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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비망록' 이팔성 “MB 도움 받으려 돈 줬다”

‘뇌물 비망록' 이팔성 “MB 도움 받으려 돈 줬다”
MB 항소심 증인으로 맞대면
재판장 “가림막" 제안에 “괜찮다”
“KRX 가라 했으면 제대로 해놨어야”
비망록 적힌 MB에 대한 원망 확인
“2007년 김윤옥에 금품” 증언

[한겨레] 고한솔 기자 | 등록 : 2019-04-05 19:28 | 수정 : 2019-04-05 19:58



“케이아르엑스(KRX·한국거래소)를 저보고 가라 했으면 제대로 (이명박이 사전 작업을) 해놨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이명박 일가에게 건넨 뇌물을 비망록 형태로 작성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5일 이명박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3월 주요 금융기관장 자리가 무산된 데 이어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에서도 밀려난 뒤 비망록에 원망과 비난의 글을 남긴 이유를 이렇게 증언했다. ‘돈만 받고 준비도 안 해놓은 채 자리부터 제안했다’는 취지다. 이 전 회장은 당시 비망록에 “케이아르엑스는 탈락했다. 엠비(MB)가 원망스럽다.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취급하는지”,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등의 글을 남겼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 이명박 이 비서관을 통해 자신에게 직접 전화해 한국거래소 이사장직을 제안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이 전 회장은 그동안 항소심 증인심문 출석을 거듭 거부했다.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가 일부러 출석을 피하려는 것으로 판단하고 강제로 법정에 출석시키는 구인영장까지 발부하자, 이 전 회장은 이날 법정에 자진 출석했다. 그는 법원에 증인지원제도를 신청해 방청객 자리에 앉아 있다가 증인석으로 옮기는 일반 증인들과 달리 피고인이 드나드는 문을 통해 법정에 출석했다. 입장할 때는 이명박 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재판장이 피고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가림막 설치를 원하는지 묻자, 이 전 회장은 “괜찮다”고 답한 뒤 증언을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법정에서 뇌물죄 관련 증언을 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가림막 없이 증언하다 이명박으로부터 욕설을 들은 바 있다.

‘이팔성 비망록’은 1심에서 이명박의 뇌물 혐의 유죄를 끌어낸 핵심 증거 가운데 하나다. 비망록에는 이명박의 당선인 시절부터 취임 직후까지 건넨 뇌물 액수와 시기, 당시 심정 등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 전 회장은 이날 ‘도움을 기대하고 자금을 지원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명박 변호를 맡은 강훈 변호사가 자금 지원 계기에 관해 묻자, 그는 “가깝게 계신 분이 큰일을 하게 돼서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제가 생활하는 데 도움도 될 거라고 해서 (그랬다)”라고 답했다.

이날 이 전 회장은 대선 전인 2007년 7월 서울 가회동 이명박 집에서 이명박 부인 김윤옥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증언도 했다.

이명박은 1심 재판에서 2007년 1월부터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인 2008년 4월까지 이 전 회장에게서 인사 청탁 등 명목으로 현금과 양복 등 19억1230만원어치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등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여원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쪽은 비망록이 그때그때 작성된 것이 아닌 ‘사후 협박용’으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있어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뇌물 비망록' 이팔성 “MB 도움 받으려 돈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