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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자본은 어떻게 재난을 이용해 배를 불렸나?

자본은 어떻게 재난을 이용해 배를 불렸나?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7-11-19 11:18:08 | 수정 : 2017-11-19 11:58:08


자유한국당 류여해 최고위원이 17일 “이번 포항 지진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하늘의 준엄한 경고, 천심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주장했단다. 이 분 과거에 수원대 강의 계획서에 ‘스토킹은 범죄인가요? 나는 사랑한 죄뿐입니다’ 등의 헛소리를 적어 유명해진 분 아닌가?

스토킹이 범죄가 아니라는 두뇌구조를 가진 분이다보니 애먼 ‘하늘’과 ‘천심’을 아무 곳에나 끌어다 쓰는 모양이다. 진지하게 권하는데 웬만하면 하늘은 좀 가만 놔두자. 하늘이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축구공이냐?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 아무나 걷어차게. 자꾸 그러면 하늘이 진짜 노하실까봐 걱정이다.

포항 지진이 하늘의 준엄한 경고일 리 없고, 하늘이 류여해 입맛에 맞게 장단을 쳐주실 리도 없다. 지진 같은 재난이 한국 사회에 경고를 남겼다면, 그 경고는 오직 하나다. 역사적으로 재난과 재앙을 자신의 배불리기에 사용한 자본의 발호를 분명히 막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난은 돈이 된다’는 처참한 시각

경제학에서는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성장을 위해 기존의 것들이 한번 깨끗이 파괴되는 게 유리하다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재난이나 전쟁 같은 폭발적인 파괴행위가 발생하면 그것이 경제 성장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주장하는 다양한 경제적 통계가 나온다. 재난 이후 복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수요와 공급이 경제를 극적으로 회복시킨다는 시각이 그런 것들이다.

▲ 16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지진 피해현장에 무너진 외벽 콘크리트 더미가 보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문제는 자본이 실재로 재난이나 재앙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려 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깊은 연구를 한 사람은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레인(Naomi Klein)이다. 클레인은 2005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 100인’에 선정된 인물로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뒤를 잇는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클레인은 2007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재해, 전쟁, 테러를 야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 『쇼크 독트린』을 출간했다. 그는 자본이 재난과 재앙을 어떻게 악용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재앙이 벌어졌던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마쳤다.

쇼크 독트린은 ‘거대한 충격이 사회를 덮쳤을 때 자본이 즉각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선언한다’는 의미다. 클레인은 쇼크 독트린이 가능한 이유를 고문에 비유한다. 고문을 받는 사람들은 고통 때문에 일종의 멘붕 상태에 이른다. 바로 이때 고문을 가한 자들은 상대의 붕괴된 멘털을 이용해 새로운 사상을 주입한다.

클레인은 자본이 재앙이나 재난을 이 고문처럼 활용한다고 설파했다. 재앙으로 국민들의 멘털이 붕괴됐을 때 그 상태를 이용해 재빨리 자기들이 원했던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졌을 때 미국 민중들은 엄청난 쇼크에 빠졌다. 이때 대통령 부시는 국민들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이용해 황당한 발표를 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미국 에너지 공급 회사 핼리버튼과 사설 군사 보안 업체 블랙워터에게 국방 관련 업무의 아웃소싱을 맡긴다는 것이다.

이 정책을 간단히 요약하면 미국 정부가 전쟁을 민영화했다는 이야기다. ‘전쟁의 민영화’라니! 전쟁이 민영화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민간기업은 오로지 이윤을 쫓는다. 그리고 이들은 전쟁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들은 더 많은 전쟁을 원할 것이다. 세계 민중들의 안전은 이들 민영화된 전쟁기업의 돈벌이 터전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이 황당한 상황을 미국 국민들은 받아들였다. 9.11테러라는 쇼크 상태를 이용해 부시와 자본이 이 이데올로기를 현실로 만든 것이다.


스리랑카의 쓰나미와 한국의 외환위기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도 예외가 아니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 해상에서는 규모 9.15의 강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쓰나미가 발생해 동남아시아 일대를 덮쳤다. 인도양 연안 국가에서 28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만 명이 실종됐다. 이재민 숫자는 100만 명을 넘겼다.

그런데 쓰나미가 지나간 이후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우선 “이번 쓰나미로 200만 명이 빈곤에 바질 것이다”라며 공포를 조장했다. 그리고 민중들이 쇼크 상태에 빠지자 ADB는 “하지만 재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지역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것이다”라며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희망으로 포장했다.

▲ 쓰나미가 발생했던 일본 후쿠시마현 소마 거주지역 모습. ⓒ뉴시스

그 결과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스리랑카의 아름다운 해변을 세계적 리조트 자본이 접수했다. 리조트 자본이 들어와야 지역경제가 살고, 쓰나미를 막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삽시간에 스리랑카를 장악했다. 어민들은 고향을 등졌고, 리조트 자본은 유유히 해변을 차지했다.

클레인은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도 쇼크 독트린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월가가 인위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금융시장을 박살냈다는 게 클레인의 주장이다.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한국은 신속하게 신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개방해야 국가 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쇼크 상태에 빠진 한국은 제대로 점검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안전과 생명에 관한한 자본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상상해 보자. 자본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쇼크에 빠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클레인은 단언한다. 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 재난과 재앙을 원할 뿐 아니라 심지어 조작해 낸다고 말이다. 클레인은 그런 세력을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고 부른다.

재난과 재앙이 휩쓸고 가면 자본은 어김없이 “경제 회복을 해야 한다”며 민영화 이데올로기를 전파했다. 전쟁도 민영화하는 판국에 민영화를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국민들이 쇼크에 빠져 주기만 하면 민영화의 길은 활짝 열린다.

재난과 재앙이 주는 경고는 바로 이것이다. 적어도 안전과 인간의 생명에 관해서 자본이 하는 말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심은 돈벌이에 있지,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자들이 “핵발전소는 안전하다. 내진설계는 충분하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누가 하고 있나? 대부분 핵발전소가 돈이 된다고 열을 올리는 자본의 이익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그 말을 믿으라고? 천만에, 절대 믿지 못하겠다. 역사적으로 자본이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우리는 포항 지진으로 분명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영역은 결코 자본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 그 영역이야말로 국가와 공공이 굳건히 지켜야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출처  쇼크 독트린, 자본은 어떻게 재난을 이용해 배를 불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