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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이 저지른 죄, 그것이 인권

한상균이 저지른 죄, 그것이 인권
[민중의소리]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발행 : 2016-07-06 18:14:51 | 수정 : 2016-07-07 10:25:22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8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민중의소리


누구는 자신의 말을 쉽게 바꾸었고 누구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며 지키려 했다. 임기응변으로 말을 바꾼 이는 그 덕에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말을 행동으로 옮긴 이는 감옥에 갇혔다. 전자는 박근혜이고 후자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박근혜가 쉽게 여긴 것은 말뿐이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이었고 무겁게 여긴 것은 권력이었다. 한상균 위원장이 무겁게 지키려 했던 신념은 무엇이고, 동료들과 시민들에게 했던 약속은 무엇인가.

2014년 5월 18일, 해고자인 그도 ‘518 세월호 청와대 만민공동회’에 함께 했다. 304명의 목숨을 빼앗은 정부에게, 박근혜의 책임을 묻고자 청와대로 가는 시민들의 추모 행동이었다. 광화문 누각에서 막힌 시민들은 왜 우리가 여기에 왔는지를 나누었다. 한상균은 고등학생이던 80년 광주에서 겪은 일을 말하며, 세월호 참사와 광주의 학살과 무엇이 다르냐며, 국가가 저지른 참사를 막기 위해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 민주노총 위원장이 됐다. 조합원의 손으로 직접 뽑은 위원장이었다.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이 돼서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행동에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이어갔다. 2015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는 세월호 참사 1주기 투쟁과 함께했다.


박근혜와 한상균의 차이

2014년 5월 19일 박근혜는 구할 수도 있었던 목숨을 구하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며 안전사회로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담화문을 발표했다.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족들을 모욕했다. 국민의 비판이 일자 위기를 모면하고자 임기응변식 담화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박근혜는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초법적으로 특조위를 강제종료시키려 한다.

그렇게 말을 바꾼 박근혜는 언론에 대고 한상균 위원장을 불법 시위자라며 비난하고 그의 구속을 독촉했다. 그는 위원장이 된 지 1년 만에 경찰에 구속됐다. 사법부(서울중앙지법 제30형사부, 재판장 심담)는 신념과 동료로서의 약속을 지키려고 한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행정부의 수반인 박근혜의 판단과 다르지 않았다. 독립성은 보이지 않았다. 부정의 한 사회에서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 됐다.

▲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중인 서울 종로구 조계사 관음전을 나와 경찰에 자진출두 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철수 기자



한상균이 저지른 죄, 그것이 인권

검찰이 공소한 한상균 위원장에게 제기한 공소사실, 그가 저지른 죄의 목록은 이 시대 인권운동의 목록이다. 검찰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한 위원장이 주도한 12차례의 집회 및 171일간의 점거농성에 대해 공소사실을 제기했다. 2015년 노동절 집회와 총파업 집회, 세월호 범국민추모행동, 민중총궐기 집회 등 민주노총이 중심에 있거나 함께 한 집회가 주요 공소 내용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악화시키는 노동악법을 막으려 했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그러니까 그는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려 했고, 집회시위의 권리를 행사했고, 국제인권규약에 명시된 이웃 시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진실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불처벌이 횡행하는 한국 사회를 바꾸려고 했다.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은 불의한 사회구조에 저항할 권리를 밝히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 시대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존엄하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유죄라고 사법부는 판결한 셈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이 정한 집회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은 오직 평화적인 집회"라고 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자의적인지는 6월 17일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의 한국보고서에서 드러난다. 유엔 평화로운 집회시위 및 결사의 자유보고관은 평화집회를 국내법의 합법성 여부로 제한하면 안 된다며 인권의 “유효성은 입법부나 보안 기관의 재량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상균 위원장의 구속은 문제라고 짚었다. 또한, 집회 참가자들을 일반교통방해 등의 범죄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평화로운 집회를 할 권리를 사실상 범죄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가 위반했다고 하는 일반교통방해 및 집시법 위반 등은 사실상 한국에서 노동자와 시민들이 뺏긴 인권의 목록이며, 그것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인권운동의 모습이다.

▲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유죄 판결 규탄 기자회견에서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이 발언을 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용기에 화답하기 위해

그가 유죄라는 건 인권옹호자로서, 민주노총의 간부로서 열심히 잘 싸웠다는 뜻이다. 과적과 과승을 하고 안전점검을 하지 않아서 승객 304명을 태운 세월호를 침몰시킨 김한식 대표이사 등 청해진해운 임원들에게 징역 7년이라는 가벼운 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법적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형량은 법을 얼마나 위반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권을 침해했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인권은 마음대로 뺏을 수 있다는 자본의 질서, 탐욕의 질서에 어긋나는가, 아닌가에 달린 것이다.

고작 일반교통방해와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이라는 과중한 형량을 내린 건 다른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을 흔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승리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빛이 나든 안 나든, 언제 해결될지도 모르지만, 하루하루 매일매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겨줄 것이라고 권력자들은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올바른 견해와 신념을 보전하기 위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태도이다. 한상균이 80년 광주항쟁 때 보았던 시민들의 신념이, 노동자도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 세월호에서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를 희생자의 가족과 시민들이 모두 알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신념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던 분별이다. 그는 80년 광주에서 자행된 폭력보다, 그러한 폭력을 휘두른 권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만들어지는 끔찍한 세상을 더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더 용기를 내 조선업 등에서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법 개악과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덮으려는 정부와 재벌에 맞서 싸우자. 그것이 그의 용기에 우리가 용기로서 화답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가슴이 아프다. 판결을 듣고 그의 부인이 참던 눈물을 쏟아냈을 때 그가 겪어온, 그가 걸어온 험난한 길이 필름처럼 되돌려졌다. 쌍용차 정리해고에 맞선 77일간의 점거파업으로 3년간 구속됐다. 출소한 지 3개월 만에 사회적 합의를 지키라며, 쌍용차 노동자들을 더는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며 송전탑을 올랐다. 감옥에서도 동료를 잃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밥 한 끼 해가면 좋겠다고 그의 부인과 와락 동지들에게 권유하는 넉넉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강제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현장과 거리를 누비고 싶을 텐데…….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많다.


출처  [명숙 칼럼] 한상균이 저지른 죄, 그것이 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