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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악화(홍준표)는 정치판에서 어떻게 양화를 구축하나?

악화(홍준표)는 정치판에서 어떻게 양화를 구축하나?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7-05-04 09:54:14 | 수정 : 2017-05-04 09:54:14


영국 국민들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엘리자베스 1세는 왕실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황당한 꼼수를 사용했다. 화폐를 만들 때 은을 충분히 함유하지 않은 ‘저질 은화’를 다량으로 찍어낸 것이다. 왕실이 보유한 은에 비해 많은 화폐를 찍어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영국 왕실의 얕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불량 은화가 유통되자 영국에서는 양질의 정상 은화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 때 모두 왕실에서 찍어낸 저질 은화만 사용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궁금했던 엘리자베스 1세는 당시 왕실 재정담당 고문이었든 귀족 그레샴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레샴은 이렇게 답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 ‘몰아낸다’는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그레샴의 법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 손에 두 종류의 은화가 쥐어져 있다고 가정하자. 하나는 순도 100% 짜리 좋은 은화, 즉 양화(良貨)다. 다른 하나는 순도 20% 짜리 나쁜 은화, 즉 악화(惡貨)다. 그런데 악화건 양화건 아무거나 들고 가도 시장에서는 똑같은 가치로 쳐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어차피 같은 가치로 인정받는다면 누가 미쳤다고 좋은 은화 들고 가서 물건을 사겠나? 나쁜 은화로도 충분히 물건을 살 수 있으니 좋은 은화는 장롱에 고이 모셔놓게 된다. 은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확산되면 결국 시중에는 나쁜 은화만 남게 된다.

그래서 그레셤의 법칙을 이해하는 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따른다. 원문으로 그레셤 법칙을 적으면 아래와 같다. 굵은 글씨체로 표시된 부분이 바로 이 법칙의 중요한 전제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if their exchange rate is set by law.

즉 ‘교환 비율이 법으로 일정하게 정해져 있을 때’만이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순도 20%짜리 은화건 순도 100%짜리 은화건 모두 같은 값어치로 인정해 준다면 20%짜리 악화가 100%짜리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이 일어난다. 반면 20%짜리 은화의 가치를 100%짜리 은화 가치에 비해 5분의 1로 쳐주면, 가치를 인정받은 양화는 자연스럽게 시중에 유통된다.

우리 정치판이 꼭 이런 꼴이다. 수 십 년 동안 정치적 악화가 양화를 계속해서 구축해 왔다. 좋은 정치, 민중들을 바라보는 정치는 사라지고 막말 정치, 지역감정과 전쟁 정서만 자극하는 양아치 정치가 확산됐다.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총으로 시민들을 대량 학살하고도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 그의 후계자는 1987년 민주화투쟁을 거치고도 “나는 보통사람”이라는 황당한 주장으로 대통령이 됐다.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에 빠져죽자”는 말로 지역감정을 자극한 사람들도 버젓이 고위직에 올랐다. 초원 복국집 사건을 일으켰던 자는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왕실장’이라는 별명으로 실권을 누렸던 김기춘이다.

정치적으로 악화가 판을 치는 이유는 악화와 양화를 같은 값어치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도 똑같은 피선거권을 줬고, 출세의 권한도 인정해 줬다. 일찍이 쫓아내야 했고, 법으로 단죄했어야 했던 이들을 멀쩡한 정치인 대접을 해줬다.

20%짜리 은화를 100%짜리 은화와 동등하게 대접하면 아무도 100%짜리 은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치적 양아치로 살아도 아무 불이익이 없는데 굳이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다. 지금 정치판에 판치는 악화들은, 그들을 오랫동안 사람으로 대접해 준 한국 사회의 관용 탓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홍준표라는 악화가 대선 여론조사에서 2위권을 넘나든다고 한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자들이 모여 있던 자유한국당에서 대선 후보를 배출했다는 것도 코미디인데, 그 당의 후보는 젊은 시절 돼지 발정제를 이용해 강간을 모의한 파렴치범이다. 홍준표는 1992년 광주에서는 상인들로부터 100만 원의 전별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더 황당한 일은 이 모든 사실이 홍준표 본인의 자백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후하게 평가해줘도 정치인 홍준표는 파렴치범인데다가 죄의식도 없는, 순도 0%짜리 최악의 화폐다. 그런데 그런 그가 엄연히 유력 대선 후보로 활동하고 다닌다.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 폐기물로 불러야 마땅할 자를 정상적인 다른 정치인과 동등하게 쳐주고, 대선 후보로까지 대접해 준다면 한국 정치판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이다. 강간을 모의하고 촌지를 받아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보이는 나라에서 어느 정치인이 정도를 걷고 싶겠느냐는 말이다.

홍준표 같은 정치인은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강간 모의범에게는 그에 걸맞은 법의 심판이 필요하다. 정치 양아치에게 ‘정상적 정치인’의 자격을 인정해 주는 한, 한국 정치에 양화가 설 자리는 없다.

홍준표의 득표율이 최대한 처참하게 나와, 정치 양아치들이 다시는 정치에 발붙일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기자수첩] 악화(홍준표)는 정치판에서 어떻게 양화를 구축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