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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대규모 작업거부’…이유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대규모 작업거부’…이유는?
‘대금 후려치기’ 손도 안 대고 대출 지원해 돌려 막아
‘상생’으로 포장된 ‘갑질’

[민중의소리] 조한무 기자 | 발행 : 2019-04-23 16:56:31 | 수정 : 2019-04-23 16:56:31


▲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소식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최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약 2000명이 집단 작업 거부에 나섰다. 그간 일부 사내하청 노동자가 산발적으로 작업을 거부한 적은 몇차례 있었으나, 이번처럼 대규모 이탈이 발생하기는 처음이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으로부터 공사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하도급사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해버린 탓인데,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와 ‘현대중공업 갑질 철폐 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가 작업 거부에 돌입했다. 그간 작업 거부는 업체마다 산발적으로 일어났으며 단기간에 그쳤다. 대규모로 일주일간 지속한 건 처음이다.

작업을 거부한 노동자는 건조부와 도장부 소속이다. 지난 8일 건조1·5부 각각 4개 업체, 총 8개 업체는 현대중공업이 지급하는 대금을 받지 않겠다며 전자서명을 거부했다. 대금은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월급의 20~30%, 많아야 50% 수준이었다. 동시에 하도급사는 노동자에게 임금 지급 불가를 공표했다. 노동자가 항의하며 퇴근해도 하도급사 대표는 붙잡지 못했다.

이어 다음날인 9일 도장1·2부 각각 5개 업체, 총 10개 업체도 대금 수령을 거부하고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형편이 아니라고 전했다. 이들 업체 노동자도 작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건조부 소속 노동자 1200명, 도장부 소속 노동자 800명 등 총 2000명이 작업을 거부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이정은 사무차장에 따르면 노동자 임금 체불은 두 달간 누적됐다. 이 차장은 “2월분 월급부터 부서 전체 임금이 밀리기 시작했다”며 “하도급사 월급날이 매월 10일인데 지난 8, 9일 업체 대표들이 3월분 임금까지 못 주겠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정기선 치적으로 홍보된 대규모 수주, ‘대금 폭탄’이 됐다”

사내하도급사와 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대금 후려치기는 고질적으로 자행돼왔다. 하도급사는 반복적으로 노동자 임금에 미달하는 대금을 받아왔다. 노동자 임금 체불도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규모 작업 거부 사태까지 벌어진 이유는 뭘까.

사내하도급사는 대금이 임금에 크게 못 미치는 ‘대금 폭탄’이 두 달 연속 이어지면서 작업 거부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갑질 철폐 대책위원회’ 김도협 위원장은 “임금이 5억6000만원 발생했는데 기성금이 3억3000만원 밖에 안 나오는 ‘대금 폭탄’이 2016년부터 1년에 한 번, 또는 간격을 두고 두 번 정도 터졌다”며 “다른 달에는 2000만~3000만원 적자와 흑자를 오갔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한 달 ‘대금 폭탄’이 떨어지면 다음 달은 어느 정도 대금을 올려줬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2월과 3월 연속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청 노조는 업체별 임금 대비 대금 미달액이 1억5000만원에서 3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도급사와 노동자는 현대중공업이 무리하게 저가 수주를 하면서, 대금 후려치기가 심해졌다고 보고 있다. 저가 수주 선박으로는 현대중공업이 2017년 폴라리스쉬핑에 수주받은 VLOC(초대형광석운반선) 18척이 지목된다.

현대중공업은 2017년 국내 중견 해운사 폴라리스쉬핑으로부터 VLOC 선박 18척을 수주받았다. 수주 당시 현대중공업은 해당 계약을 정기선 부회장 치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이 해당 계약을 놓고 저가 수주였음을 시인하며 경영실패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하도급사와 노동계 말을 종합해보면 한영석 사장은 최근 하도급사와의 간담회에서 ‘폴라리스쉬핑 저가 수주로 골치가 아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한 현대중공업 노조 대의원 수련회에 참석해서는 자신이 간담회에서 이같이 발언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도 “현대중공업 측 부서 담당자들에게 폴라리스쉬핑이 저가 수주 됐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 폴라리스쉬핑과 계약 당시 현대중공업은 해당 계약을 정기선 부회장 치적으로 홍보했다. ⓒ현대중공업


“저가수주 피해를 하도급사·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선박을 저가 수주 받았다는 건 현대중공업이 해당 선박을 만들어도 이득이 별로 남지 않거나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현대중공업이 저가 수주 선박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도급사와 노동자를 쥐어짜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폴라리스쉬핑 선박은 1·2·8·9 도크에서 건조되고 있다. 1·2 도크에서는 건조1부, 8·9 도크에서는 건조5부가 작업 중이다. 대규모 작업 거부가 일어났던 부서다. 저가 수주 선박이 연이어 도크에 오르자 해당 작업에 대한 대금도 연달아 낮게 책정돼 임금 체불까지 이어졌다는 게 이 차장 설명이다.

폴라리스쉬핑 선박은 지난해 8월 1호선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현재 3척이 인도됐으며 이번 달에 4호선 인도를 앞두고 있다. 폴라리스쉬핑 선박은 내년 초까지 도크에 계속 깔릴 예정이다.

이 차장은 “저가 수주라고 해놓고 현대중공업은 손해 보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손해 전체를 하도급사와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현대중공업은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부사장이 챙긴 836억원 고액배당금은 하청 노동자 임금을 빼앗아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하도급사 한계 봉착”…언 발에 오줌 누는 현대중공업

저가 수주를 걷어내도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김형균 정책기획실장은 “‘저가 수주’라는 말은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사와 노동자를 쥐어짜는 핑계로 활용된 측면도 있다”며 “이번 작업 거부 사태는 그간 자행된 대금 후려치기의 연장선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폴라리스쉬핑 선박이 저가 수주인지, 대금 후려치기가 저가 수주로 인한 것인지 하도급사와 노동자로서는 확인이 힘들며, 단지 ‘저가 수주’는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사와 노동자를 상대로 대는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폴라리스쉬핑 선박이 저가 수주 됐다는 얘기의 출처는 모두 한 사장과 부서 담당자 등 현대중공업 관계자로 향한다.

▲ 현대중공업이 폴라리스쉬핑에 인도한 32만 5000톤급 초대형 광석선 ‘SAO FABIAN(상 파비안)’호. ⓒ폴라리스쉬핑

김 정책기획실장은 “현대중공업은 2014년 이후 조선업이 하향하면서, 경영위기를 하도급사와 노동자에게 전가했다”며 “정규직은 희망퇴직을 빙자해서 내보내고 하도급사는 계약을 해지하거나 대금을 삭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음 달 대금은 괜찮게 나오겠지’라는 희망 고문으로 버티다가 폐업하는 하도급사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여기저기서 대출받아 월급을 주다가 적자 규모가 2000만~3000만원에서 2억~5억원으로 늘어나자 대출이 불가능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하도급사 피해 누적으로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 대부분은 밀린 임금을 다 받지 못한 상태로 작업에 복귀했다. 이 차장은 “건조부는 임금의 25%~70% 밖에 못 받았다”며 “노동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임금은 체불됐지만 이번 달에 일을 안 하면 다음 달에 월급을 못 받으니까 작업에 복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하도급사도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다. 현대중공업은 작업 거부 사태 직후인 지난 10일 하도급사에 ‘원활한 도급계약 이행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현대중공업은 “작업중단으로 공정수행에 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시정조치 계획서 제출을 요구했다. 계획서를 제출·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청구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대금을 올려주는 대신 대출 사업을 폈다. 김 위원장은 “사내하청 노동자 2월분 월급이 체납되자 현대중공업은 ‘경영상생지원금’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을 10개월 무이자로 대출해줬다”며 “현대중공업도 대금이 임금에 못 미친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금 후려치기 ‘갑질’을 ‘상생’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예림과 하양 등 업체 2곳은 작업 거부 사태 이후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이번 달 말부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들 업체 누적 적자가 불어나 더는 대출로 막을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곽 대표에 따르면 하양이 진 빚은 신용재단 및 중소기업 진흥공단 대출 2억4000만원, 4대 보험 체납액 1억1000만원, 임금체불 4억5000만원 등 총 8억원이다. 2월분 임금 지급을 위해 빌린 현대중공업 상생지원금 1억5700만원까지 포함하면 총대출은 9억5700만원에 달한다.

예림과 하양에 소속된 노동자는 지난 2월 기준 총 370여명이다. 계약이 해지되면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곽 대표는 23일 오후 12시 30분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의 대금 후려치기를 규탄했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성실히 임해 줄 것을 요청한다”며 “일방적인 계약해지 철회와 노동자의 체불된 임금을 해결하고, 공사대금 삭감으로 인한 피해액 전액 보상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합리적 대금 지급으로 근본 문제 해결해야”

저가 수주든 조선업 불황이든 이를 핑계로 하도급사와 노동자 쥐어짜기가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결국 대금이 합리적으로 지급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을’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사내하청 노조가 공동으로 만든 올해 임단협 별도 요구안에는 ‘원하청 불공정거래해소’ 조항이 담겼다. 이들은 납품단가와 기성 조작 등을 통한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고 이를 위반하면 거래 취소 후 재조정할 것을 현대중공업에 요구했다.

노동자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이 차장은 “노동자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이 만들어져 출근 및 점심시간 선전전을 하고 있으며 노조도 결합해서 함께 진행하고 있다”며 “노조에서는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대금 정상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노동자에게 얘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내하도급사는 대금 산정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하도급사는 계약 맺은 작업에 필요한 비용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일단 작업을 하고 시공이 끝나면 현대중공업이 주는 돈을 그대로 받는다”며 “현대중공업이 품셈표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계약서만 봐서는 몇 명의 인력이 얼마나 일해야 하는 작업인지 산출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품셈표를 공개해 하도급사가 직접 견적을 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대중공업은 품셈표가 영업기밀에 해당한다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대금 후려치기 주장에 대해 “협력사와 계약서를 통해 도급계약을 맺었고 공정 진행률에 따라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6일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하청 노동자 임금체불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출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대규모 작업거부’…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