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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하늘감옥서 200여일…땅에선 ‘연대’의 생명줄이 매일 올라왔다

하늘감옥서 200여일…땅에선 ‘연대’의 생명줄이 매일 올라왔다
[2020 노동자의 밥상] ⑧고공농성 해고노동자
삼성과 외롭게 싸우던 김용희 씨 기아차에 맞서던 박미희 씨 만나
지난해 김 씨가 철탑 위에 오르자 박 씨가 밧줄로 도시락 올려보내
“건강 지킬 수 있게 해달라 기도” 수녀회·교회서 정성껏 반찬 조리
쇠약해진 김 씨, 소화 기능 떨어져 “오체투지 노동자들 보며 눈물”

[한겨레] 강재구 기자 | 등록 : 2020-01-24 05:00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지난해 12월 19일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서울 강남구 강남역 네거리 CCTV 철탑 위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김 씨는 이날 지상에서 올려준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밥 반 공기와 생선조림 반 조각, 국물 몇 숟가락을 뜨고는 점심을 다시 내려보냈다. 200일 넘게 반 평 정도 되는 철탑 위 공간에서 고공농성을 한 김 씨는 만성 소화불량에 걸렸다. 김명진 기자

허공에 매달린 가방이 바람에 출렁였다. 고개를 한껏 젖혀야 시선이 가닿는 철탑 끝자락에서 팔 하나가 쭉 뻗어 나오더니 흰 밧줄을 잡아당겼다. 밧줄에 매달린 가방은 솟아올랐다가 멈추길 반복하며 수십 차례 요동친 끝에야 비로소 25m 높이 철탑에 당도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역 네거리 폐회로티브이(CCTV) 철탑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1)의 193번째 점심 도시락이다. 밥이 닿자 하늘의 김용희가 지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밧줄은 김용희의 ‘생명줄’이다. 삼성항공에 노조를 만들려다 1995년 해고된 김용희는 24년 6개월 동안 거리에서, 광장에서, 이건희 회장의 집 앞에서, 삼성 사옥 앞에서 복직을 외쳤다. 삼성은 그 외침에 답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10일 새벽 5시, 이번에는 “죽을 각오”로 삼성 사옥 앞 철탑에 올랐다. 다리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하늘 감옥’에서 시작한 고독한 투쟁이지만, 지름 0.5㎝가 채 되지 않는 밧줄로 지상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끈 아래 끝에 김용희에게 지상의 밥과 응원을 전하는 기아자동차 해고노동자 박미희(60)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19일 점심 도시락. 김명진 기자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19일 점심 밥상. 김명진 기자


지상과 김용희를 잇는, ‘연대’라는 생명줄

부산 기아차 대리점에서 일하다 내부고발을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박미희는 현대·기아자동차 양재 본사 앞에서 투쟁하던 2017년, 삼성과 싸우는 김용희를 만났다. 둘은 금세 동지가 되었다. 박미희가 집회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김용희가 발 벗고 나섰다. 김용희가 철탑에 오른 뒤 박미희가 줄곧 철탑 아래를 지켜온 까닭이다.

하루 두 차례 박미희는 밧줄을 당겨 김용희에게 점심과 저녁 식사를 올려보낸다. 휴대전화 보조배터리, 휴지, 침낭 등 필요한 물건을 챙기는 것도 박미희의 몫이다. 마트에라도 가면 그는 늘 김용희에게 전화해 필요한 걸 묻는다. 삼성의 집요한 괴롭힘으로 김용희의 부인을 비롯한 가족에게도 트라우마가 남았다. ‘동지’들의 돌봄이 없다면 김용희는 저 척박한 고공에서 지난 200여 일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김용희의 동지는 박미희만이 아니다. 숱한 노동자들과 목회자, 수도자들이 지상에서 그를 위해 기도한다. 이들이 김용희에게 날마다 올려보내는 밥도 이들의 ‘기도’다. 김용희의 점심은 천주교 수녀회와 교회에서 번갈아 준비한다. “똑같은 재료라도 시간을 더 들여서 조리해요. 우리는 그걸 하면서 기도하거든요. 이 음식이 김용희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음식이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일부러 시간이 더 걸리는 요리를 해요.” 이날 김용희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 인보성체수도회의 박베네딕다 수녀가 말했다. 베네딕다 수녀는 전날 2시간, 이날 2시간을 들여 메추리알을 조리고 굴전을 부쳤다.

메추리알 장조림, 삼치조림, 어묵볶음, 굴전, 시래기 된장국, 김치와 밥. 7개의 반찬 통에 나눠 담은 김용희의 도시락이다. 별다른 것 없는 찬이지만, 살펴보면 차린 이의 배려와 고민이 담겼다. 건강을 위해 단백질을 챙기지만, 비좁은 철탑에서 움직일 수 없는 김용희를 위해 고기보다 소화하기 쉬운 해산물을 올렸다. 메추리알 장조림엔 곤약을 꼬아 넣어 장식했다.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한 밥이 아니라, 땅 위의 사람들이 ‘우리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는 밥이다.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지난해 12월 19일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서울 강남구 강남역 네거리 CCTV 철탑 위에서 점심 밥상을 차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25m 상공에 차려진 차갑고 낮은 밥상

그렇게 정성 어린 도시락은 하늘을 오르는 찰나 온기를 잃고 만다. 최저기온이 영하 4.5도까지 떨어진 이 날, 25m 상공엔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김용희가 뚜껑을 열자 보온병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던 김도 삭풍에 이내 자취를 감췄다. 식어버린 굴전과 어묵볶음, 삼치조림에 젓가락을 뻗어보지만, 반찬은 좀체 줄지 않았다.

이날 <한겨레>가 크레인을 타고 철탑 위 올라갔을 때, ‘하늘 사람’ 김용희는 지상에서 올려준 도시락을 천천히 꺼내고 있었다. 슬로우모션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김용희의 시계는 지상보다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오랜 기간 추위에 노출되면서 움직임이 둔해진 탓이다. 날마다 같은 자세로 옆으로 누워 자야 할 만큼 비좁은 공간 탓에 그의 오른 팔다리에는 마비 증세도 찾아왔다. 반 평 크기의 철탑 공간은 어른 한 명이 앉기에도 좁다. 지름 1.5m 원형 철판 위로 1m가량 높이의 펜스가 둘리어 있다. 빈 곳엔 옷과 침낭, 핫팩, 휴지, 책 등 200일 넘게 지상에 발 딛지 못한 이의 살림살이가 가득했다. 철판 중심엔 지름 30㎝ 남짓한 전봇대까지 야속하게 튀어나왔다. 도넛 모양을 한 김용희의 ‘방’은 김용희의 몸도 뒤틀어놓았다.

180㎝의 장신인 김용희는 이곳에서 몸을 뻗을 수 없다.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잠든다. “답답하면 뒤척거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 너무 힘들죠. 그땐 정말 뛰쳐나가고 싶어요.” 비닐과 살림살이 사이로 몸을 아무렇게나 구겨 넣은 채, 김용희는 수저를 들었다. 차갑고 낮은 철판 바닥이 그의 밥상이다.

30분 가까이 식사를 이어갔으나, 김용희는 3분의 2 이상 남겼다. “소화가 잘 안 되기도 하고 움직임이 제한돼 많이 먹지 않아요.” 도시락 뚜껑을 닫으며 그가 말했다. 지난해 지상에서 7일, 고공에서 48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뒤 김용희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위가 상해 소화 기능이 떨어졌다. 일반 의약품을 먹을 수 없어 소화제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도시락을 매단 밧줄을 끌어 올릴 힘도 나지 않아, 지상의 사람들이 도르래를 설치해 밧줄을 당기게 했다.

그만치 철탑 위는 비좁은 독방 감옥처럼 참담하다. 강남역 네거리의 매연이 모두 김용희의 철탑으로 올라온 듯 구석구석 시커먼 구정물이 고였다. 눈비와 추위를 막아낼 지붕도 바람벽도 없이 200여 일을 버텼다. 제멋대로 포개지고 구겨진 비닐만이 김용희의 바람막이 혹은 우비가 되어줬다. 새벽 3~4시면 스포츠카 달리는 소리에 매번 소스라쳐 잠이 깬다. 김용희의 목소리에선 갈라진 쇳소리가 났다. 20년 넘게 거리에서 ‘명예로운 복직’을 외쳤어도, 철탑 위에서 계절을 두 번 보냈어도, 이 극한의 공간에 ‘적응’이란 단어가 내려앉을 자리는 없다.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지난해 12월 19일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서울 강남구 강남역 네거리 CCTV 철탑 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바스라질듯 약해진 몸으로 외치는 구호

그렇게 곧 쓰러질 듯한 몸을 하고도, 김용희는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지난해 노조 와해 혐의로 삼성 임원들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삼성이 사과문도 냈지만, 그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새벽 4시에 깨어 아침 라디오를 듣고, 아침 7시면 출근 투쟁을 준비한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맞춰 하루 세 차례, 두 시간씩 복직 투쟁을 벌인다. 투쟁가를 틀고 구호를 외치며 삼성의 악행을 세상에 호소한다. 삼성은 그가 노조를 만들려 할 때 온갖 회유와 협박, 모욕을 일삼았다.

이제 철탑 위 김용희의 싸움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약한 노동자를 위한 싸움이다. 기아차와 싸우는 박미희를 위한 투쟁이고, 한국마사회와 싸우는 문중원 기수 유족들을 위한 투쟁이다. 눈이 내리던 지난 19일 문중원 기수의 유족과 동료들이 강남역 땅바닥을 오체투지로 기어 지나갔다. 그 장면을 보던 하늘의 김용희는 기어코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는 이제 죽을 각오 따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노동자들이 땅바닥에 온몸을 던지는 걸 보며 많이 울었어요. 전에는 내 죽음을 통해서라도 삼성의 패악을 알리고 세상을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새해가 오니까 건강하게 잘 버텨서 삼성의 사죄를 받고, 나처럼 피해 보는 노동자가 나오지 않도록 끈질기게 싸우자는 생각뿐이에요.”

다가오는 설에 김용희의 가족은 ‘동지’들을 모아 떡국을 대접할 계획이다. “당신 챙기느라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동지들이 있으면 내가 음식을 준비하겠다”며 김용희의 부인이 제안한 일이다. “설 떡국은 십몇 년 만에 먹어보겠네.” 지난 20일 고공농성 225일째를 맞은 김용희가 수화기 너머에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삼성과 싸우기 시작한 뒤, 김용희는 명절을 제대로 맞은 기억이 없다.

역설적이게도, 25m 철탑 위에서 홀로 맞는 김용희의 명절은 앞선 기억들과 다를 것이다. 십수 년 만에 철탑에서 먹게 될 설날 떡국은 겨울바람에 차갑게 불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떡국을 삼키는 김용희의 마음은 새해 더욱 밝을 것이다. 밧줄을 당기는 박미희의 의지는 더욱 굳고, 밥을 짓는 수도자들의 기도는 더욱 간절할 것이다.


출처  하늘감옥서 200여일…땅에선 ‘연대’의 생명줄이 매일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