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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 처지 쏙 빼놓고, 노조 때리기 나선 보수언론

건설노동자 처지 쏙 빼놓고, 노조 때리기 나선 보수언론
[민중의소리] 김영욱 미래노동교육원 원장, ‘8일에 끝내는 노동조합특강’ 저자 | 발행 : 2019-06-02 16:53:59 | 수정 : 2019-06-02 16:53:59


조선일보가 5월 28일 보도를 통해 “전국 공사장은 지금 ‘勞·勞 전쟁터’”라며 노동조합 때리기에 나섰다. 기사에 조선일보는 ‘민노총’, ‘한노총’이란 정체불명의 약어를 써가며 강남구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의 일자리를 두고 싸우고 있다며, 건설업체의 인터뷰를 인용해 “힘없는 일반 건설 근로자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취업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데, 이는 공기업 취업 청탁 비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사설에서도 “근로자 채용은 기업의 권한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노조의 ‘권한’이다. 건설사가 협조하지 않으면 공사 현장에 드론을 띄우고 폭력을 휘두른다. 그로 인한 공기(工期) 지연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사와 재건축 아파트 입주민에게 돌아간다. 공사장 인근 주민들도 고통을 겪고 있지만 경찰은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노조를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건설현장에서 노조 간의 일자리 싸움, 노조의 건설업체 고용 압박, 집회로 인한 주민 피해, 이로 인한 공기 연장 등을 내세우며 노동조합을 성토하고 있지만 건설노동자 처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다.

▲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근로자법 개정과 주휴수당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김슬찬 인턴기자

조선일보는 번지수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원인 없이 결과 없다. 건설현장의 일자리 문제는 전문건설업체들이 이주노동자를 불법고용해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가 감소함으로 생긴 문제다.

그보다 먼저 팩트체크 해야 할 사항은 보도에 언급된 강남 개포동 건설현장의 문제는 ‘노노 대립’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단체협상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전문건설업체와 고용 관련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한국노총이 추가로 일자리를 요구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노-노 대립’이 아니라, 건설현장의 근본적인 일자리 대책과 관련 있다.

노조가 건설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불법하도급과 불법고용 근절이다. 우선 건설현장의 중층하도급 문제는 건설노동자의 삶을 옥죄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건설업에서 대부분의 수익은 원청업체와 발주처가 가져가고 현장에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들은 최저가 낙찰제로 인해 법정수익자체가 적다. 따라서 온갖 편법이 난무한다. 값싼 외국인 고용, 이른바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품셈을 허위로 올리고 실제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은 후려친다. 따라서 이들 전문건설업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값싼 이주노동자 고용이며 그것도 불법고용이다.

전국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선 중층적 다단계하도급 구조를 타고 내려가면서 공사비가 삭감되고 있다. 하청 건설사들이 원청 건설사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금액으로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노조는 또한 최근 국내, 국외 건축비 자료가 제시됐는데, 한국이 일본의 44% 비용으로 공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기준 주택·오피스텔 건설비를 조사한 결과, 한국 건설비는 163만원/㎡이고 일본은 369만원/㎡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하도급 문제로 인해 저임금 불법이주노동자의 고용이 만성화되고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노조는 “철근콘크리드 현장에 50만명이 일하고 있다면 이중 30만명은 국내, 20만명이 이주노동자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신문은 서울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골조공정 하루 투입 인원이 300명이라고 하면 국내 인력은 50~60명,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근로자로 이들 중 80%는 불법 체류자로 보면 된다”며 “작업할 때 명확한 의사소통이 어려워 작업 능률이 떨어지고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게 사실”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즉, 서울 아파트 공사현장에는 이주노동자가 80%정도이고 이중 불법 체류자도 80%라는 이야기다.

이주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건설현장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일반 근로자 취업 비자인 E-9, 또는 방문취업동포 H-2를 받아야 한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E-9 취업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1만2000명(2300명씩 5년), H-2를 받은 외국인은 5만5000명으로 합법적 취업자는 6만7000명에 불과하다. 건설업계가 추정하는 전체 외국인은 22만명에서 32만명 사이로, 나머지는 건설이 아닌 다른 업종으로 취업비자를 받았거나 체류 기간(최대 4년 10개월)이 끝나도 여전히 국내에 머물고 있는데 건설기업이 이들을 저임금으로 불법고용하고 있다.

▲ 5대 건설사 2018년도 실적. ⓒ뉴스1

위 그림은 지난해 건설업계 상위 5사 영업이익이다. 지난해 건설경기가 안좋다고 했지만 삼성건설과 GS건설이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이러한 건설사의 이익 뒤에는 공사현장에서 떨어지고 저임금에 허덕이는 건설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 적정한 임금을 지키기 위한 요구는 너무도 당연하다. 오히려 정부당국과 건설기업은 이주노동자까지 저임금과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낙엽처럼 떨어지는 건설노동자,
원청 대기업과 보수언론은 무엇을 했나

건설현장의 산업재해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거의 무감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소설가 김훈씨가 오죽하면 비탄한 심정으로 건설노동자의 산업재해를 걱정 했을까?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떨어져서 부서지고 으깨진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고 노동을 관리하는 정부관리가 와서 손수건으로 눈물 찍어내는 시늉을 하고 돌아가면, 그다음 날 노동자들은 또 떨어진다. 사흘에 두 명꼴로 매일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중략)

왜 바로잡지 못하는가.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 고공에서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진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거나, 추경을 편성하거나, 행정명령을 동원하거나 간에,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층에서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늘 돈 없고 힘없고 줄 없는 사람들이었다.“ 한겨레신문 [왜냐면] 아, 목숨이 낙엽처럼/김훈

그렇다. 중층하도급으로 인한 저임금 시스템은 건설노동자를 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게 한다. 지난 4월 10일, 경기도 수원의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고 김태규씨는 수원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5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용역업체를 통해 일용직으로 현장에 나갔던 김태규씨는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가 사고를 당했다. 지난해 산재사망은 971건이다. 그중 건설노동자가 절반을 차지한다. 건설노동자는 하루에 1.5명이상이 죽음의 행렬로 늘어선다.

▲ 민중당 김종훈 의원과 故 김태규 씨 유가족, 청년 건설노동자들이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故 김태규 산재사망 진상규명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5.20 ⓒ정의철 기자

조선일보는 건설현장의 불법도급과 불법 고용문제를 말하지 않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이른바 친노동정책에 대한 때리기 차원의 보도다.

이러한 죽음과 저임금, 실업이 공존하는 건설현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필요하다. 재벌기업과 대형 건설사들은 헌법 33조 1항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틈만 나면 그 힘을 약화시키고 국민의 정서로부터 괴리시키려고 한다.

정말, 소설가 김훈씨의 말대로,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인 고위층 자신의 자녀들이 건설현장에서 떨어졌다면 아직까지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는 건설현장이 유지 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챔피언스리그 토트넘과 리버풀의 결승전이 있었다. 사람들은 손흥민에 열광한다. 축구에는 공정한 룰이 핵심이다. 이번 챔피언스리그에서 성패를 갈랐던 것이 VR판정이라는 말도 있다.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한국의 직장생활인 중에서 자신의 직장이 공정한 룰로 유지되고 있다는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수많은 직장 중 건설현장은 시쳇말로 ‘막장’이란 말처럼 공정한 룰은 고사하고 불법이 판친다. 하도급 업체의 사장조차 이름만 사장이지 건설 대기업의 갑질에 신음한다. 나아가 이주노동자의 불법고용과 이를 방치하는 정부당국으로 인해 현장의 상황은 탄광의 막장이나 다를 바 없다.

건설노동조합의 산업안전보건 활동, 불법고용 근절, 성실시공 노력은 그나마 정부나 건설기업이 방치한 막장을 바꿀 수 있는 씨앗이다. 고착화된 신분제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건설현장에 대해 보수언론은 구태스러운 ‘노조 때리기’가 아니라 오히려 불법도급과 불법고용의 문제를 바로잡는데 나서야 한다.


출처  [김영욱의 노동경제] 건설노동자 처지 쏙 빼놓고, 노조 때리기 나선 보수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