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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더 네이션, 한국 민주주의적 자유 박 정권 하에서 침식당해

더 네이션, 한국 민주주의적 자유 박 정권 하에서 침식당해
백남기 농민 사안 유엔에서 논의될 전망
경찰의 폭력과 무책임은 심각한 추세

[뉴스프로] 편집부 | 2016/06/05 21:25


▲ ⓒ <더 네이션>지 누리집 갈무리


지난달 광주민주항쟁 기념식에 초대받아 한국에 온 팀 셔록 기자가 <더 네이션>지에 한국의 민주주의적 자유가 침식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기고했다.

팀 셔록 기자는 특히 지난 11월 대규모 민중시위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씨의 병상을 방문하여 장녀 백 도라지 씨와 인터뷰를 나누며 백남기 씨의 사례가 보여주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의 현주소, 경찰의 폭력,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정부의 현 추세를 조명했다.

기사는 11월 시위 당시의 공식 감시 카메라 영상을 본 백 도라지 씨가 “경찰관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일부러 조준했다고 결론지었음”을 말하며, 하지만 경찰 당국은 현재까지 이에 대해 사과를 하거나 책임을 인정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심지어는 지난 시위에서 폭력을 행사한 경찰국장이 문책을 받기는커녕 승진했다는 인권 운동가의 말도 전했다.

무리한 경찰 폭력의 행사와 더불어 시위를 기획한 노조 지도자를 감금하는 등 한국에서 “공공 표현과 반대를 위한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국제 앰네스티 한국 지부장의 말을 전하며 지난 1월 서울을 방문한 유엔 보고관 역시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점진적으로 후퇴”하고 있으며, “법원마저도 최근에는 인권을 확대하기보다는 제약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고 기사는 말했다.

하지만 기사는 이어서 경찰의 무차별 폭력에 대한 국회 청문회 계획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과 또 백남기 씨의 사안이 유엔에서 논의될 전망 또한 언급했다.

팀 셔록 기자는 박근혜가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후퇴시키고 있으며 “민주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백 씨는 말을 전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더 네이션> 기사의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s Steadily Eroding Democratic Freedoms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s Steadily Eroding Democratic Freedoms
한국 정부, 민주주의적 자유를 지속적으로 침식해


Under President Park Geun-hye, it has fostered a climate of police violence and impunity.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경찰 폭력과 무책임의 풍조가 조장됐다.


By Tim Shorrock
June 2, 2016 12:41 PM

▲ Protest against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on December 5, 2015. (Photo by Lee Jae-Won / AFLO via AP)
2015년 12월 5일 한국 박근혜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


SEOUL—Inside the intensive-care unit (ICU)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Baek Nam-gi, a 69-year-old farmer and lifelong political activist, lies in a deep coma. His skull is still partially open after his surgery last November, when he was rushed here after being knocked violently to the ground by a burst from a high-powered water cannon deployed by the police forces of President Park Geun-hye’s government. They were trying to block a massive demonstration of 130,000 people in downtown Seoul protesting Park’s labor and trade policies.

서울 -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 69세의 농부이자 일평생 정치 활동가인 백남기 씨가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누워 있다. 그의 머리는 지난 11월 그가 박근혜 정부의 경찰이 쏜 고성능 물대포를 세차게 맞고 바닥에 쓰러져 병원으로 급송되고 수술을 받은 후 부분적으로 여전히 열린 채로 있다. 경찰은 박근혜의 노동과 무역 정책에 맞서 서울 도심에서 130,000명이 벌이는 대규모 시위를 막고자 했었다.

I am here with Doraji Monica Baek, his eldest daughter, a slim, quiet woman who works as an editor for a local publisher of novels. She has asked me to accompany her to the ICU to visit her father. Baek had read my article in The Nation last December about the events that brought her father here as part of her family’s quest for justice. I feel a mixture of sorrow and privilege as we stand quietly by his bed, where he lies motionless except for the deep heaves in his chest as a machine forces him to breathe in and out. I touch her arm, and she places her hand on mine. There are no words at moments like this.

나는 한 지방 소설 출판사의 편집인으로 일하는 마르고 조용한 여성인 장녀 백 도라지 모니카 씨와 함께 이곳에 왔다.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러 중환자실에 가며 내 동행을 요청했다. 백 씨는 지난 12월 <더 네이션> 지에 자신의 가족이 정의를 추구하며 걸어온 여정의 목적으로 아버지를 이곳에 있게 한 사건들에 대해 내가 쓴 기사를 읽은 바 있다. 나는 호흡기가 강제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도록 그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누워 있는 백남기 씨의 병상 곁에 조용히 서서 슬픔과 자랑스러움을 함께 느낀다. 따님의 팔에 내 손을 살짝 대자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 손 위에 가져다 댄다. 이런 순간에는 말이 필요 없다.

Mr. Baek, whose prognosis is not good, has become a symbol to many Koreans of the increasingly harsh response of the Park government toward dissent. In particular, people are angry and disgusted with police violence and a climate of impunity in which the government refuses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 actions of police officials. In Baek’s case, Park’s government has never apologized to his family and, according to human-rights activists, promoted officials involved in the November incident, including the police commander who ran the operation that day.

예후가 썩 좋지 않은 백남기 씨는 한국민들에게, 박근혜 정부가 최근 반대의 목소리에 대해 보여온 점점 더 거칠어지는 대응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사람들은 경찰의 폭력, 그리고 경찰 관계자들의 행동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식의 아무 제재도 없는 풍조에 분노하고 혐오한다. 백남기 씨의 경우 박근혜 정부는 그의 가족에게 사과한 적도 없고, 인권 운동가들의 말에 따르면 그날 작전을 지휘했던 경찰국장을 포함해서 지난 11월 사건에 관련된 관계자들을 승진시켰다.

“[The police] pointed at him and shot? I could clearly see that.” – Doraji Monica Baek, about her father, now in a coma
“[경찰]은 그를 겨누고 쐈다 – 나는 그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고 백 도라지 모니카 씨가 현재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했다.


“The one time I went to the prosecutor’s office, nobody from the government said anything to us,” Ms. Baek told me in a waiting room outside the ICU. The only officials who have asked about her father, she said, are the detectives from the downtown Seoul precinct who are investigating the case. At one point, she said, the Seoul police commissioner asked to come see her father in the hospital. “I said, if you have no apology, please don’t come.” He didn’t because “he was never intending to apologize,” she said.

“딱 한 번 검찰에 갔을 때 정부 측 누구도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백 씨는 중환자실 밖의 대기실에서 내게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에 관해 물어보았던 공무원이라고는 그 사건을 조사하던 서울 도심 담당의 형사들이었다. 한 번은, 서울의 경찰국장이 그녀의 아버지를 보러 병원에 와도 되는지 물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과하려는 것이 아니면 오지 말라고 내가 말했다.” “사과하려는 의도는 아예 없었기 때문에” 그는 오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Ms. Baek’s’s family, with the help of human-rights lawyers, filed a civil lawsuit against the police for causing their father’s injuries. She has seen official surveillance footage of the November demonstration and has concluded that the police officers manning the water cannons deliberately targeted her father. “They pointed at him and shot -I could clearly see that,” she told me. The cannons also included large amounts of capsaicin, an active component found in chili peppers, which produces a sensation of burning and is often mixed with tear gas here. “The water was white; it was not transparent,” said Ms. Baek.

백 씨의 가족은 인권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에게 부상을 입힌 것에 대해 경찰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청구했다. 그녀는 11월 시위 당시의 공식 감시 카메라 영상을 보았고, 물대포를 다루던 경찰관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일부러 조준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겨누고 쏘았다 - 나는 그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물대포에는 고춧가루에서 발견되는 유효 성분인 캡사이신도 다량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불에 타는 듯한 자극을 주며 한국에서 종종 최루 가스와 섞인다. “그 물은 흰색이었다. 투명하지 않았다”고 백 씨가 말했다.

Union leader Han Sang-gyun, charged with unlawful assembly and obstructing traffic, has been in prison since December.
노조 위원장인 한상균 씨는 불법 집회와 교통 방해죄로 기소되어 지난 12월 이후로 감옥에 갇혀 있다.


Her family’s lawsuit, which seeks compensation from the government and six police officers, was dismissed in March, and will soon be heard by an appeals court in Seoul. The family recently met with three South Korean opposition-party leaders to seek a hearing in the National Assembly about the government’s actions that led to Mr. Baek’s injury. The politicians, representing the Minjoo Party of Korea, the People’s Party and the Justice Party, agreed to appoint a special prosecutor and pledged to sponsor hearings to investigate excessive use of water cannons by police.

정부와 경찰 관계자 6명에게 보상을 청구한 그녀 가족의 소송은 지난 3월 기각되었고, 서울 항소 법원에서 곧 결과를 듣게 될 것이다. 그 가족은 백남기 씨에게 부상을 입게 한 정부의 행위에 대해 국회 청문회를 추진하기 위해 최근 한국 야당 지도자 세 명을 만났다. 한국의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특검을 지명하기로 동의했으며 경찰의 물대포 과다 사용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를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On Monday, May 30, human-rights activists held a press conference in Seoul at the same spot that Mr. Baek was knocked to the pavement 200 days before. “Baek Nam-gi, the farmer who was struck down by the power of the state, still lingers at the boundary between death and life,” said Lee Ho-jung, the director of Seoul’s Catholic Human Rights Committee, according to theHankyoreh daily. Yet “the perpetrator who struck this murderous blow is nowhere to be found.”

5월 30일 월요일, 인권 운동가들은 200일 전에 백남기 씨가 물에 맞아 길에 쓰러졌던, 서울의 바로 그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가의 힘이 때려눕힌 백남기 농민은 여전히 생사의 경계에 머물러있다”고 서울천주교 인권위원회 이호중 씨가 한겨레 신문에 말했다. 그런데도 “살인적인 타격을 가한 가해자는 여전히 어디에도 없다.”

▲ The family of injured farmer Baek Nam-gi is introduced to the crowd in Gwangju at a giant rally commemorating the 1980 Gwangju uprising, May 17, 2016. (Doraji Baek)
부상입은 백남기 농민의 가족이 2016년 5월 17일, 1980년 광주항쟁을 기념하는 대규모 광주 집회에서 군중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Meanwhile, the chief organizer of last fall’s demonstration, Han Sang-gyun, the president of th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remains in prison. He was arrested last December on charges of violating laws on assemblies and obstructing traffic, and his trial continues this week at the Supreme Court in downtown Seoul. The Korea chapter of Amnesty International has been closely monitoring the situation of the labor leader and his farmer ally, and was one of the organizers of the demonstration this week.

지난가을의 시위를 주로 조직한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은 감옥에 있다. 그는 시위법을 어기고 교통을 방해한 혐의로 지난 12월 체포되었고 그의 재판은 이번 주 서울 도심의 대법원에서 계속된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이 노조 지도자와 그의 농민 협력자의 상황을 감시하고 있으며, 금주 시위의 조직자 중 하나였다.

“The space for public expression and dissent…is shrinking.” – Catherine Heejin Kim, Amnesty International, Korea
“공공 표현과 반대를 위한 공간이… 줄어 들고 있다” – 국제 앰네스티 한국 지부 김 케서린 희진


“Baek’s case is symptomatic of a deeply worrying trend in which the space for public expression and dissent in South Korea is shrinking,” Catherine Heejin Kim, Amnesty’s local director, wrote recently in the Korea Times. “Police routinely employ excessive force to disperse large demonstrations with little accountability to those whose rights are trampled in the process.” Baek’s case will be discussed before the United Nations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s to freedom of peaceful assembly and of association, which meets in Geneva on June 17, an official with Amnesty Korea told me.

“백남기 씨의 경우 한국에서 공공 표현과 반대를 위한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앰네스티 한국 지부장 김 케서린 희진 씨가 최근 코리아 타임스에 썼다. “경찰은 대규모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그 과정에서 권리가 짓밟히는 자들에 대해 거의 책임도 지지 않고 과도한 무력을 사용한다.” 백남기 씨의 사안은 6월 17일 제네바의 평화적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 권리에 관한 유엔 특별 보고관 앞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앰네스티 한국 관계자가 내게 말했다.

This past January, following a visit to Seoul, the UN rapporteur, Maina Kiai, issued a statement critical of the Park government. “I sense a trend of gradual regression on the rights to freedom of peaceful assembly and of association—not a dramatic shutdown of these rights, but a slow, creeping inclination to degrade them, ” he wrote. “Even the courts which should always interpret laws in favor of rights have recently been moving towards restricting rights rather than expanding them. ” The People’s Solidarity for Participatory Democracy, one of the largest human-rights groups in South Korea, provided a detailed report to the UN about political conditions in the country while Kiai was in Seoul.

지난 1월, 서울을 방문한 다음 유엔 보고관 마이나 키아이 씨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점진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한 권리가 극적으로 폐기되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조금씩 후퇴하는 경향이 있다”며 “법조문의 해석 시 항상 인권을 우선시해야 할 법원마저도 최근에는 인권을 확대하기보다는 제약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고 그는 적었다. 한국 내 가장 큰 인권단체 중 하나인 참여연대는 키아이 씨가 서울에 머무는 동안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The story of this injured farmer-activist is, in part, a story of South Korea’s emergence from authoritarian rule. Baek Nam-gi represents thousands of people of his generation who spent decades fighting for democracy, dating back to his days as a student under President Park’s father, the military dictator Park Chung-hee. During the 1970s, Baek was arrested several times for violating various decrees against public protests. On May 17, 1980, following Park’s October 1979 assassination, the South Korean general Chun Doo-hwan declared martial law throughout the country, and Baek was arrested again. He was sentenced to two years in prison and released on parole in March 1981.

부상한 이 농민 운동가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한국이 독재 지배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남기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군사 독재자 박정희 치하에서 학생 시절을 보내며 민주주의를 위해 수십 년을 싸워온 세대를 대표한다. 1970년대에 백남기 씨는 대중 시위에 관한 다양한 법률 위반으로 여러 차례 체포되었다. 1979년 박정희가 피살된 후 1980년 5월 17일 한국 육군 대장 전두환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백남기 씨는 또다시 체포됐다. 그는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1981년 3월 가석방되었다.

Upon his release, Baek returned to his family’s land in the town of Boseong near Gwangju, the southwestern city that was the scene of the May 1980 uprising against Chun’s martial-law forces. He became a farmer, growing rice, beans, and wheat, and later became a leading figure in the Korea Catholic Farmers Movement. It was in that capacity that he participated in last November’s demonstration, which was protesting free-trade policies that have allowed massive imports of foreign grain into South Korea, lowering the price of local goods.

석방 후 백남기 씨는, 전두환의 계엄군에 맞섰던 1980년 5월 항쟁의 장인 한국 서남부의 광주 근처 고향 보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쌀, 콩, 밀을 경작하는 농부가 되었고 후에 한국 가톨릭농민회에서 선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이런 연고로 한국에 해외 곡물의 대량 수입을 허용하여 지역 상품 가격을 낮춘 자유 무역 정책에 반대했던 지난 11월 시위에 참가하게 됐다.

At the hospital, Ms. Baek recounted his life to me. “As a father, he was very warm, and loved his children so much,” she said. “He had great honesty, and good judgment.” After the Gwangju uprising, news of which was suppressed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for years, he obtained videos of the events and showed them to local villagers. “Many people gathered in my house at that time,” she recalled. The Baek family returned to Gwangju earlier this month to mark the 36th anniversary of the 1980 uprising, and were introduced to local citizens at a raucous “Eve of May 18” celebration that I attended as well.

병원에서 백 도라지 씨는 아버지의 생을 내게 설명했다. “아버지로서 그분은 매우 따뜻한 분이었고 자녀들을 매우 사랑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주 정직하고 훌륭한 판단력을 가지고 계셨다.” 정부에 의해 수년 동안 이에 대한 뉴스가 통제됐던 광주항쟁 이후 그는 광주 관련 비디오를 손에 넣어 마을 주민들에게 보여주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우리 집으로 모였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백남기 씨 가족은 광주항쟁 36주년을 맞은 이달 초에 광주로 돌아가서 나도 참석했던 떠들썩한 “5.18의 전야제”에서 지역 주민들과 만났다.

In our interview, Ms. Baek had withering words for President Park, whom she considers responsible for her father’s condition. “I think she’s much worse than her father,” she told me. As the daughter of the late dictator, the future president assumed the role of first lady in 1974 at the age of 22, when her mother was assassinated by North Korean agents with bullets intended for her husband. “It’s been more than 35 years since she got power,” Ms. Baek said. “By now, there should be progress, but she is putting the country back. I don’t think she knows anything about democracy.”

나와의 인터뷰에서 백 씨는 자신의 아버지 상태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박근혜에 대해 혹독하게 말했다. “나는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고인이 된 독재자의 딸인 그녀는 북한 공작원이 아버지를 겨누고 쏜 총탄에 어머니가 맞아 피살됐을 때 1974년 22세의 나이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가 권력을 가진 이후 35년 이상이 흘렀다”며 “이 정도면 상황이 개선되어야 할 텐데 그녀는 국가를 후퇴시키고 있다. 박근혜는 민주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백 씨는 말했다.

Meanwhile, she visits her father almost every day as he lies with severe brain damage in the hospital, a victim of political violence in a country that has seen far too much tragedy over the past half-century.

한편, 그녀는 심각한 뇌 손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 있는 자신의 아버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너무 많은 비극을 보아온 정치 폭력의 피해자인 아버지를 거의 매일 방문한다.


출처  더 네이션, 한국 민주주의적 자유 박 정권 하에서 침식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