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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엔 받아도 ‘위안부’ 피해자 법적 배상 여전히 요구 가능”

“10억엔 받아도 ‘위안부’ 피해자 법적 배상 여전히 요구 가능”
김기남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연대위원회 변호사
[민중의소리] 박소영 기자 | 발행 : 2016-09-01 11:13:38 | 수정 : 2016-09-01 11:13:38


▲ 31일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기남 변호사가 12.28 한일 합의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위로금) 받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건 법적 배상금도 아니고 합의를 해준 것도 아니잖아요. 피해사실이 명확하게 특정된 것에 대해서 사과와 배상이 된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법적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남아있어요. 우린 이걸 명확하게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김기남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올해 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으로서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참석해 한일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할머니들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지난 31일 일본 정부가 지난해 한일 외교장관이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에 출연금 10억엔을 전달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이번 지급에 대한 문제점을 들어봤다.

▲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국제회의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내용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일본 정부는 ‘배상금’ 아니라는데..
‘배상금’으로 몰아가려는 한국 정부

“10억엔은 배상금이 절대 아닙니다. 주는 사람(일본 정부)도 그렇게 주지 않았고, 피해자가 직접 받는 것도 아닌데 중간에서 전달해주는 대한민국 정부가 ‘배상금 성격이다’라고 말하는 건 ‘이거 받고 마무리 짓고 조용히 있다가 돌아가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전달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한일 양국 간에는 돈의 성격을 놓고 여전히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10억엔을 ‘국제기관 등 거출금’ 명목으로 정부 예비비에서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친구나 지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조의금 내본 적 있죠? 왜 주나요?” 김 변호사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기자가 “안된 일을 당하셨으니 위로하려고요”라고 답하자, 그는 “일본 정부가 주는 위로금이란 게 바로 그런 거다. 내가 줘야 할 의무는 없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주는 것”이라며 설명했다.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 청구권 문제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10억엔이 배상금이 아님을 누차 강조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언론을 통해 ‘(10억엔을) 사실상 배상금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선전해왔다. 왜 일까.

김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10억엔에 대해 현금지급하기로 한 것은 배상금의 성격을 띠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배상에는 금전적 형태 외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굳이 ‘현금 지급’을 선택함으로써 피해자들로 하여금 마치 ‘법적 배상금’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10억엔 출연 과정에서 해당 금액이 배상금으로 비춰질 것을 경계해 피해자들에게 현금으로 직접 지급되는 것에 반대했다.

▲ 화해치유재단 김태현 이사장이 지난 7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바비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양지웅 기자



“일본이 사과했다고? 합의 이후 태도 보는게 중요해”

최근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은 라디오 방송에서 ‘12·28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분명히 사죄와 반성을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이미 사죄와 반성이라는 표현은 예전에도 있었다”면서 “합의 이후 일본 정부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합의 이후 전화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박근혜에게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통해서 해결된 것이고 이것은 인도적 측면이라고 이미 못을 박았어요. 그 뒤로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일본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성을 전면으로 부정했습니다. 이사장이 그렇게 얘기하는 건 정치적 목적으로서 할머니들을 호도하는 것이죠.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김 변호사는 김 이사장이 피해자 할머니들을 일일이 만나 합의에 대한 동의를 묻고 진행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동의를 했다’고 말하는 분들은 이미 연로하셔서 의사능력이 없으신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가족들이 함께 배석한 상태에서 물어보죠. 그런데 할머니들께서 이번 합의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 거 다 빼더라도 할머니들은 일제 시대 때 성장했던 분들이세요. 할머니들이 사용하시는 어휘를 보면 ‘백성’이라든지, ‘일국의 왕’이라든지 이런 말을 쓰세요. 아직 관(官)에 대한 믿음이나 어려움들이 있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동의를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정부 측의 유리한 자료로 가공되고, 정부는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찬성한다고 언론에 말하는 거죠”

김 변호사는 과거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고통당한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독일 정부가 2000년에 설립한 기억책임미래재단을 언급했다. 독일은 전후 보상을 마치고 난 뒤에도 기업들과 정부가 절반씩 출자해 모은 50억 유로(한화 약 8조 원)를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고 현재까지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지원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사례가 우리에게도 적용되려면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법적 배상이 마무리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정부는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다 하고서도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책임에 대해서도 지고 있어요. 그런데 일본은 거출금 형식으로 지급하면서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불가역적으로 더 이상 말을 안 꺼내는 것을 조건으로 했어요. 화해와 인도적 지원 측면이 아니라, 말하자면 ‘먹고 떨어지라’는 폭력적인 방식인 겁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화해치유재단은 1일 오전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약 108억 원)을 송금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재단은 앞서 생존 피해자 46명에게는 각 1억 원씩, 사망 피해자 199명에게는 각 2,000만 원을 현금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한, 나머지 금액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 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피해 할머니들과 나눔의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의기억재단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본정부 스스로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며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일본 정부는 마땅히 져야할 책임을 다하라”며 촉구했다.


출처  [인터뷰] “10억엔 받아도 ‘위안부’ 피해자 법적 배상 여전히 요구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