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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의 5단계 심리로 살펴본 친박 집회 참가자들

암 환자의 5단계 심리로 살펴본 친박 집회 참가자들
친박 집회, 결국에는 소멸한다
[오마이뉴스] 정현우 | 17.03.16 14:06 | 최종 업데이트 : 17.03.16 14:06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미국의 정신의학자 퀴블러로스에 의하면, 암 환자는 이같은 5단계 심리를 보인다고 한다. 박근혜를 옹호하고 있는 친박 집회 참가자들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암 환자의 심리와 닮아 있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안국역, 시청역, 삼성동 등에서 열린 친박 집회를 쫓아가본 후 내린 결론이다.


예고된 불복 프레임 '부정'

지난 10일 안국역에 모인 친박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격앙돼 있었다. 파면 선고가 내려진 지 채 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현장에서는 수시로 욕설과 고성이 터져 나왔고, 지나가는 행인이나 기자들을 향해 시비를 거는 모습도 계속 관찰됐다.

▲ 철제 사다리로 사진기자의 머리를 내리치는 '탄핵반대' 시위자 ⓒ SNS 캡쳐


이들은 탄핵심판 자체를 '부정(denial)'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남성 강아무개씨(88)는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모함해 시작된 일"이라며 "다 무효로 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집회 사회자도 "배신자 김무성의 ○○○를 따버리자", "헌법재판소로 쳐들어 가자" 등의 구호를 외쳐댔다. 그러면서 국회 탄핵소추 과정, 8인 재판관 체제 하의 선고 등을 문제 삼았다.

이 같은 '부정'은 예고된 측면이 크다. 탄핵 선고 전부터 박근혜 변호인단 측은 '불복' 가능성을 시사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변호인단 중 김평우 변호사와 조원룡 변호사는 인용 결정이 내려질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발언을 해왔다.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 모든 집회 참가자들은 이 같은 발언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억울하게 당했다"는 '분노'

11일 시청역 집회에서는 '분노(anger)'의 단계로 이어졌다. 헌재의 선고가 있은 지 만 24시간이 지나면서 심리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날 만난 참가자들은 전날과 달리 "헌재의 결정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기 보다는 주로 "억울하게 당했다"는 주장을 폈다.

암 환자의 심리로 따지면, 이는 '분노'에 해당한다. 암 환자들은 처음에는 암 진단을 부정하다가 그 진단이 사실임을 인지한 다음에는 분노한다고 한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억울하게 암에 걸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기자들과 인터뷰 중인 박근령 씨 ⓒ 정현우


이 같은 심리는 박근혜의 동생 박근령씨에게서 가장 잘 드러났다. 전날 집회 중 사고로 숨진 이들을 분향한 박씨는 기자들과 만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론했다. 두 대통령은 재임 중 더 큰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탄핵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박근혜는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해 왔는데, 야당에 의해 정략적으로 탄핵됐다는 주장이었다.


입당 권유하고 설득… 현실과 '타협' 시도

12일 저녁 박근혜가 전격적으로 삼성동 자택으로 이동하면서, 삼성동은 친박 집회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그동안은 촛불집회에 대항하기 위해 주로 토요일에 집회를 열어왔지만, 박근혜가 청와대 퇴거 이후에는 매일 삼성동 집회가 열리고 있다. 또 주말과 달리 평일에는 강성 지지자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기존의 집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14일 오후 삼성동에서 만난 집회 참가자들에게서는 '타협(bargaining)'의 심리가 느껴졌다. 어쩔 수 없으니 현재 상황을 부분적으로나마 수용하는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이나 20대 청년이 지나가면 설득에 열을 올렸다. 한 집회 참가자는 기자에게 다가와 "대통령이 너무 억울하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황교안 총리를 지지하라"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는 "촛불에 청년들이 휘둘린다"며 새누리당 입당과 일베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 박근혜 자택 앞에 모인 친박 집회 참가자들 ⓒ 정현우


이처럼 집회 참가자들의 심리가 변한 것은, 박근혜가 청와대를 나오게 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민간인 신분이 된 이상, 앞날을 대비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새누리당 입당 원서를 받거나, 황교안 국무총리·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의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도 이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박근혜의 억울함을 풀고, 야당과 검찰․언론을 청산하려면 정치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친박 집회, '관제 데모'라고만 봐선 곤란

로스에 따르면, 암 환자의 심리 5단계 중 4단계와 5단계는 '우울(depression)'과 '수용(acceptance)'이다. 암 환자로서 겪게 되는 패배감과 금전적 부담 등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다가, 결국 상황을 인정하고 평온한 심리를 회복하며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라는 당명까지 흡수하며 정치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친박 단체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15일 대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대선 후보가 되는 것조차 난망한 상황이다. 친박 정치인들이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박근혜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란 요원하다. 또한 집회 소음과 안전 문제로 항의를 받으며, 삼성동 주민들에게 서운함을 표하는 등 국민들과의 괴리도 심해지고 있다. 집회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친박 단체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 집회 도중 SNS 단체 채팅방을 살펴보는 친박집회 참가자 ⓒ 정현우


결국 로스의 이론대로라면, 친박 집회 참가자들이 스스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점이 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현실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의 피해는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언론인에 대한 폭력이나, 일반 시민들의 일상을 침해하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친박 집회 참가자들이 치러야 할 비용을 모든 국민들이 나눠서 내는 셈이다.

그래서 친박 집회를 단순히 돈으로 동원한 '관제 데모'라고만 봐서는 곤란하다. 정치권에서 돌고 있는 통합이나 화해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들 또한 누군가의 가족이자 한 사람의 국민이다. 이들이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것이 결국 사회를 안정시키는 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때다.


출처  암 환자의 5단계 심리로 살펴본 친박 집회 참가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