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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박근혜가 국익 수호를 위해 삼성 합병에 찬성했다?

박근혜가 국익 수호를 위해 삼성 합병에 찬성했다?
그 헛소리에 대한 반론을 들려주마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6-12-28 19:13:11 | 수정 : 2016-12-28 19:13:11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을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삼성-최순실 게이트 관련 국민연금 손해배상소송 1만2000명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 손해 끼친 이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드디어 예상했던 헛소리가 등장했다. 박근혜-최순실 콤비가 삼성으로부터 200억 원이 넘는 돈을 받고,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는 것이 우리가 짐작하는 실체적 진실이다. 특검이 이 진실에 바짝 다가서자 보수 언론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 삼성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보수 언론이 방패막이로 나선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에게 지금 박근혜와 최순실은 전혀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목표는 보수 진영의 약한 고리인 박근혜-최순실을 최대한 빨리 교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보호하려는 본체가 삼성과 이재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7일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되어 승강기에 탑승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27일 밤 긴급체포됐다. ⓒ양지웅 기자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특검, 황급히 반발하는 보수 언론

28일 특검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긴박 그 자체였다. 전날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입장을 바꾼 것이 수사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의원과 대구고 동기동창으로, 삼성물산 합병 당시 국민연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진 홍완선은 그동안 일관되게 “합병에 대해 누구로부터도 압력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던 그가 27일 특검에서 “복지부로부터 합병 찬성 요구를 받았다”고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불과 몇 시간 뒤인 28일 새벽 1시 45분 경, 특검은 전격적으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인 문형표를 긴급체포했다. 복지부 장관으로서 합병 과정에서 산하 기관인 국민연금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 등)가 적용됐다. 문형표는 28일 오전 10시경 카키색 수의를 입은 채 특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문형표가 이 사건의 본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통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생활한 이런 고위공직자들은 감옥 생활을 하루 이틀만 해봐도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문형표가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누가 배후였는지를 다 털어놓을 가능성도 있다. 그토록 오래 버티던 홍완선도 결국 특검 조사에서 배후가 복지부라고 불고 말았다.

이렇게 특검이 실체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자 보수 언론이 화들짝 놀란 모양이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뒷배를 봐주던 삼성과 이재용이 다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낀 것 같다. 28일 <문화일보>가 ‘청와대,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찬성…國益차원 정책적 판단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물 타기에 나섰다.

<문화일보>의 논리는 이렇다. 설혹 청와대가 국민연금을 움직여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찬성하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해도 그건 청와대의 잘못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문화일보> 기사를 살펴보자.

《당시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국가 컨트롤타워 격인 청와대가 ‘정책(정무)적인 판단’에 따라 감독 부처에 관심을 주문했을 경우, 뇌물죄 적용 여부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

청와대가 국익을 위해 정무적 판단으로 합병에 찬성한 것이니 뇌물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논리도 펼친다.

《28일 학계 등에 따르면 실제로 해외투기자본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했을 당시만 해도 “개별 민간 기업의 현안을 넘어서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절대다수였다. 대다수 언론도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주문하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당시 국민 여론도 합병 찬성 쪽이 대다수였는데, 청와대가 합병에 찬성한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논리다.


여론이 합병 찬성이었다고 누가 그러는데?

국민 여론의 대다수가 합병 찬성 쪽이었다는 논리는 심각한 사실 왜곡이다. 무엇보다도 그 논리의 근거로 “대다수 언론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주문하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온다.

당시 대다수 언론이 합병 찬성의 논조를 유지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왜 그랬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은 대다수 언론이 삼성의 돈질(광고비)에 종속됐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물산은 합병 주주총회를 앞두고 무려 100여 개 신문 1면에 일제히 광고를 실었다. 한국의 대표 포털인 네이버와 다음에도 비슷한 내용의 배너 광고가 실렸다. 8개 증권방송과 4개 종편채널, 2개 보도전문채널에서도 쉴 새 없이 비슷한 광고가 쏟아졌다. 문화일보도 그 광고를 받은 매체 중 하나다.

보수매체들이 보도를 안 해서 그렇지 당시 노동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삼성으로부터 광고를 받지 않는 언론 매체들은 대부분 합병에 반대했다. 경제민주화실현 전국네트워크와 반올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국민연금공단 본사 앞에서 “부결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시위도 지속적으로 벌였다.

“여론 대다수가 합병에 찬성했다”는 주장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경제개혁연구소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을 조사해 발표한 일이 있었다. 여론조사는 가구전화 및 휴대전화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주순은 ±3.1%포인트였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우선 “합병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국민의 63.2%가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삼성그룹이 그토록 고대했던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는 응답은 26.5%에 불과했다.

그 다음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어떻게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익을 위한 것이므로 합병에 반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44.3%로 나왔다. “국익을 위해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응답(42.5%)보다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1.8%포인트 더 높았다.

이는 심지어 <문화일보>의 주장대로 대부분 언론이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보도를 쏟아내는 와중에 나온 결과다. 그러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다수였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멍멍이 소리라는 이야기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질의응답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가 국익을 위해 합병 찬성을 지시했다고?

더 황당한 주장은 청와대가 국익을 위해 정무적인 판단을 동원해 합병 찬성을 지시했기 때문에 뇌물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선 이 말은 기본적 논리조차 맞지 않는다. 만약 청와대가 국익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 떳떳한 일을 지금까지 감출 이유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이후는 물론이고, 합병 찬성 지시를 내릴 당시부터 떳떳하게 밝혀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청와대와 문형표는 물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이었던 홍완선조차 26일까지 이 떳떳한 애국적 결정을 숨겨왔다.

이런 정황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100보를 양보해서 박근혜가 삼성으로부터 200억 원이 넘는 돈을 챙긴 대가가 아니라, 순수하게 국익을 위해 합병 찬성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해도 한국 정부는 결단코 그 합병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보수 세력이 그토록 밀어붙였던 한미FTA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Investor-State Dispute) 제도가 엄연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ISD는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한 한미FTA의 대표적 독소 조항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정부의 부당한 시장 개입으로 투자자나 기업이 손실을 봤을 때, 투자자나 기업은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소송을 낼 수 있다. 세계은행이라는 곳은 미국 월가의 지분이 가장 큰 곳이다. 총재도 수십 년 동안 미국인이 맡아왔다. 월가 투기자본이 소송을 내면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제도가 바로 ISD다.

박근혜 정부는 한미FTA를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방침을 수차례 밝혔다. 심지어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도 2013년 3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한미 FTA의 ISD가 사법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바 있다.

그런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그것도 월가 자본이 일으킨 경영권 분쟁에서 결정적 투표권을 행사했다? 월가 입장에서 보면 이건 너무나 명백한 ‘정부의 부당한 시장 개입’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그것이 ISD 소송 대상임을 몰랐다는 것은 더 말이 되지 않는다. ISD 소송에 걸려 패소하면 한국 정부는 막대한 손해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이건 국익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몰락을 자초하는 자살 행위에 가깝다.

정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가했다면, 어떤 정황을 살펴봐도 박근혜는 국익을 위해 그런 판단을 한 것이 아니다. 뇌물을 받고 삼성과 이재용을 밀어준 것이다. 뇌물이니 당연히 몰래 했을 것이고,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자 이제 와서 “국익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는 것이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헛소리다.

보수언론은 앞으로도 삼성과 이재용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논리를 개발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논리도 바로 반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특검이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제 멋대로 주물러 온 삼성의 뇌물 혐의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그날을 고대한다.


출처  박근혜가 국익 수호를 위해 삼성 합병에 찬성했다는 헛소리에 대한 반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