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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농민이 민주노총의 선거연합정당 제안을 환영하는 이유

농민이 민주노총의 선거연합정당 제안을 환영하는 이유
[민중의소리] 이효신(전국농민회총연맹 정치위원장) | 최종업데이트 2015-12-30 20:07:04


농민운동에 약점이 하나 있다. 농민투쟁을 열심히 했어도 선거 때만 되면 경상도는 새누리당, 전라도는 민주당 찍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촌은 여당 텃밭이고 투쟁해 봤자 헛것이라는 핀잔을 받는다. 인터넷에 올라온 농민투쟁 소식에 달린 첫 번째 댓글은 ‘그래봤자 뭐하냐, 결국은 새누리 찍을 거면서’라는 냉소적인 내용이 차지한다.

과연 그런가? 결코 아니다.

그런 말은 유신시대나 군부독재 시대에는 맞는 말이었지만 2000년 들어와서는 확 바뀌게 된다. 진보정당의 바람은 노동자 밀집지역 못지않게 농촌지역을 강타했다. 이름 없이 싸워온 수많은 농민운동가들이 정치인이 되어 농민들로부터 환호를 받았고 사천, 순창, 보성, 청주, 안성, 제주 등 곳곳에서 선거혁명이 일어났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을 거쳐 오면서 당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해서 경상도 전라도에서는 2당의 자리를 확고히 잡았다. 이것이 바로 농심이었다. 농민의 정당에 가장 뜨겁게 반응하는 게 결국 농민이었고, 그 사랑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됐다.

▲ 정부의 쌀 시장 전면 개방 공식 발표한 지난해 7월 1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이 쌀 시장 전면개방 반대 식량주권 포기 규탄하기 위해 정부청사로 향하다가 경찰에 막히자 쌀을 뿌리고 있다. ⓒ김철수 기자


왜 이렇게 진보정당에 열정적이었을까? 이것은 ‘땅’과 같은 것이었다. 농민들은 평생 농사지으며 소원이 있다면 땅 한 뙈기 갖는 것이다. 예전에는 땅 없는 설움을 너무나 많이 겪었기 때문에 자신 이름으로 된 한 평의 땅에서라도 마음대로 농사짓고 싶은 마음이 절절했던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놈저놈 밀어줬더니 결국은 그놈이더라는 말은 농민들의 오랜 정치의식이다. 결국 소작 농사가 서럽듯이 정당도 빌려쓰면 서럽고 억울한 것이었다. 드디어 내 땅이 생기듯, 나의 정당 농민의 정당이 만들어졌는데 이 어찌 흥겹지 않을 것인가? 이런 이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민주노동당을 농민당이라며 기뻐한 것이다.


진보정당이라는 ‘땅문서’를 빼앗긴 농민들

문제는 시련이 닥친 것이다. 내 땅의 ‘땅문서’를 몽땅 빼앗겨 버린 꼴이다. 그럼 땅문서를 빼앗겼다 해서 내 땅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평생 소작쟁의로 살아야 된다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오히려 지난 과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욱 힘을 내서 일해 더 큰 땅을 찾는 게 농민의 근성이다.

이러한 마음이 어디 농민뿐이랴. 자기 땅이 없는 것은 노동자, 빈민, 청년 등 다수의 국민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모아 다시 도전해야 하며 반드시 이루어야 할 운명이다.

힘을 모으면 이뤄진다는 진리는 피나는 실천에서 검증된 것이다. 우리는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통해 우리의 힘을 확인했고,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민중총궐기 초창기 우리는 매우 불안했다. 농촌지역을 감돌고 있는 패배주의와 무력감, 그리고 정치적 냉소주의는 농민운동의 최대의 벽이었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일어서는 농민들의 대열은 3만이 되었고, 서울 시내는 13만명의 민중으로 가득 찼다.

단결은 힘이었고 희망이었다. 이제 그 힘은 총선으로 흘러가고 있다. 총선에서 단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연적이다. 더 이상 ‘빌린 정당’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으며 누구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 건설은 간단치 않으며,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기는 시간도 짧고 서로 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민생이 짓밟히고 백남기 농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서 몸 사리면서 적당히 총선을 넘기는 것 또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 민중총궐기가 열린 11월 14일 저녁 경찰이 차벽을 쳐놓은 광화문 사거리 앞에서 광화문광장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선거연합정당은 울력이다

그래서 나온 의견 중의 하나가 총선용 ‘선거연합정당’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 시행은 놔두더라도 이는 노동자 농민 빈민이 주인이라는 점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가운데 총선에서 단결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 제안이라 생각한다.

농촌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 중에 ‘울력’이란 게 있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서로 힘을 합쳐 공동의 일을 해치운다는 뜻이다. 공동의 마을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합의해서 울력을 붙인다. 참여도가 높을수록 일도 빨리 끝나고 마을 분위기도 좋아진다. 그러다가 내친김에 ‘공동 농사작업’, ‘공동 식사’도 하고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선거연합정당은 울력의 정신이고 그 단계라 본다. 당장 민중 앞에 닥친 일을 해치우기 위한 것이며 그 발전경로는 무한정 열어놓고 실천 속에서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요즘은 ‘당 만들기’가 유행이다. 자고 일어나면 아무개가 창당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분들은 모두가 자신이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 농민이 주인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이름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명망가 정치, 스타 정치가 얼마나 한국 정치를 망쳤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설사 그런 류가 잠시 잠깐 흥행하더라도 기대보다는 실망을 더 크게 남겼던 것이다.

또한 보수야당에 대한 실망은 환멸의 수준으로 비화해 더더욱 민중의 지향을 실현할 정치세력은 필연적이며, 이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비록 완성도가 낮고, 서로의 목적을 채워주는 것이 부족하더라도 하나의 정당으로 총선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지금 민중의 단결을 실현하는 것만큼 절박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민중총궐기의 발걸음이 여기서 멈춰 버린다면 민중의 허탈감만 커져 버릴 것이며, 단결된 모습으로 한발 두발 걷게 된다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모였던 힘이 다시 살아나 수백만의 대열로 넘쳐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열의 한 무더기에 농민들의 어깨춤이 덩실거리며 농촌에서 다시 한번 선거혁명의 물결이 출렁일 것이라 확신한다.


출처  [기고] 농민이 민주노총의 선거연합정당 제안을 환영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