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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이석기 내란조작 사건에 우리는 왜 침묵했나?

이석기 내란조작 사건에 우리는 왜 침묵했나?
[리뷰] ‘애국자 게임2- 지록위마’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 발행 : 2019-09-24 00:00:04 | 수정 : 2019-09-24 17:09:06


▲ 이석기 내란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다룬 ‘애국자 게임2- 지록위마’ ⓒ스틸컷

지난 2013년 8월 28일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주요 당직자 10명의 자택과 의원실 등 18곳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3명을 체포했다. 국정원이 내민 영장엔 ‘내란음모’라는 낯선 죄목이 적혀있었다. 이후 모든 언론과 방송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도배됐다. 국정원이 내세우는 혐의 내용은 언론을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내란음모죄’ 관련 기사는 신문과 방송을 뒤덮었다. 언론은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 등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사실 확인은 생략한 채 국정원이 불러주는 대로 이석기 의원과 관련자들을 ‘내란범’으로 몰아붙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도는 더욱 자극적으로 변했다. 조선일보는 8월 30일 ‘지하조직 비밀회의 녹취록 국정원 입수’를 전했다. 이른바 지하조직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녹취록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단독보도’라며 녹취록 요약본을 실은 데 이어 전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녹취록의 내용은 이후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에도 다시 등장했다. 이후 언론에선 ‘사제폭탄’, ‘기간시설 파괴’ 등 자극적 언어가 넘쳤다. 국정원이 흘린 녹취록에 따라 언론의 보도가 춤을 췄다. 결국 9월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찬성 258, 반대 14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민주당은 물론 한때 같은 당에 있었던 정의당마저 침묵하며 동조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건은 일주일 만에 언론과 방송 그리고,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침묵과 동조 속에 ‘내란음모’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짙은 낙인은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연일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촛불이 타오르던 시기였고,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을 부활시키는 도구로 활용됐다.

6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이 찍은 낙인은 아직도 선명하다. 궁지에 몰린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이 ‘내란음모’를 조작하며 어떻게 일순간에 부활할 수 있었을까? 함께 진보 운동을 했던 이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은 왜 침묵한 것일까? 사회적인 낙인과 함께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당한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과연 무엇이 문제였고, 왜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일까? 경순 감독은 지난 2년여 동안 이런 질문들을 던져왔고, 그 질문들을 담아 ‘애국자 게임2- 지록위마’가 만들어졌고, 2019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됐다.

▲ 이석기 내란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다룬 ‘애국자 게임2- 지록위마’ ⓒ스틸컷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중국 옛 진나라 시절 실권을 장악한 환관 조고가 황제와 조정 신하들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 우긴 뒤, 여기에 토를 단 사람들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지록위마’는 말을 가리켜 사슴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비판이자 동시에 사슴임을 알면서도 무서움에 침묵한 이들을 향한 비판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사건의 실체가 말이 아닌 사슴이라고 애써 강조하지 않는다. 사슴이 어찌하여 말이 되었고, 사슴을 말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왜 침묵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과연 이 사건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이번 사건을 기억하는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의 인터뷰, 그리고 당시 언론 보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언론인, 변호사, 인권활동가, 구속자, 통합진보당 전 의원, 구속자 가족들은 6년 전 내란음모 사건이 언론을 통해 도배되던 당시 상황과 진실을 알리기 힘들었던 당시의 분위기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광장에서조차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웠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내란음모 조작은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논란’으로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이라고 이 영화는 강조한다.

영화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시에 왜 침묵했던 것일까? 촛불광장에서조차 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맘껏 외치지 못했고, 연대에 주저한 것일까? 그렇게 행동한 데에는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고, 상황이 있었다. 누군가는 빌미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돌출행동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일탈이라고도 했다. 사슴을 말이라고 했지만, 말이 아닌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연대하지 못한 우리들은 이유를 찾아야 했고, 말로 내몰린 사슴에게서 빌미와 일탈이라는 낙인의 이유를 찾았던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이유를 찾고, 빌미를 찾는 우리를 향해 감독은 계속 질문을 던지며 그런 판단을 돌아보게 한다. 때론 그런 질문과 대답 사이의 어색한 침묵까지 이 영화는 모두 담아내고 있다. 어색한 침묵 사이에 머물며 관객들은 나를 향한 질문으로 그 질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경순 감독은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연령, 성별, 빈부의 차이와 정치적인 입장을 불문하고 일거에 국민을 통합해 온 ‘애국심’과 민족을 향해 질문을 던진 영화 ‘애국자 게임’(2001년), 우리 사회의 허울 좋은 ‘가족’과 ‘가족주의’의 속내를 파헤치는 ‘쇼킹 페밀리’(2006년) 등 만만찮은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영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 영화 제목이 ‘애국자 게임2’인 것도 18년 전 ‘애국자 게임’을 통해 던졌던 질문의 연장선에 이 영화가 서 있음을 보여준다.

경순 감독은 영화를 마친 뒤 관객과 만남에서 “애국자 게임을 만들던 당시는 대통령도 사상 검증하는 시기였다. 지금은 우리 모두를 사상 검증하고 자기 검열하는 사회가 됐다. 자기검열이 일상화됐다. 사실 우리 사회가 심각한 지정에 있다”며 “무서운 현상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왜 이렇게 왔나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라면서 ‘애국자 게임2’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영화는 수많은 질문과 고민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지만,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선 아직도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아직 극장 개봉을 언제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오는 10월과 11월 극장 개봉을 위해 클라우드 모금을 진행하는 등 올해 안에 극장 개봉을 위해 많은 노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를 향해 던져진 질문과 고민이 많은 관객을 만나며 세상을 바꾸는 화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리뷰]이석기 내란조작 사건에 우리는 왜 침묵했나? ‘애국자 게임2- 지록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