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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900인분 만드는 급식전쟁, 조리원들은 10분만에 밥을 삼켰다

900인분 만드는 급식전쟁, 조리원들은 10분만에 밥을 삼켰다
[2020 노동자의 밥상] ②학교 급식조리원의 식판 밥상
900명의 점심을 차려낸 5명…“오전은 전쟁, 오후는 죽음이야”
식어버린 짬밥을 후루룩 마시고…다시 설거지 무덤 앞으로

[한겨레] 김민제 기자 | 등록 : 2020-01-02 04:59 | 수정 : 2020-01-06 17:13


▲ 학교 급식조리원이 기름이 끓고 있는 솥 앞에서 감자를 튀기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장갑 두 장을 벗자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이 드러났다. 세 시간여 아침 일을 하는 동안 손과 발, 몸이 모두 물에 불어터진 기분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손목은 시큰거린다. 식판에 놓인 밥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에도 900인분의 설거지와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어두지 않으면 그 압도적인 양과 압축적인 시간을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습기로 가득 찬 5평(16㎡)짜리 탈의실 겸 휴게실에서, ‘언니들’을 따라 고봉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쿰쿰한 짬밥 냄새가 소독약 냄새와 뒤섞여 혼미했다.

급식조리원들은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자매처럼 호흡을 맞추지 않고선 ‘여자들의 노가다’라고 하는 거친 급식 노동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라고, 기자는 생각했다. 보건소에서 발급해준 보건증을 들고 지난 12월 13일 급식조리원 대체 인력으로 서울 ㄱ 초등학교 조리실을 찾았을 때, 대부분 40~50대인 언니들은 26살 ‘막내’를 맞으며 경악했다. “학교 조리실은 다른 일 하다 하다 가장 마지막에 오는 곳이야.” 진경(46·이하 모두 가명) 언니가 유독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언니들 5명의 하루는 오로지 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침 8시 30분 조리실에 출근해 초등학생 900명의 점심 밥상을 차리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그러면 가족의 저녁 밥상을 차려야 한다. 그사이에 자신의 끼니는 그저 ‘삼킨다’. 언니들은 급식 일에 견주면 집밥은 ‘소꿉장난’이라고 했다. 조리실은 그야말로 속도 전쟁터다. 7시간 30분 동안 5~6명이 900인분의 급식을 마련하고 내일을 위한 설거지·청소까지 마감하려면, 밥을 거르고 일만 해도 빠듯하다. “오전은 전쟁이고 오후는 죽음이야.” 진경 언니의 표현이다.

장비를 갖춰 작업복을 차려입고 이날 아침 9시께 조리실에 들어섰을 때 쌓여 있는 무, 숙주, 배추, 소고기 등 식자재를 보고 입이 벌어졌다. 시장에서도 그렇게 식자재가 쌓여 있는 광경은 본 기억이, 기자는 없었다. 무엇보다 언니들의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채소 껍질을 벗기는 ‘필러’로 무 껍질을 깎아내는데, 서툴다 보니 하나 깎는 데 5분이나 걸렸다. 눈앞에서 20초 만에 무 하나를 다 깎은 진경 언니는, 혀를 차며 무는 그만두고 그것보다 쉬운 느타리버섯 찢는 일을 하라고 했다. 육개장에 들어갈 느타리버섯 하나를 세로로 가늘게 찢어 삼등분하는 일인데, 그마저 900인분을 찢으려니 30분이나 걸렸다. 은색 스테인리스 대야에 산처럼 쌓인 버섯은 아무리 찢어내도 줄지 않았다. “속도를 더 내야지.” 버섯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즈음 진경 언니가 다가와 다그쳤다. 귤 900여 개를 씻고 개수대 청소를 할 때도 언니는 다가와서 타박했다. “일을 반도 못 했네.”

어지간한 주방장들과도 견줄 수 있는 숙련된 조리원 언니들이지만, 쌓여 있는 일을 앞에 두고 마음이 급해지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메뉴인 연어 스테이크와 멸치 아몬드 볶음, 육개장을 담당할 조리원을 나눴지만, 배식 마감이 닥쳐오자 ‘네 일 내 일’을 가릴 수 없었다. 언니들은 무를 깎다가 일손이 달리면 자리를 옮겨 배추를 썬 뒤, 곧바로 멸치와 아몬드를 볶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해치울 뿐이었다.

▲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급식에 나온 밥과 육개장, 연어스테이크와 멸치아몬드볶음, 김치, 귤이 담겨 있다. 김민제 기자


15분 안에 밥을 후루룩 마신다

밥 먹는 일도 언니들에겐 속도전이다. 언니들의 끼니때는 따로 정해진 시간이랄 게 없다. 낮 12시 30분께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식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언니들이 하나둘 식사를 시작한다. 길게는 30여 분의 식사 겸 휴식 시간이 있다지만, 그 시간을 다 쓰는 언니는 없다. 그날 해야 할 일을 앞장서서 하는 ‘당번’ 언니가 10~15분 만에 밥을 먹고 일어서면, 다른 언니들도 자기들만 쉬기 미안하다며 조리실로 나와 쭈뼛쭈뼛 일을 시작한다. 학생들의 급식 반찬이 모자라면 배식 담당자가 호출하기에, 밥 먹는 도중에도 마음 편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다. 목장갑 위에 고무장갑, 고무 앞치마와 위생모, 토시와 고무장화를 벗었다가 밥을 먹고 다시 착용한 뒤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오전 내내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하느라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언니들은 그래도, 잠시나마 무거운 장비를 벗을 수 있게 되자 속이 시원한 듯했다.

비좁은 휴게실에 밥상을 펼치고 여섯 명이 무릎과 무릎을 포개어 앉았다. 위생모를 벗자 땀에 짓눌린 언니들의 머리칼은 엉겨 붙은 채 아무렇게나 눌려 있었다. 밥상에 올라온 음식은 학생과 교사가 남긴 밥과 국, 잔반이다. 식은 국과 엉겨 붙은 밥, 기름이 뭉친 연어 스테이크, 눅눅해진 멸치 아몬드 볶음. 오전 내내 짬밥 냄새에 질린 데다 식어 빠진 음식을 보니 영 입맛이 돌지 않는다. 허나 허기는 식욕에 비례하지 않았다. 격하게 몸 쓰는 일을 한 뒤라서인지 밥은 꿀떡꿀떡 넘어갔다. 날마다 격하게 몸을 쓰는 데 익숙해진 언니들은 제맛을 잃은 찬거리들을 해치우는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었다. 진경 언니는 밥에 멸치볶음을 크게 떠넣더니 비비기 시작했다. 경미 언니는 육개장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듯 들이켰다. 그렇게 언니들은 고봉밥을 10여 분 만에 해치웠다.

▲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김민제 기자

끼니를 때우느라 바쁜 와중에도 언니들은 사는 얘기를 몇 마디씩 주고받았다. 대개 궁박한 처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달엔 일주일이 비네.” 진경 언니의 푸념에 밥을 밀어 넣던 모두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급식조리원들은 방학이면 돈을 벌 수 없다. “일주일을 어디서 메꾸지?”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일주일만 나와서 일해달라’는 곳이 있을 리 없다.

한 언니가 소은 언니를 쳐다보며 “소은 언니, 나도 줄 좀 서자”라고 말했다. 소은 언니는 방학이면 웨딩홀 조리실에서 일한다. 소은 언니는 미안한 듯 웃으며 “웨딩홀 조리 일도 경력직을 선호해”라고 답했다. 그러자 수다스러운 진경 언니는 화제를 바꿔 조선소에서 ‘노가다’를 시작한 형부 이야기를 꺼낸다. 다른 언니들이 말을 받아 “조선소는 한물갔다”며 혀를 찼다. “아들이 정비직에 취직했는데 엄마 마음으론 사무직이 못돼 속상하다”는 언니도 있었다. 언니들 사는 얘기는 들을수록 갑갑해, 방금 삼킨 밥이 목구멍 어딘가에 걸린 것만 같았다.

▲ 쌓여 있는 반찬통과 조리 도구 등을 설거지하는 급식조리원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주의할 수 없는 ‘요통주의’, ‘끼임주의’, ‘화상주의’

오후 조리실은 설거지 무덤이다. 낮 12시 45분께, 배식을 마친 것도 아닌데 조리실은 식판과 수저 등 설거짓거리로 가득했다.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눌어붙은 반찬 찌꺼기를 짧은 시간 안에 떼어내기 위한 초벌 설거지가 필수다. 뜨거운 물에 식기를 불린 뒤 수세미로 문질러 물에 헹궜다. 세제 냄새와 잔반 냄새가 엉켜 조리실이 매캐했다.

출입문 옆에 붙은 온습도계는 온도 10도, 습도 32%를 가리켰지만, 체감 습도는 80%를 넘는 듯했다. 조리실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방수가 되지 않는 휴대전화는 수증기 탓에 고장 날 수 있다고 언니들이 경고했다. 금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올라와 흘러내리면서 온몸이 찐득해졌다. 몸에는 수시로 기름과 물이 튀었다. 허리도, 손목도 떨어져 나갈 듯했다. “설거지에 파묻혀 죽겠네.” 끝없이 식판을 받아내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기력이 바닥나자 수시로 산업재해, 안전사고의 위협을 느꼈다. 조리실 벽 곳곳에는 ‘요통주의’, ‘미끄럼주의’, ‘화상주의’, ‘끼임주의’, ‘산업재해 예방’ 안내판이 붙어 있다. 문제는 그걸 피할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요통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리원은 대개 일어서서 종일 허리를 숙인 채 일한다. 식판을 들어 올리고 몸을 숙여 재료를 다듬으면 오후엔 필연적으로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이 밀려온다. ‘끼임’ 사고도 피할 수 없다. 식판과 식판 사이에, 식기와 개수대 사이에 여러 차례 손가락이 끼였다.

‘미끄럼’ 역시 주의할 수 없다. 설거지할 때 조리실 바닥은 물과 세제로 범벅된다. 곳곳엔 식기와 조리 도구가 널려 있다. 뒷정리할 때는 바닥에 양동이로 물을 끼얹으며 음식물 찌꺼기를 씻어낸다. 무거운 고무장화가 끼얹은 물에 치이면서 휘청인 적이 여러 번이다. 언니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고 얼굴에 물을 튀기며 “미안”, “죄송해요”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청소할 때는 ‘약품’으로 바닥을 닦고 물을 뿌리는데, 진경 언니가 “절대 얼굴에 묻으면 안 되는 독한 약”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급하게 일하다 보니 얼굴과 목, 눈과 옷 속으로 약품이 튀지 않을 수가 없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그렇게 약품이 묻어도 곧 무감해졌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화상이었다. 조리실 곳곳에선 대형 솥에 기름과 물이 펄펄 끓는다. 뜨거운 설거지물은 고무장갑 안을 파고들어 목장갑까지 적셨다. 김이 나는 솥 안쪽으로 몸을 숙여 불린 식기를 건져낼 때는 끓는 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실제로 2014년 3월,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조리원으로 일한 김 아무개(56) 씨가 설거지하려고 대야에 받아놓은 뜨거운 물 위로 넘어져 두 달 뒤 세상을 등진 일도 있다.

▲ 학교 급식조리실에 설거짓거리로 쌓인 숟가락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급식조리실은 병 안고 떠나는 곳”

여기 와서 일하면 병들어. 급식조리실은 병 안고 떠나는 곳이야.” 일을 시작하기 전 진경 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말렸다. 다른 언니는 더 단호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나는 반대야. 젊은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야. 너네 엄마가 알면 화낸다. 오늘만 해보고 다신 오지 마.” 다그치던 언니들이 귤을 까서 내게 먹였다.

언니들은 몸담고 있으면서 유독 나를 말리는 이유를, 언니들과 밥상을 마주한 뒤에야, 일을 마친 뒤에야 알게 됐다. ‘나는 힘들어도 괜찮지만 너는 그러지 마.’ 그것은 아마 언니들이 가족에게, 학생들에게 차려주는 밥상에 담은 그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식어 빠진 찬밥을 삼키고도 가족의 밥은 온돌 아랫목에 묻어두던 엄마의 그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출처  900인분 만드는 급식전쟁, 조리원들은 10분만에 밥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