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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MB 단죄’ 검찰은 박수받을 자격 없다

‘MB 단죄’ 검찰은 박수받을 자격 없다
MB의 추억 ③
[한겨레] 김태규 기자 | 등록 : 2018-03-16 10:24 | 수정 : 2018-03-16 17:46


▲ 그래픽-장은영

이명박이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2007년 수사 뒤 다시 10년 만에 꺼내든 ‘가카 사건’의 결론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MB의 ‘아주 오래된 범죄’인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 그렇다.

2007년 이명박 검증팀에서 취재했을 때부터 “다스는 MB 것”이라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검찰의 판단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여러 차례 춤을 췄다.

강산이 바뀐다는 그 10년 사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검찰을 춤추게 한 ‘그것’은 무엇일까.


검찰 “이상은, 도곡동 땅주인 아니다”

2007년 8월 13일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의 차명재산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이 후보의 큰형 이상은 씨가 가진 도곡동 땅의 지분은 이씨가 아닌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도곡동 땅이 사실상 ‘MB 것’이라는 말이었다.

서울 도곡동 땅은 MB 은닉재산의 ‘핵’이다. 지금은 포스코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4240㎡(1282평) 넓이의 이 땅은 1985년 MB의 큰형 이상은 씨와 처남 김재정 씨 명의로 매입됐다. 매입대금은 15억6천만 원. 10년 뒤인 1995년 이 땅은 포스코개발에 매입가의 17배인 263억 원에 팔렸다.

2개월 뒤 매입대금의 일부가 이상은·김재정 씨가 공동대표로 있던 다스로 유입된다. 유상증자 명목으로 7억9200만 원이 들어갔고 5년 뒤인 2000년에도 10억 원이 다스 대표이사 명의의 가지급금 반제 형식으로 섞인다.

1987년 현대자동차 시트 납품업체로 설립된 다스(당시 대부기공)도 MB가 현대건설 퇴임용으로 마련한 회사라는 얘기가 돌았다. 도곡동 땅 매각대금 일부가 다스의 자본금으로 들어가고 다스는 2000년 BBK에 190억 원을 투자한다. 도곡동→다스→BBK로 연결되는 자금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MB를 매개로 사돈 관계가 된 16살 차이가 나는 두 남성이 땅도 함께 사고 사업도 같이하는 이례적 상황. 두 사람은 차명재산 관리인에 불과하고 실제 주인은 MB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상황이었기에 1995년에 팔린 도곡동 땅의 원래 주인이 곧 다스의 주인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없었던 도곡동 땅 문제는 의외로 김재정 씨 쪽의 요청으로 검찰이 수사에 나선다. 2007년 7월, <경향신문>이 도곡동 땅 등의 차명재산 의혹을 보도하자 김재정 씨가 고소한 것이다. 지만원 씨도 다스의 실제 주인은 MB라며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그를 고발했다. 도곡동 땅과 다스의 주인이 MB인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지 한 달 뒤 검찰은 중간수사 발표를 내놨다. 검찰의 판단은 최소한 도곡동 땅 절반(이상은 명의)의 실제 주인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갑자기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자처한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이상은 씨가 1995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을 판 뒤 자신의 지분 대가로 받은 돈 가운데 100억 원을 금리가 낮은 채권간접투자상품 등에 10년 이상 묻어두면서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차장검사는 또 “2002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매달 1천만~3천만 원씩 15억여 원을 97차례에 걸쳐 전액 현금으로 찾은 데 대해 이상은 씨는 생활비 등으로 썼다고 주장하지만, 이 중 일부는 이상은 씨가 해외에 있을 때 인출된 점 등을 고려하면 이상은 씨 본인의 돈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매월 수천만 원이 꼬리표가 남지 않는 현금으로 인출돼 실제 주인에게 건너갔을 강력한 정황이라는 얘기였다.

▲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 이명박 경선 후보 진영 의원들이 2008년 8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의 ‘도곡동 땅’ 차명재산 의혹 수사결과 발표에 항의하기 위해 검찰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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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이미 “도곡동 땅 주인은 MB”

▲ <세계일보> 1993년 3월 27일치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은 MB의 것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이미 1993년에 세상에 공개됐다.

그해 3월 27일 <세계일보>는 ‘이명박 의원 150억대 땅 은닉’이라는 제목으로 “민자당 이명박 의원이 85년 현대건설 사장 재직 때 구매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시가 150억 원 상당의 땅을 처남 명의로 은닉한 사실이 26일 밝혀져 이번 재산공개에서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도 “이명박 의원이 85년 현대건설 사장 때 사들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시가 500억 원어치 땅을 처남 명의로 해놓고 있어 자산의 소유 사실을 고의로 감추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신문의 보도는 당시 청와대와 민자당 재산공개 진상파악특위의 내사 결과를 인용한 것이었다.

당시 재산은닉이 문제가 되자 이명박 의원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땅(184억9000만 원)만 추가해 247억2000만 원으로 수정 신고했다. 끝까지 재산공개 대상에서 누락시켰던 도곡동 땅은 MB 은닉재산의 종잣돈이 된다.

도곡동 땅의 이런 연혁을 고려하면, 2007년 8월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는 ‘새로운 팩트’가 아니었다. MB 은닉재산의 원천인 도곡동 땅의 주인이 “이상은 씨가 아닌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검찰의 완곡한 표현에 MB 쪽이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자 당시 대검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 땅이 이 후보 것이라고 검찰이 발표할 수 있었겠냐. 일종의 (후보로서의) 예우를 해 준 거다. 그 정도 얘기를 했으면 언론에서 알아서 판단을 해야 한다.”

검찰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명박 캠프는 “경선에 개입하려는 정치공작의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 갑자기 감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과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피 터지는 쟁투를 벌이고 있었다.


MB 경선 승리…이제 권력은 MB에게로

사실상 ‘도곡동 땅은 이명박 것’이라는 검찰의 선언에도 ‘대세 이명박’은 2007년 8월 20일 경선에서 승리했다. 여당의 지지율이 바닥인 상태라 한나라당 경선은 사실상 대선 본선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 당선을 향한 ‘8부 능선’을 넘어 ‘대관식’을 준비하던 MB는 느긋한 마음으로 검찰의 최종수사 발표를 기다렸다.

중간수사 결과만 발표했던 검찰은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군지, BBK 주가조작에 MB가 관여돼있는 건지 결론을 내놔야 했다. 검찰은 대선을 2주일 앞둔 2007년 12월 5일 그 답을 내놨다.

난 그날 아침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했고 6층 브리핑룸에서 검찰이 배포한 두툼한 발표자료를 받아 수사결과를 훑어나갔다. 도곡동 땅과 한 몸으로 얽혀있는 다스의 실소유주가 MB라는 의혹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것이라고 볼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밝힌 검찰의 결론이 눈에 들어왔다.

도곡동 땅이 ‘MB 소유’라고 사실상 밝혀놓고 도곡동 땅과 한 세트인 다스는 MB 것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결론이었다. 그 자리에서 물었다.

▲ 2007년 12월 5일, 서울중앙지검이 MB 관련 의혹을 무혐의 처분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이상은 씨 도곡동 땅 매각대금 17억 원이 다스로 들어간 게 확인됐고, ‘이상은 씨 도곡동 땅 지분은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검찰의 8월 수사발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스가 이명박 후보의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8월 수사 결과와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

수사결과를 발표했던 김홍일 3차장 검사는 “오늘 말한 것은 ‘다스가 이 후보의 소유가 아닌 것 같다’가 아니라 ‘다스가 이 후보의 소유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스가 이명박 것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이명박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해명. 중간수사 발표와 아귀가 맞지 않는 결론에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다 못한 최재경 특수1부장이 직접 설명에 나섰다. 최 부장검사는 검사 9명을 데리고 MB 관련 의혹 수사를 총괄한 주임검사였다.

“우리도 김 기자처럼 같은 의심을 하고 어제저녁까지 관계자 조사하고 계좌추적도 했습니다. 이상은 씨 명의로 다스에 들어왔다가 가지급금 반제로 들어간 10억 원은 채무니까 의미가 없다고 봤고요. 다만 95년 8월 유상증자는 기업 소유권 문제니까 이 부분 상당한 의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사했습니다. 우리도 의심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고 증거가 안 나옵니다. 그래서 그 소유주가 이명박 씨라고 볼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다스가 “이명박 것이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명박 것이라고는 ‘더더욱 말 못 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한 기자가 추가로 물었다. “다스가 이명박 후보의 소유라고 볼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했는데 ‘뚜렷한’이라는 수식어의 의미는 뭔가요?”

“그러면 ‘증거가 없다’로 수정하겠습니다. 통상적인 수식어입니다.”(김홍일 3차장검사)

검찰의 최종 수사발표의 요지는,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은 찾지 못했고 다스의 소유주는 MB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2주 뒤 대선을 치를 MB의 모든 혐의를 깨끗하게 씻어준 결론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검찰의 ‘현명한’ 결정에 “늦었지만, 진실이 밝혀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이틀 뒤 방송 연설에서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밝히며 그에겐 이권이나 다름없는 정권 획득을 위한 굳히기에 들어갔다.


특검 “도곡동 땅은 이상은 것” 개악된 진실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후보는 48.7%를 득표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을 향한 수사는 끝난 게 아니었다. 대선 이틀 전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이명박 후보의 BBK, 다스, 도곡동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취임이 예정된 당선인에 대한 수사였다.

고법원장 출신 정호영 변호사가 특검으로 임명돼 수사를 시작했다. 난 이명박 검증팀 취재에 이어 특검 수사 취재도 맡게 됐다. 2008년 2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호영 특검과 얼굴을 맞댔다. 정 특검은 “도곡동 땅이 누구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수사 목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추가 수사를 통해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이 이명박임을 확인하겠다는 얘기인가. 검찰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도곡동 땅 주인을 못 찾았다고 했으니, 정호영 특검이 추가 수사를 통해 도곡동 땅만이라도 실제 주인을 찾아내려고 하는 줄 알았다. 물론 순진한 생각이었다.

▲ <동아일보> 1985년 4월 25일치
특검팀은 이명박 취임 4일 전인 2008년 2월 21일, MB 관련 의혹을 모두 무혐의 처분하는 화끈한 결론을 내놓았다. 심지어 검찰이 ‘제3자의 것’이라고 표현했던 도곡동 땅도 이상은의 것이라고 발표했다.

5년 동안 매달 1천만~3천만 원씩을 찾은 영포빌딩 관리인 이병모 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한 결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직장인 영포빌딩 근처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댔다. 실제 땅 주인에게 돈을 상납하려면 영포빌딩을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다른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병모 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기간은 2006년 8월부터 고작 1년 치에 불과했다. 2007년 8월 중간수사 발표에서 검찰은 매달 현금으로 인출된 수천만 원의 사용처에 큰 의심을 하였지만 특검은 “이상은 씨가 다스 회장으로서 접대비를 주로 현금으로 사용했고 유흥비, 외국 출장 비용, 아들 사업비용, 운전기사 용돈을 모두 현금으로 매달 3천만 원씩을 썼다”고 밝혔다. 이상은 씨의 비정상적인 ‘현금 소비 성향’을 인정한 것이다.

심지어 특검팀은 1985년 이상은 씨가 젖소를 팔고 두부를 수출해 도곡동 땅 매입 자금 7억8천만 원을 마련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였다. 이상은 씨가 특검팀에 낸 소명서에는 1985년 9월 젖소 가격이 한 마리에 130만~240만 원으로 기록돼있었고 특검팀은 “이런 가격으로 100여 마리를 팔아 2억5천만 원 상당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소명도 허점투성이였다.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 전 이상은 씨의 주장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한 독자는 이 해명이 허위일 수 있다며 1985년 4월 25일 <동아일보> 기사를 전자우편으로 제보했다. “충북 청원군의 한 농부가 2년 전에 126만 원을 주고 암송아지를 샀는데, 가격이 70만 원으로 폭락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일문일답 과정에서 이 기사를 거론하며 이상은 씨의 소명을 믿을 수 있냐고 물었다. 특검팀 파견자였던 차맹기 검사는 “이상은 씨가 도곡동 땅을 산 시점은 1985년 5월인데 소는 그 이전에 팔았다”고 답했다. 이상은 씨가 실제로 소를 언제 팔았는지 그때 시세는 얼마였는지 입증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엉성한 수사결과를 근거로 특검은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은 MB가 아닌 이상은 씨라고 판정했다.

특검 수사를 거치면서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되레 MB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수사결과가 개악된 셈이었다. 특검이 원만한 결론을 내기까지는 중요 수사를 담당한 파견검사들의 공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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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검찰을 춤추게 한다

특검은 검찰이 하지 못했던 MB 직접조사는 성공했다. 2008년 2월 16일 서울 삼청각에서 MB는 특검보 3명과 수사관 1명을 만났다. 대통령 당선인을 예우한다며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특검사무실이 아닌 고급 한정식집에 특검팀이 나가서 조서를 작성하는 ‘출장조사’였다. 조사는 3시간 만에 끝났고 저녁 식사로 꼬리곰탕을 먹었다고 했다. 무혐의 처분을 위한 요식행위였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8년 3월 14일, MB는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21시간 동안 검찰청에 머무르며 점심으로 설렁탕, 저녁으로 곰탕을 먹었다. MB의 입맛과 메뉴는 비슷했지만 10년 전보다 상황은 180도로 변했다.

검찰은 2007년 12월 이후에도 조성된 다스의 비자금을 찾아냈고 다스의 사장이었던 MB 측근 김성우 씨는 ”다스는 MB 것”이라는 자수서를 제출했다. 전 경리팀장 채동영 씨, 직원 김종백 씨 등 비밀을 아는 여러 사람도 입을 열었다. 영포빌딩 지하 비밀창고에서 다스 관련 자료도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런 것들은 외부로 드러나는 결과일 뿐 수사의 성패를 가르는 건 검찰의 수사 의지다. 10년 전 MB를 수사했던 검사들이 “당시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검찰이 강조하는 그 ‘수사 의지’는 항상 힘을 가진 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였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 직전 ‘도곡동 땅 주인이 따로 있다’는 중간 수사발표는 치밀하게 계산된 검찰의 ‘실력 행사’였다.

당시 중간 수사발표 전날까지도 대검 고위간부는 “한나라당 경선 전에 발표해도 ‘경선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똑같은 비판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수사하는 것이 맞다”며 경선 뒤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경선 일주일 전이었던 2007년 8월 13일 오후 4시 30분, 검찰은 갑자기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이명박 후보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몇 달 뒤 검찰 최고위급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어렵고 복잡한 BBK 건 파지 말고 쉽고 간단한 도곡동 땅에 집중하라는 힌트였는데 여당에서 그걸 못 알아먹더라.”

당시 검찰의 포석은 현재 권력인 여권을 향한 ‘성의 표시’였다. 또한, 보수 진영에 ‘굴러들어온 돌’인 MB를 검찰이 타격해 ‘TK 적자’인 박근혜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고도의 계산된 보험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력 질긴 MB는 검찰의 실력 행사에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다. 권력의 향배가 그날부터 바뀐 것이다. ‘미래 권력’이 된 MB 앞에서 검찰은 다스 압수수색을 건너뛰었고 칭병 중이던 MB의 ‘큰형님’ 이상은 씨를 직접 조사하지도 못했다. 강제수사의 ABC가 빠져버린 상황에서 그들은 최종 결론을 냈다. 특검은 MB 쪽이 가져오는 소명을 추궁하기보다는 충실히 들어주고 수사결과로 반영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게 그들의 ‘의지’였다.

▲ 검찰 조사를 마친 이명박이 1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이명박은 차에 오르기 전 변호인단을 바라보며 수고했다는 말을 남겼다. 신소영 기자


10년 만에 뒤바뀐 진실…검찰은 뭐라 설명할 것인가

10여 년 전 내 눈에 비친 검찰은 권력에 매우 민감했다. 약하면 때려잡고 강하면 굴복하는, 그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검찰이 킁킁거리며 권력의 냄새를 맡고 다닐 때 MB는 더욱 대담해졌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뒤인 2007년 11월부터 삼성으로부터 소송 비용 대납 형식으로 뇌물을 받았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청와대 직원과 LA 총영사를 움직여 다스가 BBK에 투자한 돈 140억 원을 돌려받으려 집요하게 움직였다. 퇴임 뒤에는 다스를 아들에게 우회 상속하려고 멀쩡한 하청업체의 일감을 빼앗았다. 퇴임 뒤 돌아갈 내곡동 사저 건축비용으로 이상은 씨 명의로 숨겨놨던 도곡동 땅 매각대금 67억 원을 가져다 썼다.

권력의 이름으로 은폐됐던 MB의 범죄 행각은 10년 만에 검찰의 재수사 끝에 결국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다. 그러나 2018년 3월 지금 이 순간, 만약 박근혜의 무지함과 무도함이 드러나지 않아 ‘친박 정권’이 연명해있는 상태라면 검찰은 MB를 이렇게 몰아세울 수 있었을까. 한때 그의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MB가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고 표현했다.

그에게 이권을 선물한 건 2007년 대한민국의 국민이었지만 막강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은 MB의 부패한 단면을 마주하고도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검찰이 MB를 ‘괴물’로 키워놓고 이제 와서 거악을 척결했다고 우쭐대는 게 사리에 맞지 않는 이유다.

“다스가 이명박 후보 것이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

10년 전 검찰의 수사 결과를 다시 읽어본다. 이제 검찰은 다스의 주인이 MB라고 볼 만한 “뚜렷한” 증거가 생겼다고 설명할는지 궁금하다. 주변 인물들의 제보 덕분에, 비자금이 추가로 발견돼서 다스의 주인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주장할지 궁금하다

10년 전 결과적으로 진실을 왜곡한 수사 결과를 반성할 생각은 없는지, ‘MB 단죄’라는 카타르시스에 취해 검찰 조직의 잘못을 덮어버릴지, 과거 MB 수사를 지켜봤던 기자로서 정말 궁금하다. 적어도 MB 문제에 있어 검찰은 박수받을 자격이 없다.


출처  ‘MB 단죄’ 검찰은 박수받을 자격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