있습니다. 내지에서 반도로는 임나 일본부, 백제의 원군 등 큰 역사가 있고, 반도로부터는 나라조(朝), 헤이안조 시대에 많은 학자와 기술자, 정치가 등이 건너가서 조정에 중용된 점 등 거의 한 나라나 매한가지로 왕래가 빈번하였고, 지금으로부터 천수백년 전 칙명을 받들어 만들어진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는 근기(近畿)지방의 사족 계급 성씨의 근원을 조사해보니 약 3분의 1이 반도 방면으로부터 건너와 황화(皇化)되었던 것입니다. 또 반도의 신라 제4세의 석탈해왕은 왜의 동북 1백리 다파나국(多波那國)에서 건너왔다고 삼국사기에 실려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는 왜는 지금의 구주지방으로 다파나국은 일본해연안지역 단마(但馬)입니다. 또 신라의 건국 제1세 혁거세왕으로부터 제4세왕까지 통리대신을 지낸 박공은 왜로부터 박소쿠리를 허리에 달고 신라에 건너왔다고 삼국사기에 쓰여 있습니다.

이처럼 신대로부터 우리 선조는 이주 왕래하고 핏줄이 많은 것이니 정말 조상도 뿌리도 같습니다.

셋째는 충용의열에 대한 선조의 전통을 재인식시켜, 사기의 고양에 힘쓰는 것입니다. 반도가 학문만 하며 약해지고 무기력하게 흐르게 된 것은 근대이며, 그 옛날 반도의 무사도는 정말로 일본무사도와 공통되게 치열한 것입니다. 특히 신라의 화랑제도는 일본의 무사도와 정말 같은 것으로 군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친구에게 신의를 지키고, 싸울 때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이 그 강령입니다. 삼국사기에는 화랑제를 평하여 현좌(賢佐)와 충신이 이로부터 솟아나고, 양장(良將)과 용졸(勇卒)이 이로 말미암아 나왔다고 합니다. 이곳의 사기가 얼마나 충용의열한 것인지는 역사의 수많은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신라와 백제가 마지막 운명을 결정한 황산곡 대회전에서 백제의 장군 계백이 뛰어난 계획으로 용전하여 유석과 같은 신라군도 대장군 김유신도 어찌해도 타파할 방법이 없어 기력이 전부 다하여 점점 와해 위기에 빠졌다. 이 때 장군 김순흠은 아들 반굴에게 말하길 “신하 노릇을 하자면 충(忠)만한 것이 없고, 자식 노릇을 하자면 효(孝)만한 것이 없다. 위기에 처해 목숨을 바치면 충효를 함께 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반굴은 아버지 명을 받들어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했다. 장군 김품일이 아들 관창을 불러 말 앞에 세워 장졸을 가리키며 이르길, “내 아들은 나이가 겨우 열여섯이나 사기가 자못 용감하도다. 오늘 싸움에서 능히 삼군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하자 관창은 한 필의 말을 타고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의 장군 계백에게 결전을 도전하니 백제 장군 계백이 그 용맹함을 아껴 해하지 않고 살려서 돌려보냈다. 관창이 아버지에게 고하길 “제가 적진에 가서 적장의 목을 베고 깃발을 내리기 못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습니다.”고 하고, 손으로 샘물을 떠 마신 다음 다시 적진에 들어가 죽기로 싸웠다. 계백이 잡아 목을 베어 안장에 매달아 보냈다. 품일은 아들의 머리를 잡고 피로 소매를 씻으며 말하길, “내 아이의 얼굴이 살아있는 것 같다. 나라 일(王事)에 죽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하여 삼군이 이를 보고 감격하고 분개하여 결사 진격하여 백제를 무찔렀다고 삼국사기에 쓰여 있습니다.

이조 초기 단종은 숙부 세조 때문에 폐위되어 왕위를 찬탈당했다. 당시 유명한 대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에게 알려져 처형을 받을 때, 세조는 국민의 앞에서 비록 한 마디라도 대신으로부터 군(君)이란 말을 듣고 싶어서 있는 한의 극형을 부과하여 괴롭혔는데, 그중에서도 성삼문은 인두로 전신을 달궈지면서 그래도 신하라는 말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충신은 두 명의 주군을 섬기지 않고 정통이 아닌 당신의 신하라고는 할 수 없다. 인두가 차가우니 더 달궈서 와라.”고 화를 내며 울부짖었다. 또 그러다 산채로 온몸의 껍질이 벗겨지는 극형을 더해도 정통이 아닌 당신은 주군이 아니라고 절규했다. 이처럼 충렬이 하늘을 찌르는 그들 사육신의 사건 등을 보면 우리 선조가 얼마나 충렬했는지 편린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선조의 전통이 자손의 사기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저 충신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일본 가마쿠라시대 말기 무장. 고다이고 천황을 도와 가마쿠라막부를 멸망시키는 데 공을 세운 인물, 천황에 대한 충성심의 상징적 존재이다)공의 칠생멸적(七生滅敵·구스노키의 동생이 한 말로 주군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며, 7번 생을 살아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주군의 적을 무찌르겠다는 뜻)의 충혼이 6백여년간 뭉쳐, 메이지유신에 지사의 피를 끓게 하고, 대군을 위해 존엄하신 피를 흘린 수천만의 결과가 메이지 유신의 대업을 성취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의용 충렬한 선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자손인 자가 분투하여 굳건한 각오를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징병원호사업 확립에 대한 것입니다. 병역은 우리 국민이 가장 큰 영광인 동시에 가장 큰 의무이기도 하니 다른 원호를 받지 않더라도 자력으로 이를 완수하려 임해야 하는 건 물론입니다만, 반도의 현 상황은 지도적 입장에 있는 우리가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실천방법으로 순 민중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열성을 잘 원조하여 지켜 내고, 이를 파악하여 순 민(民)단체인 원호단체를 각 면에 설치하여 관과 협력하여 직접 지도하고 원호해야 합니다.

다섯째는 구석구석 꼼꼼히 해야 합니다. 당국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반도의 민지(民知)계발에 크나큰 공헌을 하고 있어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현재 부수와 신문의 정도(程度)로는 아직 전민가(民家)를 철저히 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매일신보는 매주 1회 정도 백만 부 언문 주보(週報)를 발행하여 영미화란의 과거 수백 년 동아침략의 실정 및 과거 현재에 통틀어 약소하고 전쟁에 패한 국가민족의 말로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프고 애달기 짝이 없는 것인지를 명시하여 정부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일억 국민은 굳게 단결하여 죽어서라도 승리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박수)


출처  [전문] 김무성 선친 김용주의 ‘친일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