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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니면 승진?…사회복지시설 직장갑질 백태

교회 다니면 승진?…사회복지시설 직장갑질 백태
직장갑질119, 25일 ‘사회복지119’ 출범한다
[한겨레] 오연서 기자 | 등록 : 2019-04-24 16:00 | 수정 : 2019-04-24 17:02


▲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4월부터 1년 동안 사회복지시설의 갑질 신고 제보가 모두 123건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중 임금을 떼인 경우가 24건(19.5%)으로 가장 많았고, 폭언·괴롭힘이 23건(18.7%), 종교·후원 강요가 17건(13.8%)으로 뒤를 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1. ㄱ 씨가 일하는 기독교 법인 산하 사회복지기관의 승진 관행은 조금 특이하다. 이 기관의 관장과 국장 등은 모두 같은 교회 사람들인데, 경력이 적은 직원도 이 교회에 다니면 승진하거나 국외연수 혜택을 받는다. 교회 아침 예배의 모임 장을 몇 번 하더니 승진한 사람도 있었다. 최근에는 복지기관 직원들이 1박 2일 동안 연수를 가게 됐는데, 법인 직원들이 이사장에게 보낼 편지를 쓰라고 말했다. 연수하는 동안에도 이사장이 방문할 때마다 일어나서 손뼉을 치라고 강요했다. 새벽 6시에 전 직원을 추운 바닷가 모래밭에 집합시켜 예정에도 없던 운동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관장과 국장이 다니는 교회 저녁 예배에 전 직원을 강제 참석시켰다. 시간 외 수당이나 대체 휴무 지급은 없었다. 오히려 불참자의 명단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불참하게 되면 사유서를 내라고 하거나 근무 평정에 반영할 거라는 압박을 줬다. 최근 ㄱ 씨는 기관으로부터 바자회를 진행할 테니 바자회 티켓 10만원어치를 구매하라는 강요도 받았다. 기관은 강요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직원별로 얼마씩 샀는지 명단을 작성해 확인하겠다고 했다.

#2. 사회복지사 ㄴ 씨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일하는데도 장애인보다 농작물을 더 많이 돌본다. 법인 이사장은 자신이 키우는 배추·무·고추·마늘·파·양파 재배에 시설 직원들을 동원했다. 게다가 법인 이사장은 직원들이 피·땀으로 키운 농작물을 직원들에게 되팔기도 했다. 이 수익이 시설 수익으로 잡히는 것도 아니다. 농작물로 번 돈은 모두 이사장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간다.

시설 인력을 마음대로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이사장은 법인 차량도 개인차처럼 마음대로 쓴다. 이사장은 매주 금요일 법인 차량을 타고 문화센터에 간다. 이사장의 가족들도 이 차를 개인 업무에 사용한다. 이사장의 사택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시설의 일이다. 이사장은 시설 거주 장애인 한명에게 법인 후원금으로 용돈을 주면서 쓰레기 치우기를 시킨다. 시설 직원들은 이사장의 사택에 가서 청소하거나 시설 원장 자녀들이 사는 원룸 청소를 하기도 한다. 이 시설의 직원 가운데 1명은 지난 추석 명절 때 이사장 가족의 산소에 벌초하러 가기도 했다.

사회복지시설 기관장 등의 갑질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늘면서 시민사회단체 ‘직장갑질119’가 이에 대처하는 전문 온라인 모임을 출범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24일 사회복지시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갑질과 비리를 제보받고, 이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와 함께 25일 ‘사회복지119’(band.us/@sw119)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보육교사와 대학원생, 콜센터 노동자에 이어 8번째 온라인 모임이다. 사회복지119에서는 노동·법률 전문가들과 현직 사회복지사들이 법률 상담을 지원하고, 사회복지법인이나 시설의 갑질 및 비리 제보를 받아 근로기준법 위반 내용을 신고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직장갑질119는 이를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사회복지시설의 갑질 신고를 받았는데, 1년 동안 모두 123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임금을 떼인 경우가 24건(19.5%)으로 가장 많았고, 폭언·괴롭힘이 23건(18.7%), 종교·후원 강요가 17건(13.8%)으로 뒤를 이었다. 관련 없는 잡무에 시달리거나(15건) 성희롱을 당한(4건) 경우도 있었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제보 내용을 보면, 종교 행사 등에 직원들을 강제 동원한 사례가 빈번했다. 기독교 법인에서 설립한 복지관에서 일하는 ㄷ 씨는 매일 아침 8시마다 복지관의 아침 예배에 참여하는데, 이 자리에서 팀별로 돌아가면서 앞에 나와 찬송가를 부르고, 돌아가면서 대표 기도를 해야 한다. 아침 예배 참석률이 근무 평정에 반영되기 때문에 쉽게 빠질 수 없다. 이 복지관 직원들은 법인에서 설립한 교회 예배에 일요일마다 참석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1시간 거리인 교회에 가는데도 시간 외 수당 등 보상은 전혀 없다. ㄷ 씨처럼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주말에 복지박람회나 기관 홍보 행사 등에 참여해 연휴를 뺏기고도 연차나 연장근무 수당 요구는 ‘꿈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ㄹ 씨도 “요양원에서 강요하는 종교 행사에 참석하느라 사실상 연 130여 시간을 시간 외 노동시간으로 강요당하고 있다”고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특히 종교 관련 시설의 관리자들은 절대적인 지위를 행사하며 종교 행사 등에 직원들을 사실상 강제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설에선 직원들에게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지시하는 갑질을 하기도 했다. 한 시설에선 독거노인 생활 관리사를 근무하는 사무실 인근 무료급식소 운영 일에 동원했다. 시설은 일이 아니라 봉사라는 이유로 수당을 따로 챙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급식소 일을 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겁을 줬다.

후원금을 낸 액수에 따라 에이(A)부터 에프(F)까지 등급을 매겨 직원들에게 공개하는 시설도 있었다. 또 기관장의 생일이나 명절에 직원 개인 돈으로 선물을 주라고 강요하거나 경·조사비를 적게 냈다며 혼을 내는 기관장도 있었다. 한 사회복지시설의 소장은 병원에 입원한 한 달 동안 시설 직원에게 “내 간병인을 하라”며 병원에 출근시키기도 했다.

성희롱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15일 서울 종암경찰서가 여직원 2명을 성폭행한 혐의를 적발해 진각복지재단 사업부장 김 아무개(40) 씨를 검찰에 송치한 사건도 있었다. (▶관련 기사 : [단독] “진각종 최고지도자 아들에게 성추행당했다”) 복리후생비로 지급돼야 할 교통비와 식비를 기본급에 포함해 지급받는 요양보호사가 있는가 하면 법인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계약을 해지당하거나 시설 공사 기간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회복지사도 있다.

직장갑질119는 “사회복지시설이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데, 위탁시설의 불법이나 비리 발생 시 사회복지사들이 홀로 그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상황도 갑질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운영위원은 “사회복지시설도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노동부의 근로 감독 대상인데, 사실상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갑질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사회복지사 노조가 있긴 하지만 조합원이 230여명밖에 안 될 정도로 노조 조직률이 아주 낮고, 사회복지사 등 직원들이 괜히 문제를 제기했다가 한번 찍히면 다른 데 취업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정부가 직접 현장에 찾아가는 등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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