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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의 ①] 한일관계, ‘위안부 해결’이 먼저라면서요?

[한중일 정상회의 ①] 한일관계, ‘위안부 해결’이 먼저라면서요?
[민중의소리] 최명규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1-01 17:19:53


3년 6개월 만의 한일정상회담

11월 1일 한·중·일 정상회의에 이어 박근혜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11월 2일 열립니다. 가장 최근의 한·일 정상회담이 2012년 5월 당시 이명박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회담이었으니 3년 6개월 만에 개최되는 셈입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양국의 첫 정상회담이기도 합니다.

박근혜가 2014년 4월 13일(현지시각) 미얀마 네피도 국제회의센터(MICC)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에 참석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일정상회담, 그동안 왜 안 열렸나?

일본이 과거 한반도 식민지배와 전쟁에 대해 ‘진정한 사죄’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13년 2월 박근혜 취임 축사 사절로 방한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박근혜 앞에서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대해 ‘미국 알링턴 묘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4월 21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습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즉각 일본 방문을 취소하며 반발했습니다.

특히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입니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에 대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정부가 다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박근혜는 올해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정상회담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김철수 기자



핵심쟁점은 ‘위안부’ 강제성과 법적책임

하지만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성’과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 측의 기본 전제입니다.

특히 아베 정권은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8월 고노 료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의 담화(고노 담화)에 대한 검증(수정)에 나섰습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미국 방문 때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가해 주체를 생략한 채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다”고 말해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일본 측은 소녀상 철거도 꾸준히 요구해 왔습니다. “위안부가 필요했다”(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 오사카 시장)는 등의 망언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 일본의 ‘우경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등 소속 학생들이 광복 70주년을 맞은 8월 15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친일 청산과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입장 바꾼 박근혜 정부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는 지난 6월 20일 보도된 일본 마이니치(每日)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위안부 해결이 전제’라던 정부 기조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기조는 올해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아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는 ‘투트랙 전략’(역사·영토 문제-경제·안보·사회·문화 문제 분리)으로 대표됩니다.

한·일 정상이 6월 22일 양국에서 각각 열린 수교 50주년 행사에 교차 참석을 한 것은 한·일 정상회담으로 가는 수순으로 읽혔습니다.

박근혜는 올해 8.15 경축사에서도 ‘진정한 사죄’가 빠진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면서 분위기를 이어왔습니다.

박근혜 8.15 경축사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산증인들의 증언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합니다.”


정부 입장은 왜 바뀌었나?

‘한·일 관계 정상화’를 압박해 온 미국의 입장은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박근혜와 아베 총리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미·일 삼각공조’ 복원은 미국의 대중국 동북아 전략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한국 방문 당시 박근혜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도 ‘과거’보다는 ‘미래’를 강조하면서 공개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을 주문했습니다. 올해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유사한 발언을 했습니다.

미국의 요구에 화답하듯, 박근혜는 당초 방미를 예정했던 지난 6월 미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최대 쟁점인 위안부 문제 협상과 관련해 “상당한 진전(considerable progress)”, “마지막 단계(final stage)”를 언급합니다. 올해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모종의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조급증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와 함께 미국 조야에는 한국에 대해 ‘중국경사론’이 팽배하다고 합니다. 한·일 정상회담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박근혜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4년 3월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뉴시스



이번 정상회담서 성과 있을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오찬도, 공동기자회견도 없다고 합니다. 또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내에서 ‘아베 총리가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롭게 사죄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발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는 최근 마이니치(每日), 아사히(朝日) 신문 등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조속히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년 내 타결”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 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이제까지 밝혀온 대로”라며 “전제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고 맞받아쳤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9차례에 걸쳐 국장급 협의를 진행했지만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 법적 책임 인정, 피해자 배상 방식 등이 여전히 쟁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10월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일본 아베총리 방한 및 한일정상회담 반대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한일정상회담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출처  [이슈탐구-한중일 정상회의①] 한일관계, ‘위안부 해결’이 먼저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