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삼성, 정치권력과 손잡고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삼성, 정치권력과 손잡고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책 ‘삼성 독재’…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청산해야할 삼성과 권력의 동맹사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 발행 : 2017-07-10 00:00:45 | 수정 : 2017-07-10 00:00:45


▲ 책 ‘삼성 독재’ ⓒ기타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이 일어나기 한해 전인 1959년 어느 날이었다. 박준규(9선 의원, 제13~15대 국회의장)가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의 집을 찾았다. 흰 종이를 펼쳐놓고 골몰하던 이병철이 박준규를 반갑게 맞았다. “박군, 잘 왔다. 좀 도와도. 이 사람 어때?” 놀랍게도 이병철은 자유당 내각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명단이 어디로 가는 겁니까?”라는 박준규의 질문에 이병철은 “서교동(이기붕)에서 달라고 해”라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삼성권력을 해체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과 이병철 삼성 창립자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이 에피소드는 최근에 출간된 책 ‘삼성 독재’에 등장한다. 삼성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정치권력과 삼성의 유착은 이후 더욱 커져만 갔다. 정권이 바뀌어도 삼성의 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삼성독재’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삼성은 지금 대한민국 전반을 마치 식민지처럼 지배하고 있다.

삼성의 국가 지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이종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7년 동안 논문·단행본·기사·증언 등 수많은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연구했다. 삼성의 창립 8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저자는 “삼성권력을 해체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1938년 3월 22일 자본금 3만 원으로 이병철이 대구에 설립한 삼성상회. ⓒ뉴시스

창립이후 80여 년 세월을 거치며 삼성은 세계적인 재벌그룹으로 도약했다. 무엇보다 정치권력과 맺은 동맹 덕분이었다. 정권과 동맹을 통해 삼성은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고 독재와 민주화,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거듭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변함없이 권력을 휘두른 집단은 삼성이 거의 유일하다. 앞서 소개한 이병철과 이승만 정권의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병철 시대에 삼성권력은 독재정권과 동맹 관계를 만들며 탄생했다.

삼성은 원조 물자 배분을 시작으로 수입 면허, 수출 보조금, 세금 감면, 금융 대출에서도 특혜를 받았다. 독재정권은 시민과 노동자의 의사를 철저히 배제하는 비민주적 방식으로 시장경제를 운영했고, 삼성은 민주주의 ‘밖’에서 최고통치자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시민사회에 지배력을 행사했다.

삼성에게 부정축재자, 매판자본, 독점자본가 등의 비판이 쇄도했지만, 국가의 정치체제가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삼성은 사회 위에 군림할 수 있었다

1987년 이병철이 사망하고 이건희가 회장직을 세습하면서 민주화와 함께 이건희 시대가 열린다. 그러면서 삼성과 정권의 동맹의 성격도 변화한다.

민주화 이후 권력이 분산되면서 이건희는 최고통치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정부 관료, 법조인, 언론인에게도 손을 뻗쳐야 했다. 삼성에게 이것은 오히려 또 다른 기회였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과의 관계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부문의 ‘삼성맨’들이 나서서 삼성을 보위했기 때문이다. 사회 전 부문에 뿌리내린 이러한 관계망에 힘입어 삼성은 독재 시대보다 더욱 강력한 ‘삼성왕국’을 건설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정권 교체에도 삼성권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삼성권력은 개혁정부나 보수정부, 그 누구와도 짝을 이루며 확고하게 민주주의 체제에 안착했다.

삼성은 주기적인 선거로 바뀌는 정치권력의 뒤편에서 세상을 조종했다. 반면 시민은 여전히 ‘독재 대 반독재’의 낡은 프레임에 갇혀 삼성에 의한 민주주의의 왜곡에 세밀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삼성권력이 새로운 지배 구도를 만들었다. 바로 삼성독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독재’는 ‘민주’ 화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자본독재의 탐욕은 노동을 넘어
시민사회를 휩쓸고 궁극에는 우리의 일상을
삼성과 자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경제성장 지상주의,
경쟁 이데올로기, 일등주의 등
‘우리 안의 삼성’을 극복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더불어 ‘삼성 독재’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화된 삼성’이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영향력과 정·관계 및 법조계 그리고 언론을 장악한 삼성을 시민사회가 제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외적 요인만이 삼성을 제어 불가능한 괴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안에 내재화된 삼성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안’에서 삼성이 관여하는 정책과 제도, 문화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우리는 삼성에 감염되었다. 삼성은 우리 사회의 욕망을 표현하는 위대한 신이 되었다.

시장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공적 가치로 충만했던 주택, 교육, 의료 등에서도 삼성이 제공하는 생산품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찾게 되었다.

최고급 주택 래미안에서 살고, 삼성이 지원하는 학교에 다니며, 삼성의료원에서 치료받는 게 꿈이 되었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라는 삼성 근본주의가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어 한국 사회가 지금껏 쌓아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뒤집는 자본 혁명이 이루어진 것이다.

▲ 박근혜 이재용 ⓒ제공:뉴시스

이 책은 자본독재의 탐욕은 노동을 넘어 시민사회를 휩쓸고 궁극에는 우리의 일상을 삼성과 자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경제성장 지상주의, 경쟁 이데올로기, 일등주의 등 ‘우리 안의 삼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해법으로 정치를 주목한다. 삼성 개혁 내지 재벌 개혁의 해법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재벌 개혁론과 사회적 타협론으로 대표되는 ‘경제 민주화 논쟁’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뒤 “경제 민주화는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다. 헌법 119조 2항에서 보장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을 지키면 된다. 국민주권에 입각한 국가권력이 사회적 가치와 합법적 범위를 벗어난 삼성권력을 처벌하면 될 일이다. 삼성의 총수 일가가 자신의 소유 지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탈법·불법 행위를 저지르므로 문제의 핵심인 총수 일가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경제 민주화는 계속 실패하는가? 원인은 삼성과 얽히고설켜 그 처벌을 미루는 국가권력에 있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정치의 문제다.

삼성이 얽어맨 기존 권력 관계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불법 행위를 처벌할 수 없을 뿐더러, 재벌 체제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규제 모델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따라서 정치권력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경제학자들의 재벌 개혁에 대한 발상은 착각일 뿐이다. 경제 민주화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출처  [새책] 삼성, 정치권력과 손잡고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