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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자료 숨기고 여론전··· GM은 ‘못 믿을 상대’

자료 숨기고 여론전··· GM은 ‘못 믿을 상대’
투자계획서 제출 여부·산업은행 실사 등 놓고 서로 불신
정부, 실사 무력화 의심…‘철수 결정 2월 말 시한’ 못마땅
엥글 사장 권한도 신뢰 못해…GM의 진정성이 담판 변수

[경향신문] 구교형 기자 | 입력 : 2018.02.22 06:00:07 | 수정 : 2018.02.22 06:01:01


▲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와 군산공장 폐쇄를 포함한 한국지엠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한국지엠 2대 주주인 정부와 GM 본사 사이에 ‘해묵은 갈등’이 사태 해결에 발목을 잡고 있다. 수년간 산업은행을 통해 경영투명성 강화와 장기투자계획 제시를 요구했지만 GM은 번번이 무시해왔다고 정부는 본다. 이번에도 GM은 1조원대 지원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앞서 협상의 기본이 되는 경영자료 제출부터 견해차를 보이는 등 불신의 골이 깊다.


GM 장기투자계획 실체 있나

21일 정부·여당 등의 말을 종합하면, 양측은 GM이 정부에 납득할 만한 장기투자계획을 제출했는지를 두고 입장이 다르다. GM은 더불어민주당 ‘한국지엠 대책 태스크포스(TF)’ 측에 “정부에서 요구하는 비밀유지 의무 때문에 함구하고 있을 뿐 서류로 된 투자계획서를 관계기관에 냈다”고 밝혔다. 반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GM이 먼저 구체적인 경영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은 등에서 GM에 100여건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회신이 온 것은 6건뿐이란 얘기도 들린다.

지난해 12월에는 이동걸 산은 회장이 카허 카젬 한국지엠 대표를 만나 정부의 ‘8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요구사항에는 ‘흑자전환 방안 등 경영개선 대책 및 장기발전계획 수립 및 제출’과 ‘물량 확대 등 한국지엠 역할 확대를 위한 GM 본사 협력 방안 제시’ 등이 포함됐다. 이후 두 달간 침묵하던 GM은 설 직전인 지난 13일 돌연 군산공장 폐쇄부터 발표했다. 이어 연휴 직후인 20일에는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과 만나 GM 본사의 3조2000억원대 한국지엠 채권의 출자전환과 부평·창원 공장 신차 배정계획을 내놨다. 정부 입장에서는 의견 조율 없이 일방통행식 행태의 여론플레이로 비친다.


산업은행 실사 놓고 온도차

정부가 후속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산은 실사 작업에 대해서도 속내가 판이하다. GM은 정치권에 “완전히 오픈해서 실사를 받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지엠 2대 주주인 산은이 경영자료 제출을 요구할 때마다 대외비 등을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던 GM이 말만 앞세워 ‘여론전’을 벌인다고 본다. 한국지엠의 부실이 심각해지자 지난해 10월부터 경영실태 파악을 위해 ‘분기실적 및 손실분석 등 재무실적 공개’를 요구했지만 관련 자료를 단 한 건도 받지 못했다고 정부는 밝혔다. 한마디로 정부는 GM이 한국지엠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등 회계를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도 유사한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산은은 2016년 4월 당시 한국지엠의 대규모 손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경영진단 컨설팅을 제안했지만 GM 본사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해 3월에도 주주 간 계약서를 근거로 회계·법무법인과 함께 감사에 착수했으나 GM 측의 비협조로 감사가 중단됐다.

정부가 대표적으로 의심하는 경영불투명성은 높은 매출 원가율과 본사 차입금에 대한 고율의 이자 지급, 불합리한 GM 본사의 업무지원비 강요 등이다. 쉽게 말해 ‘한국지엠이 개발한 디자인 등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고, 본사 지원 부분만 부풀려 계산해 이익 다수를 빼내갔다’는 의심이다.

정부는 경영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은 재정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간주해 이번 협상에서는 한 발도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백 장관이 “불투명 경영을 해소해야 지원이 가능하다”고 전제를 단 이유다.

연장선상에서 정부는 GM이 한국지엠 철수를 결정할 데드라인을 ‘2월 말’로 못 박은 데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최소 2~3개월이 걸리는 산은 실사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일 수 있어서다. 군산공장 폐쇄 등으로 촉발된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고용위기를 악용해 가장 빠른 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려고 한다는 판단이다.


배리 엥글 발언 신뢰성 있나

협상 책임자인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사진)이 정부가 이전에 접촉해온 GM 임원들과 다른 면모를 가졌다는 점도 의사결정에 신중한 이유 중 하나로 풀이된다. 엥글 사장은 정·관계 인사들과 두루 접촉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회사의 입장이 똑같다고 설명하지만, 정부는 국내에서 합의한 내용이 언제든 GM 본사 이사회에서 뒤집힐 수 있다고 불신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GM은 자동차업계 안에서 굉장히 관료적인 조직으로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임원들이 본사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엥글 사장이 세 번의 방한 기간 한 말들을 보면 자신의 협상 성과를 토대로 본사를 설득하려는 타입으로 기존 임원들과는 다른 인상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정부는 GM이 후속 협상을 앞두고 완벽히 달라진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당장 한국지엠의 생존을 건 담판은 어렵다는 원칙을 세웠다. 엥글 사장이 22일 만남을 제안했지만 백 장관의 일정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대신 산업부에서 이인호 차관이 나가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결국 상호 간에 뿌리 깊은 불신이 한국지엠 사태 해결을 점점 더 꼬이게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GM과 정부 사이에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출처  [GM 사태] 자료제출 거부, 여론전 하는 GM…정부 입장선 ‘못 믿을 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