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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쌀 수출과 쌀 수탈, 그리고 국정교과서

쌀 수출과 쌀 수탈, 그리고 국정교과서
[민중의소리]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 최종업데이트 2015-10-23 11:04:06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한 다음 날 박근혜는 미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국론이 분열되기 때문에 단일한 입장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렇게 분열되면 또 외국의 침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도 청와대도 한마디 하지 않다가 국민들의 여론이 비등해지니까 도망치듯 이 말 한 마디를 보태고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 가서는 무얼 했는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겠다고, 아니 TPP에 가입하게 해 달라고 조르고 왔다. 당연히 오바마는 시큰둥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노동자들이 TPP를 결사 반대한다고 하지 않는가. TPP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이 차기 선거에서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TPP는 선언수준에서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TPP에 가입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사실 TPP는 환태평양 12개국의 자유무역벨트다.

우리나라는 이미 12개국 중에 10개국과 FTA협정을 체결했다. 그만한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TPP 가입에 부정적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초기 TPP 협상에 미국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초 TPP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의 입장이 적극적으로 선회했다. 그것이 박근혜가 미국에 가서 앙탈하듯 TPP 가입을 애원하고 돌아온 이유다.

TPP에 가입을 추진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를 먼저 해결하고 해야 한다. 첫째는 초기에 미국의 눈치만 살피며 TPP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해명과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한다. 두 번째는 TPP가입에 따른 농업피해에 대한 정확한 대책이다. 이미 정부는 미국산 식용쌀 3만 톤을 들여오기로 했다. 농민들이 보기엔 이것이 TPP 가입을 위해 미국에게 아양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결국 가을 수확기 쌀값을 15만원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 박근혜는 힘없는 농식품부장관 뒤에 숨지 말고 농민들에게 확실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있는 “농업에 대해선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란 대농민 공약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박근혜는 TPP 협상에 참여하는 순간 쌀을 통째로 외국에 넘겨주는 두 번째 역사적 기록을 남길 것이다.

박근혜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10월 16일 오전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오찬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인 이스트룸으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의 무력 앞에서 굴복했던 조선의 관리들

1859년 일본은 요코하마와 나가사키를 개항했다. 그리고 프랑스식의 근대잠사공장을 설립했다. 초기에는 일본인들이 일하지 않아 관료의 여식들이 공장에 취업할 정도였으나 얼마 안돼 오사카 등지로 확대되어 일본의 주력상품이 될 정도로 확장됐다. 일본은 잠사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유지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먹어야 하는 주식인 쌀만은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야 했다. 1876년 운요호를 강화도로 파견 일을 꾸몄다. 황해를 침략한 이양선에 조선이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그들은 수심측량작업을 하는 배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무력을 앞세워 협상을 요구했다. 그들은 네덜란드나 미국의 페리 제독이 그들에게 했던 것처럼 개항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개항의 목적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고종13년에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이다. 정확한 이름은 조일수호조규(丙子修好條規)이다.

맺은 직후, 1883년 7월 25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새로운 통상장정이 맺어졌다. 이 때 양측의 전권대사는 조선에서는 민영복, 일본은 다케조에 신이치로이다. 당시 조선정부의 입장은 쌀의 무역을 금지한다는 기본입장을 갖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그동안 왜관에서 이루어지던 쌀의 공무역을 공식적 통상품목으로 확인받으려 했다. 쌀은 조선에서도 부족한 품목이었고 쌀의 수출이 일어난다면 가격폭등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협상전권대신인 민영복은 자연재해 등으로 개항장에 거류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항구간의 미곡이동을 전제로 협상을 타결한다. 그러나 민영복은 당시 일본 측이 개항장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삭제하면 쌀의 수출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것을 빌미로 일본은 쌀을 자국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물론 일본 측의 자의적 해석이 강하지만 협상대표가 일본의 무력시위에 겁을 먹고 나중에 문제가 될 장정에 도장을 찍었다는 것은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의 모습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후 일본은 조선에서 나는 쌀을 수입이라는 명분으로 강탈해 갔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당시 모습. ⓒ자료사진



‘수탈’을 ‘수출’이라고 우기는 그들

역사는 기록한다.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조선이 수탈당했노라고. 그런데 그것을 수출이라고 기록한 역사책도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이다. 조선에도 쌀이 부족한데 수출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맥락도 없이 쌀을 수출했다고 기록하면 역사는 왜곡되는 것이다. TPP 또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버려서는 절대 안 되는 쌀을, 우리농사를 버리고 미국에 기대는 사대적 외교라고. 그런데 식민사관, 사대적 역사관으로 보면 입장이 달라진다. 구국의 결단이 되기도 하고 경제를 살린 쾌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올바른 역사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뇌를 잠식했던 식민사관의 역사가들이 아직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에 의해, 미국에 의해 기찻길을 놓은 것이 조선의 물산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수탈이었다. 그런 역사를 굳이 덮어놓으려 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의 선대가 외세에 붙어 부를 축척하고 기득권을 이어오는 까닭이다.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학자들은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부역하려는 세력이다. 이런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주려 하고 있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기록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들의 삶이 온전히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들과는 말 한마디 없이 역사를 바꾸어 내겠다는 것은 일본의 우익들과 무엇이 다른가. 칼을 강하고 날카롭게 단련시키는 것은 과학이고 수학이다. 그것의 정도를 정하는 것은 법과 사회라 할 수 있다. 역사가 칼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그 칼이 어디로 향하게 하는지 누굴 위해 써야하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출처  [한도숙 칼럼] 쌀 수출과 쌀 수탈, 그리고 국정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