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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분산”...‘사법행정위’ 설치법 발의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분산”...‘사법행정위’ 설치법 발의
‘사법농단 진원지’ 법원행정처도 폐지, 비법관 다수 ‘사법행정위’에 권한
[민중의소리] 김백겸 기자 | 발행 : 2020-01-03 18:24:34 | 수정 : 2020-01-03 18:24:34


▲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농단’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대법원장의 과도한 사법행정 권한과 인사권을 비(非)법관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통해 분산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와 함께 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 등 13명이 공동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사법농단’ 사태에서 실무적 역할을 담당했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현재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행정 권한 대부분을 ‘사법행정위원회’로 분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대법원장 주도의 법관인사위원회가 해오던 인사 업무도 사법행정위원회가 하도록 했다.

앞서 지난 2017년 12월 김명수 대법원장도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신설해 사법행정 기능을 나눈다는 내용의 ‘사법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법률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또한 사법행정 의사결정 과정에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구인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지난해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일부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개혁안을 두고 대법원장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분산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며 “셀프개혁의 한계”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은 “현재 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사법개혁방안의 내용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개혁방안이 필요하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 김명수 대법원장(자료사진) ⓒ김슬찬 기자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은 ‘사법행정위’에 사법행정 관련 총괄 심의·의결기구로서 권한을 부여했다. 구체적으로는 대법원장의 법원 장악 수단인 법원 인사를 비롯해 예산, 회계, 대법원 규칙 등 대법원장이 결정하던 대부분의 권한을 심의·의결한다.

반면 대법원장은 대법원 관련 사법행정사무에 대해서만 지시·관리할 수 있도록 권한이 축소됐다. 대법원장 1인에게 부여된 권한을 위원회에 이양해 사법행정에 대한 결정을 협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만든 셈이다.

사법행정위의 구성은 위원장인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관위원 4명, 비법관위원 6명 등 총 11명으로, 비법관위원이 다수인 구성이다. 의결과정 중 가부의견이 동수일 경우에는 위원장인 대법원장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비법관위원은 6명은 국회에서 선출되며 상임위원 3명은 비법관위원만 맡을 수 있다. 사법행정위원들의 임기는 3년이며, 비법관위원에 한해 한차례 연임할 수 있다.

비법관위원의 자격은 재판제도·행정·연구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험을 가진 경력자로 한정했다. 다만 퇴직 2년 이내인 법관 출신은 제외했다.

법관위원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추천된 4명을 대법원장이 임명하게 된다. 법관위원이라 하더라도 대법원장의 영향력에서 어느 정도 독립시키기 위한 방안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원 교수는 “현재는 법원행정처의 심의관 등이 출세할 수 있는 ‘로열로드’의 포인트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법행정위에서 법관위원은 대법원장이 발탁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서 선출되며, 상임위원도 될 수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 대법원(자료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실제 행정을 집행할 기구로는 사법행정위 산하에 사무처를 설치하도록 했다. 사무처장이나 차장은 법관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으면 임명될 수 없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대한 근거 규정도 이번 개정안에 포함됐다. 그동안은 대법원 규칙으로 운영돼 법적인 지위에 대한 한계가 지적돼 왔다.

법관 인사제도의 핵심문제로 지적되어왔던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폐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지방법원은 경우에 따라 부장판사를 둘 수 있도록 했다.

현행 헌법과 법률상 법관은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로만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지방법원 배석판사 → 지방법원 단독판사 → 고등법원 배석판사 → 지방법원 부장판사 → 고등법원 부장판사 → 법원장 → 대법관 →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서열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중 ‘고법 부장’은 차관급에 해당하는 법원 내 유일한 승진 자리다. 극소수만 고법 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인사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일선 법관들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일선 재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판사가 맡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한 교수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법원행정처를 없애고 사법행정위를 만들어서 민주적인 거버넌스 체제를 만든다는 게 핵심”이라면서 “또 다른 효과는 법원행정처를 없애면서 사법행정이 간소화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경수사권조정안 등 검찰개혁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를 통과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20대 국회 임기 말에 발의한 것은 사법개혁이 사회적인 의제가 돼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오는 4월 총선에서는 공론화돼서 21대 국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분산”...‘사법행정위’ 설치법 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