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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켓이 보이시나요? 최몽룡 선생님께 제자가

이 피켓이 보이시나요? 최몽룡 선생님께 제자가
[현장에서]
[한겨레] 김영희 기자 | 등록 : 2015-11-04 16:34 | 수정 : 2015-11-04 20:06


▲ 최몽룡 교수의 제자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생이 4일 국사편찬위원회 집필진 구성과 개발일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띵동. 3일 늦은 밤, 귀가길에 페이스북 알림 표시가 떴다. ‘최몽룡 교수 국정교과서 대표필진 참여 저지를 위한 동문 긴급모임’에서 보내온 초대 알림이었다.

1988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해 92년 졸업한 이후, 어제·오늘처럼 나의 출신과를 의식해본 적이 없다. 일찌감치 신문사에 입사해 전공과는 다른 길을 걸었기에, 친했던 사람 몇몇이나 페북으로 연결된 동문들의 근황을 대충 전해듣는 정도였다. 에스엔에스로 연결된 졸업생들이 알음알음 만든 모임이었다.

4일 오전 10시반, 국사편찬위원회의 집필진 구성과 개발일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정문. 페북 긴급모임에서 뭐라도 해봐야하지 않겠냐며 안타까워하던 두 명의 동문이 정문 양쪽에 엇갈린 채 각각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대표 저자라니요? 최몽룡 교수님! 역사학자로서의 마지막 양심마저 버리지 마세요!’라는 피켓을 든 사람은 82학번 졸업생이었다. 고향에서 정착하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 양어장에서 일하면서 가끔 가족이 있는 안양에 올라온다는 그는 “선생 개인이 아니라 고고학도로서 쪽팔려 나왔다”고 말했다. 85학번 졸업생은 ‘국정교과서 반대! 최몽룡 교수님! 제자로서 당신이 정말 부끄럽습니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어제 저녁에 실시간검색어에 최몽룡이 떠서 뭔가 눌러봤다가 너무 놀랬다. 솔직히 얼마 전 서울대 교수들이 국정교과서 반대 서명을 할 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과 교수들까지 이름을 올려 놀랍고 고마웠다. 그런데 그 뒤 역사학대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난입했다고 하고 세상이 이게 뭔가 싶었는데, 우리 은사 이름이 나온다는데 뭐라도 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몇십년 만에 취재현장에서 만나게 된 선배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땐 한번도 맘 편하게 살지를 못했다. 공부를 해도 학생운동을 해도 눈치가 보였다. 난 눈치만 보다 별볼일 없는 인생의 아줌마가 됐지만, 그래도 그런 시기가 있어 이제는 달라졌구나 하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로 시대가 돌아간다는 게 악몽 같다. 특히 억울한 건 젊은이들이 그걸 모른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83학번 졸업생은 ‘1인시위를 할 용기는 없지만 격려하고 싶다’며 따뜻한 커피를 싸들고 왔다.

▲ 최몽룡 교수의 제자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생이 4일 국사편찬위원회 집필진 구성과 개발일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고고미술사학과는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며 고고학과와 인류학과로 분리가 되었고, 80년대 들어 고고미술사학과로 이름을 바꾼 비교적 신생 학과였다. 88년 입학 당시 우리 과엔 교수가 4명이 전부였는데 최몽룡 선생은 연조로 그중 3번째였다. 최 선생이 학생들에게 살가운 스타일의 교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학파 출신이어서인지 뭔가 격식을 더 따지는 것 같았다. 사실 교수와 가깝지 않다고 아쉬울 것도 없었다. 87년 6월항쟁 뒤 들어온 우리 세대들은 선후배 동기들과 토론하고 학습하고 술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고 즐거웠다. 취재현장에서 난 수십년 뒤 박근혜 정부와 최몽룡 선생 덕에 과 선배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국편은 이날 최 선생님이 제자들의 ‘보호’로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택으로 찾아간 다른 <한겨레> 기자에게 선생은 “자정부터 전국에 있는 제자, 사학과 교수들 40여명이 나가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아침엔 학계 제자들이 또 와서 만류해서 오늘 회견은 안가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날 저녁 소문이 퍼져나가며 선생의 직계 제자들의 만류가 빗발쳤던 모양이다. 오후에 동문들에게 들은 바로는, 은퇴한 지 4~5년이 넘어 제자들은 물론 학계와도 왕래가 뜸해졌던 선생님이 하룻밤 사이 쏟아지는 연락에 ‘날 이렇게 걱정들 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김정배 국편 위원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했다고도 들었다.

▲ 김영희 사회에디터
청동기 고고학이 전공인 선생님으로선, 상고사·고대사를 좀더 제대로 써보고싶다는 희망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켓을 들고 있던 한 졸업생이 했던 말은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다해도 끝내 쓰실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선생님이 신나는 마음으로 쓰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제자들이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있다는 걸 알고 부담을 갖고 썼으면 좋겠다.”


출처  이 피켓이 보이시나요? 최몽룡 선생님께 제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