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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사람들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 발행 : 2019-07-20 08:42:23 | 수정 : 2019-07-20 10:41:20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사건을 다룬 당시 언론 보도들이다. 당시 국정원을 통해 언론이 보도한 이석기 의원의 발언과 통합진보당 당원이 기자고 있던 폭탄제조법 등은 이후 재판에서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다. ⓒ방송화면 등 캡쳐

2013년 8월 28일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주요 당직자 10명의 자택과 의원실 등 18곳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3명을 체포했다. 국정원이 내민 영장엔 ‘내란음모’라는 죄목이 적혀있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면서 전국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던 그때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나 만날 수 있었던 ‘내란음모’가 부활하면서 모든 언론과 방송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도배됐다. 국정원이 내세우는 혐의 내용은 언론을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내란음모죄’ 관련 기사는 신문과 방송을 뒤덮었다. 언론은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 등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사실 확인은 생략한 채 국정원이 불러주는 대로 이석기 의원과 관련자들을 ‘내란범’으로 몰아붙였다.


언론과 방송 그리고,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침묵과 동조 속에
‘내란음모’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도는 더욱 자극적으로 변했다.

조선일보는 8월 30일 ‘지하조직 비밀회의 녹취록 국정원 입수’를 전했다. 이른바 지하조직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녹취록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단독보도’라며 녹취록 요약본을 실은 데 이어 전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녹취록의 내용은 이후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에도 다시 등장했다. 이후 언론에선 ‘사제폭탄’, ‘기간시설 파괴’ 등 자극적 언어가 넘쳤다. 국정원이 흘린 녹취록에 따라 언론의 보도가 춤을 췄다. 이런 광풍엔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들도 함께했다.

9월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찬성 258, 반대 14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민주당은 물론 한때 같은 당에 있었던 정의당마저 침묵하며 동조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직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사건은 일주일 만에 언론과 방송 그리고,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침묵과 동조 속에 ‘내란음모’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 통합진보당 김미희, 김재연 의원이 2013년 8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음모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언론의 허위사실보도에 대해 강력대처 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양지웅 기자

궁지에 몰리던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이 ‘내란음모’를 조작하며 어떻게 일순간에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함께 진보 운동을 했던 이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은 왜 침묵한 것일까? 사회적인 낙인과 함께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당한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과연 무엇이 문제였고, 왜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일까?

지난 2014년 연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중국 옛 진나라 시절 실권을 장악한 환관 조고가 황제와 조정 신하들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 우긴 뒤, 여기에 토를 단 사람들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세월호 참사, 정윤회와 십상시 국정개입 논란 등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속이는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사자성어’다. 말을 가리켜 사슴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비판이고, 또 사슴임을 알면서도 무서움에 침묵한 이들을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순 감독은 지난 2013년에도 이런 ‘지록위마’의 상황이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터트리며
사슴(鹿)을 말(馬)이라고 주장하자
함께 싸웠던 진보진영조차도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피해버렸다

국정원이 여론재판을 시작했고, 언론과 방송은 마치 배심원이라도 된 것처럼 여론재판을 주도했다.

경순 감독은 “과거 독재정권에선 인혁당 사건 등을 폭력을 앞세워 조작하고, 이를 통해 공포정치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론이 그런 폭력을 대신해준다. 군대를 동원해 총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언론이 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 광장에서 경쟁하듯 나온 보도의 0.1% 정도만이라도 노력했다면 그런 보도는 안 나왔을 것이다. 이석기 의원을 애국가를 안 부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고립시킨 뒤 내란사건으로 확산시켰다. 내란 선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강연해달라고 해서 초청을 받아서 강연한 것뿐인데 앞에 서 있었다고 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언론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신상이 털렸다. 불과 1주일 만에 그렇게 됐다. 사건이 알려지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던 순간에 이 사건은 끝났다. 재판은 시작도 안 했지만, 판결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3년 9월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병윤 원내대표, 김선동, 김미희 의원과 함께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이 의원 체포동의안은 찬성 258, 반대 14로 가결됐다. ⓒ양지웅 기자

이런 과정 속엔 수많은 침묵과 동조가 있었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터트리며 사슴(鹿)을 말(馬)이라고 주장하자 함께 싸웠던 진보진영조차도 사슴이 말이라는 주장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피해버렸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2013년 당시 한겨레신문에서 일했던 허재현 기자는 이른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2012년 총선 직후 통합진보당은 내부 경선과 관련한 논란으로 인해 당내 분란을 겪었다.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해 당시 당내 다수를 이루고 있던 세력이 부정선거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오며 검찰수사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당이 갈라지는 결과를 맞게 됐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당시 논란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엔 ‘부정’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허 기자는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두고 ‘해도 너무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선거를 통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정당을 없애는 것이 맞냐는 지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통합진보당의 목소리를 취재하지는 않았다. 기자들도 다른 사건과 비교해 솔직히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논란’에 따른 부정적인 이미지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극적으로 통합진보당의 목소리를 취재하지는 않았다.
기자들도 다른 사건과 비교해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논란’에 따른
부정적인 이미지가 영향을 미친 것”

‘이카로스의 감옥’의 저자인 문영심 작가도 “2012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종북낙인 찍기는 진보진영 내부에서 시작됐고, 진보당 내부 경선 사태를 악용한 박근혜 정권에 의해 종북몰이가 본격화됐다. 제도권 보수야당은 수수방관했으며, 보기 드물게도 수구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종북몰이에 가세했다. 그 결과 대중과 여론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통합진보당은 종북마녀사냥과 해산이라는 화형식을 당해야 했고, 그 불쏘시개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활용됐다”고 당시를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문 작가조차도 이석기 내란 사건 관련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는 “요즘 세상에 사제폭탄을 만들고 총기를 구입해서 폭동을 일으켜?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유류저장고를 습격해?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라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국정원과 언론에 의해 찍힌 낙인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이후 재판과정에선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흘러나온 내용 대부분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통합진보당에 호전적 낙인을 찍었던 근거가 된 녹취록은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조작하는 등 수백 곳 넘게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내란음모를 실행한 조직으로 지목받은 이른바 ‘RO’는 재판과정에서 실체가 없음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2015년 1월 22일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지만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로 판결했다. 선동 즉 부추기는 언행이 유죄가 되려면, 그로 인해 유발되는 ‘구체적 행위’가 전제되어야 함에도 구체적 행위 없이 ‘말’ 한마디로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인 두달 전인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이미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고, 이러한 진보당의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판결과
이를 기초로 이뤄진 통합진보당 해산의 중심에
박근혜 정권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보수세력에 의해 여전히 소환되는 두 사건

사법부가 이번 사건을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증거도 드러났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청와대와 협상할 사안이 담긴 문건에는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등이 언급돼 있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4년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을 ‘2대 과제’로 삼고 법조계는 물론 국정 전체를 움직인 사실도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드러났다.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판결과 이를 기초로 이뤄진 통합진보당 해산의 중심에 박근혜 정권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찍힌 커다란 낙인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 통합진보당이 강제로 해산 된 지 4년이 되던 지난 2018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과 당원들 시민들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과 의원직 박탈은 박근혜 정권이 헌법재판소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한 최악의 사법농단 사건으로 통합진보당 명예회복과 이석기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토착왜구당 소속 의원들은 서면질의를 통해 이석기 전 의원 내란 관련 대법원 판결과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지난 5일 윤 후보자는 서면답변을 통해 “원칙적으로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고,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견해’에 대해선 “헌재의 (해산)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두 사건과 관련한 많은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이 두 가지 질문을 토착왜구당과 보수세력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렇게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자주 소환한다. 지난해 11월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건 당시 이석기 전 의원을 거론한 토착왜구당과 보수언론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에서 윤상직 토착왜구당 의원은 KT 아현지사 화재에 대해 “RO(혁명조직)가 혜화전화국을 공격하자고 했었던 것과 오버랩 된다”며 “통신시설에 대한 습격, 공격 등의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매체들은 “‘혜화전화국 습격 준비하라’ 다시 주목받는 이석기 발언”(중앙일보), “‘KT 혜화전화국 습격’ 이석기 내란 선동 다시 주목”(조선일보) 등 자극적인 제목을 뽑으며 위기감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미 재판과정에서 RO라는 조직은 실체가 없음이 드러났고, 전화국 폭파 등의 발언을 이석기 전 의원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가짜뉴스’까지 유포하며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내란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훈장처럼 자랑하는
토착왜구당 황교활 대표와 정점식 의원

아울러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은 공격의 수단인 동시에 ‘훈장’이다. 황교활 토착왜구당 대표는 올해 1월 22일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영남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여투쟁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사람이 누구냐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1월 22일 세종시를 방문해선 “통합진보당 해산의 주역”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황교활 대표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자신의 추진력과 투쟁력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토착왜구당의 공천을 받아 경남 통영·고성에서 당선된 정점식 의원도 자신의 최대 치적 가운데 하나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꼽고 있다.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인 정점식 의원은 2014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재직 중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정부 측 대리인을 맡은 바 있다.

정 의원은 2017년 6월 검찰을 떠나면서 이임사를 통해 “거칠고 힘들더라도 주어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편하게 처리하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올바른 결정을 찾으며 숱한 밤을 지새웠다”면서 “그중에서도 송두율 교수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당시 정 의원은 자신의 공안경력을 내세우며 “지난 70여 년 공안부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역사적 소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국가와 국민이 있는 한, 공안의 기능은 변함없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 2014년 11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심판 최종변론을 위해 들어가고 있는 황교활 당시 법무부 장관(가운데)과 정점식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티에프 팀장(왼쪽). 두 사람은 현재 각각 토착왜구당 대표와 소속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토착왜구당과 보수세력들이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자신들의 위기 탈출을 위한 ‘무기’로, 또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훈장’으로,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찍힌 ‘종북’이라는 커다란 낙인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영심 작가는 “사람들은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부정적 시각이 여전히 많은 건 언론의 책임이 크다. 잘못 보도된 것에 대해 아무런 정정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이들은 처음 보도 나온 그대로 믿고 있다. 심지어 지금도 보수언론 등을 통해 이미 법원에 의해 이석기 전 의원이 발언이 아니라고 밝혀진 발언들과 RO라는 법원조차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조직이 언급된다”고 꼬집었다.


침묵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 기자들

여전히 진실에 눈을 감은 건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들은 여전히 진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고, 그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찍힌 낙인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출범했지만, 이석기 전 의원은 아직도 감옥에 갇혀있고, 침묵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침묵의 상황을 바꾸고,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고, 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 ‘셜록프레스’의 이명선 기자는 지난해 10월 ‘통진당 해산 결정은 틀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다른 사람이 돌을 던질 때, 같이 돌을 드는 건 쉽다. 하지만 남들이 다 손가락질할 때, 홀로 용기 내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일은 어렵다. 통진당은 그렇게 ‘죽일놈’이 됐다. 2013년 8월, 당시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내란음모 관련 기사가 나오자마자 진보와 보수는 하나가 되어 ‘통진당 죽이기’에 나섰다”면서 통합진보당을 판결의 부당성을 고발했다. 이 기자는 2013년 당시 채널A 소속 기자로 활동했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는 지난 4월 ‘누가 이석기를 악마로 만들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정원발 의혹을 기정사실로 해 보도한 당시 언론을 비판했다.

2013년 당시 ‘한겨레’ 기자로 활동했던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도 최근 이석기 전 의원 내란사건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 허 기자는 리포액트 홈페이지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국정원 협력자 이성윤을 도웁시다’라는 글을 올리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진실 밝히기에 뛰어들었다.

이성윤은 민주노동당 후보로 선거에 나선 적이 있는 통합진보당 소속 정치인이었지만, 2013년 당시 국정원 협력자로 등장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증언에 나섰던 인물이다. 국정원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꾸준하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진 그는 그날 이후 자취를 감췄다. 허 기자는 그에게 공개적으로 나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허재현 기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국정원 협력자
이성윤을 도웁시다”

허 기자는 “예전에 문영심 작가가 ‘이카로스의 감옥’을 발간한 뒤 토크 콘서트를 할 때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에 ‘이 사건은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 꼭 진실을 찾고, 밝혀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계속 고민했지만, 돌파구가 안 보였다. 국정원이 일으킨 이 사건을 당시의 수사관이 양심선언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른바 국정원 협력자였던 이성윤 씨는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차원으로 글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허 기자는 “저는 수년 전 서울시공무원간첩증거조작 사건의 실체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변호사들과 함께 밝혀낸 적 있다. 그때 결정적 증거와 증언은 국정원의 부탁을 받고 증거 조작을 실행한 김원하 씨의 양심고백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김원하 씨는 비록 증거를 조작하는 나쁜 짓을 저지른 범죄자이지만 결국에는 저를 만나 조작 사실을 털어놓았다”면서 “저는 그를 추궁 비난하기보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역사적 피해자의 범주에서 이성윤 씨를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경순 감독
“수많은 이유를 듣는다. 그것이 ‘빌미론’이든,
그들의 구석기 사고를 운운하는 변명이든
여전히 회피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은 언제나 하나였다.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문영심 작가도 지난 3년 동안 전국을 돌며 북콘서트를 여는 등 이번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경순 감독과 함께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제목의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함께 2년째 제작하고 있는 것도 사슴이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침묵했던 모두에게 이제는 제발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거부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문영심 작가는 “이 전 의원을 제외한 모든 내란 음모 사건 관련자들이 만기 출소했다. 이 전 의원마저 결국 계속 갇혀있다 만기 출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며 “여론이 움직여야 하는데 진보언론조차 소극적이어서 안타깝다. 대부분 사람이 이 전 의원을 비롯해 이들이 법적으로 처벌받을 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심이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감옥에 있어도 무감각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 유독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문영심 작가가 2016년 12월 21일 오후 인천 구월동에서 이카로스의 감옥 북콘서트를 갖고 있다. ⓒ양지웅 기자

▲ 영화 지록위마를 제작 중인 경순 감독. ⓒ양지웅 기자

지난 2년여 동안 다큐멘터리 ‘지록위마’를 찍으며 언론인과 진보진영의 여러 인사, 그리고 내란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왔던 경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찍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못된 정보에 휘둘려 왔는지 확실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현실도 만날 수 있었다. 한번 침묵하면 다음부터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말하기 힘들어지고,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당시에도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사실과 진실들이 진보진영 내부의 얽힌 감정과 입장 차이로 인해 묻혀 있었다.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수많은 이유를 듣는다. 그것이 ‘빌미론’이든, 그들의 구석기 사고를 운운하는 변명이든 여전히 회피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팩트는, 진실은 언제나 하나였다.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가을에 ‘지록위마’를 완성해 공개할 예정이라는 경순 감독은 “이 영화가 진실을 찾고 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내란사건 재심 변호인단 단장 최병모 변호사
“이번 재심 청구는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사법농단,
사법부가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사법제도를 수단으로 사용한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바로 잡을 기회다”

진실을 밝혀야 하는 책임은 법원에도 있다. 내란음모 등 혐의로 징역 9년을 확정받은 이석기 전 의원 측은 지난 6월 5일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 전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법원행정처 문건 등을 통해 드러났다. 그러나 사법농단 수사에서 관련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전 의원 측이 재심청구를 하게 된 이유다.

재심 전망과 관련해 ‘사법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심청구 변호인단’ 단장인 최병모 변호사는 “재심을 법원이 받아들였으면 하고, 법리적으로만 놓고 보면 충분히 재심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아직 법원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 사법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조작사건 재심청구변호인단이 6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 앞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9.06.05. ⓒ뉴시스

최 변호사는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해 여론이 아직 비우호적이지 않냐”는 질문에 “여론이 비우호적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다. 이건 여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국가보안법과 70년 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냉전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어떻게 여론이 우호적일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먼저 달라져야 할 것은 여론이 아니라, 체제이고, 법치이고, 법원이고, 정치라는 것이다.

재심 제도는 유죄 확정판결이 난 사건 중 법에서 규정한 예외 사유에 해당할 경우 다시 재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형사소송법은 재심 이유로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등을 꼽고 있다. 그런데 법원에선 자신들이 이미 판단한 사건에 대해 재심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런 법원의 분위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다른 일반적인 재심 사건과는 다르다는 것에 있다. 최 변호사는 “본래 재심제도는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사가 양심에 따라서 제대로 재판을 한다는 걸 전제로 이뤄진 제도다. 그런 전제 속에 판사도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봐서 문제가 있으면 다시 심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비롯해 공안사건은 판사들이 처음부터 죄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유죄를 준 것이다. 제대로 된 법률가라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 내린 판결이다. 이번 재심 청구는 단순한 재심청구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사법농단, 사법부가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사법제도를 수단으로 사용한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을 기회”라고 강조했다.

▲ 13일 오전 10시 대전교도소 정문 앞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주최로 이석기 의원 석방 촉구 도보행진 발대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법원은 재심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번엔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감옥에 갇힌 이석기 전 의원은 풀려날 수 있을까?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진실을 알리고 호소하기 위해 많은 시민이 함께하고 있다.

지난 13일 내란음모 사건으로 징역 9년 형을 확정받고 7년째 수형생활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수감 중인 대전교도소 정문 앞에 모인 시민들은 “함께 걷자 함께 열자, 이석기 전 의원 석방하라”고 외쳤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촉구 도보행진 발대식 기자회견에 함께한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광화문까지 걸으며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하루 약 30km씩 총 224km를 걸어온 이들은 오는 20일 서울 광화문에 도착한다. 20일 행진을 마친 뒤에는 광화문에서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를 열 예정이다.


출처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