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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기업·노동자에 ‘자해 제재’ 된 개성공단 폐쇄

기업·노동자에 ‘자해 제재’ 된 개성공단 폐쇄
김영욱의 노동경제
[민중의소리] 김영욱 (30일에 끝내는 자본론특강 저자 / 전 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 | 최종업데이트 2016-02-29 13:50:24


개성공단 임금전용 문제가 얼마 전 언론 지면을 뜨겁게 달구었다. 결국, 개성공단 노동자에게 지급된 임금이 핵 개발로 전용됐다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자신의 말을 번복했고 이해찬 의원이 자금 흐름도를 밝히면서 한 나라의 장관이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면서 일단락됐다.

박근혜 정부의 강경 카드를 뒷받침하기 위한 명분이 과녁을 영 빗나가 버린 것이다. 통일부는 계산법이 틀린 공식을 내놓았다.

실상 개성공단 이북 노동자의 임금은 우리 돈 15만 원을 받아 5만 원을 사회보장기금으로 내고 10만 원으로 그 가족이 생필품 등을 사서 기본생활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핵 개발 전용을 위한 막대한 자금축적이 가능할까?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끝장 제재’가 일어난 곳은 이북 경제가 아니라 한국 측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그 연관기업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 정부가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해 개성공단 운영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한지 하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중회의실에서 열린 개성공단기업협회 긴급 이사회에서참석자들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양지웅 기자


이를 두 측면에서 살펴보자. 우선 개성공단 123개 입주 기업의 생산이 중단됐고 연관산업까지 고려하면 제조업 분야에서 손실은 결코 적지 않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따른 입주 기업의 총 피해액이 8,152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여기에는 연관기업의 손실은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보상을 추진 중인 남북경협보험금은 2,630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개성공단 만한 곳 없다는 입주기업 사장들

정부에서는 개성공단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세금감면 및 유예 등의 조치를 연일 발표했다. 그러나 손해를 정부 차원에서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처방인 대출을 약속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대체부지를 찾아 개성공단 기업의 생산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노동비용이 월등히 높은 한국에서 생산하려는 기업이 있을 리 만무하다.

김진향 미래전략대학원 연구교수(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기업지원 부장)는 “2013년 6개월 동안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었을 때 입주기업 사장들이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중국 등의 여건을 살펴봤지만, 개성공단 만한 곳이 없다고 하더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결론은 폐업이나 도산이다. 정부가 입주기업에 관련법상 보상해 줄 없다는 태도와 관련해, 법무법인 세종의 이수현 변호사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입은 손실 보상은 특별법 제정이 현실적인 방안이며,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의 의결이 있으면 경영정상화 자금 지원이 가능하므로 정부와 협상할 때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상’을 받더라고 기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임금으로 유지해 온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해외생산이나 폐업의 길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운영 전면중단을 발표한 가운데 1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로 개성공단에서 나온 화물 차량이 빠져나오고 있다. ⓒ김철수 기자


다른 측면에서 정부나 입주 기업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개성공단 한국 노동자 800여 명과 5,000여 개에 달하는 연관기업 노동자의 문제다. 여기에 종사하는 한국의 노동자 규모는 5만∼1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대부분 OEM(주문자위탁생산) 하청업체들이다. 당장 남측에 원청 업체들이 의류, 봉제만 하더라도 봄, 여름 시즌, 가을, 겨울 시즌 따라서 수십만 장, 수십억 원씩 계약을 맺고 생산을 해주는 상황이다.

만약에 계약은 다 이뤄졌고, 당장 계약 이행을 못 하면 원청 업체들이 하청 업체, OEM 업체, 개성공단 기업들한테 수십 배 과징금 내지는 배상금을 물릴 것이다. 이러면 부도와 도산, 폐업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연관 산업의 일부 또는 다수기업 또한 도산을 면할 수 없다. 한마디로 기업도산의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당연히 연관기업 노동자 5만∼10만 규모의 노동자 중 다수가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기업으로서는 ‘경영상의 긴박한 사정’으로 법적 요건을 갖춰 해고를 합법화하겠지만, 이것이 개별기업의 경영상 문제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보복적 경제제재로 인해, 기업경영이 타격을 받고 이를 고스란히 노동자가 껴안는 식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연관기업 사용자들이 함께 테이블을 만들어 기업을 살리기 위한 모색을 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권리보장 및 해고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뒷전이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이라며 임금피크제를 들고나오지나 않았다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쉬운 해고 도입과 더불어 개성공단 철수는 박근혜 정부가 소리 높이는 일자리 창출 정책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한마디로 개성공단 폐쇄는 이북에 대한 ‘끝장 제재’가 아닌 한국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자해적 보복조치’가 돼 버리고 있다. 개성공단 철수 관련 노동자 해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박근혜 정부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향후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종북 프레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


재가동의 명분마저 잃어버린 개성공단

이제 개성공단 폐쇄라는 단막극이 희극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정부는 개성공단 일방적 폐쇄라는 ‘끝장 제재조치’에 이어 미국의 사드 배치로 대북압박수위를 최고조로 높일 것을 예상한 듯하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UN을 통한 이북 제재와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끝장 제재조치’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바둑 격언 중에 상대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하라는 ‘동수상응(動須相應)’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은 행마는 제 논에 물 대기 식의 수 읽기로 패배하게 된다는 격언이다. 개성공단 철수는 남북관계를 넘어 동북아 6개국의 치열한 각축전과 연계되어 있다. 일수붙퇴다.

나아가 향후 개성공단 재가동의 명분도 잃어버렸다. 2013년 8월, 남북 당국 간 7차례에 걸쳐 회담을 열고 ‘개성공단 정상화 5개 항으로 구성된 합의서’를 채택했다. 그 1항은 “남과 북은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명시된 바, 이를 박근혜 정부가 정면으로 위배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는 외교적으로는 남북 및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국 정부의 개입을 극도로 축소했으며 국내적으로는 개성공단 관련 기업과 이에 연관돼 일하는 5만∼10만의 노동자와 그 가족을 옥죄고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폭력을 가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의 노동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박근혜 정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출처  [김영욱의 노동경제] 기업·노동자에 ‘자해 제재’ 된 개성공단 폐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