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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신약 독성’ 숨기고 부당합병 강행 의혹

KT&G ‘신약 독성’ 숨기고 부당합병 강행 의혹
자회사 KLS·영진약품…반대 임원들 해임하고 밀어붙여
‘상장 못하면 투자금 보전 이면약정’ 드러날까 무리한 추진

[경향신문]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 입력 : 2020.02.26 06:00 | 수정 : 2020.02.26 08:21


▲ 영국의 세계적인 임상시험기관 코벤스에서 2016년 초 KLS에 통보한 KL1333에 대한 동물실험결과 통보서. KL1333 경우 개에게 2주간 반복투여시 일반독성이 검출되고 개와 쥐 구분 없이 염색체 이상에 양성반응이 발생한 것으로 나와 있다.

KT&G가 2016년 자회사인 ‘KT&G 생명과학’(KLS)과 영진약품의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KLS가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한 신약물질에서 유전독성이 검출돼 당시 영진약품 관계자들이 합병에 강하게 반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앞서 KT&G가 2011년 외부투자 자금 180억 원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2015년까지 KLS 상장에 실패할 경우 투자원금을 보전해주는 이면약정을 체결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따라 KT&G가 KLS 상장실패에 따른 책임 모면과 불법 약정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약물질에서 독성성분이 확인됐음에도 KLS의 기업가치를 무리하게 부풀린 후 영진약품과 합병시키는 방법으로 우회상장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경향신문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2016년 초 영진약품 사장과 연구개발 담당 전무 등 임직원들은 KLS에서 당뇨병치료제로 개발한 KL1333이 신약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보고 KLS와 합병에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영진약품에 근무했던 3명의 임직원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KLS에서 개발한 KL1333 경우 세계적인 임상시험 기관 코벤스의 동물실험 결과 고농도로 투입할 경우 염색체 이상이 생기는 등 독성 성분이 확인돼 사실상 폐기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KT&G 측은 영진약품 임원진들의 이런 의견을 무시하고 KLS에서 개발한 물질이 300~400억 원대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며 2016년 4월 영진약품과 KLS의 합병결의를 밀어붙였다.

당시 영진약품 임직원 중 한 명은 “KL1333이 가치가 없다는 사실은 웬만한 직원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며“하지만 합병에 반대하는 사장과 전무가 전격 해임되는 사태를 본 뒤로 아무도 무서워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경향신문 취재 결과 당시 영진약품 유 모 사장과 연구개발팀 신모 전무는 2016년 1월 초 동물실험 결과에서 유전독성이 확인되자 ‘KL1333은 더이상 임상시험을 진행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다 KT&G로부터 해임됐다. 유 사장 후임으로 KT&G 본사 출신 박 모 씨가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영진약품 내부에서는 더이상 합병을 반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처럼 영진약품 측의 반대의견을 잠재운 후 KT&G 측은 회계법인을 통해 KLS의 기업가치를 부풀린 후 금융감독원에 합병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합병신고서 기재 내용만 믿고 합병을 승인할 경우 영진약품 소액주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며 3차례에 걸쳐 신고서를 반려했다. KL1333 가치가 의심스러운 만큼 KLS 기업가치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술평가가 필요하다며 정정요청을 한 것이다.

하지만 KT&G 측은 2016년 8월 금감원으로부터 3번째로 정정요청이 내려지자 객관적인 기술평가를 통해 KL1333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노력 대신 금감원 승인이 필요 없는 사모방식으로 합병을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대형 로펌인 김&장을 통해 법률검토서까지 받아내 영진약품 측을 압박했다.

당시 영진약품 관계자는 “금감원 승인이 안 떨어져 KLS와 합병이 무산됐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 후쯤 KT&G 본사에서 김&장 법률검토서를 제시하며 공모를 사모방식으로 변경해 합병을 추진하자고 나오는 바람에 굉장히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결국 2016년 11월 KT&G 의도대로 영진약품 이사회는 KLS의 기업가치를 최종적으로 204억 원으로 평가하고 KLS와 합병을 결의했다. 당시 영진약품의 주가는 최초 합병결의가 이뤄진 2016년 4월에 비해 3배 가까이 상승한 상태였으나 영진약품 이사회는 폭등한 영진약품 주가를 반영하여 합병비율을 재산정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영진약품 주주들은 재산상 손실을 보았지만 KLS 주주들은 폭리를 취하게 됐다.

이래저래 영진약품은 KLS와 불공정한 합병에 휘말리면서 주주들에게 상당한 재산상 손실을 끼치게 된 셈이다. KT&G 측은 이에 대해 “합병은 영진약품과 KLS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KT&G는 사후승인만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영진약품의 한 전직 임원은 “2016년 초부터 KT&G 본사 직원들이 주도하는 태스크포스(TF)에서 합병추진, 공모에서 사모로 합병방식의 전환, 합병비율 등 모든 것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회사에서 대표이사의 연임을 의식해 영진약품 주주들의 희생을 대가로 KLS와 합병을 밀어붙인다는 걸 알았지만 지시를 거역하기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KT&G가 대주주의 지위를 이용해 영진약품에 불리한 합병을 추진한 배경에는 KT&G와 외부기관 투자자 간에 체결한 이면약정이 자리 잡고 있다. KT&G는 2011년 바이오벤처기업 머젠스를 인수해 KLS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2015년 말까지 기업공개 실패 시 사실상 투자원금으로 주식을 되사주는 조건으로 180억 규모의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발행했다.

KT&G가 투자자들과 체결한 계약서를 보면 KLS의 기업공개 실패로 주식이 휴짓조각이 되더라도 투자자들은 보유 중인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한 후 주식매입을 요구만 하면 원금을 보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했다. 주식매입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KT&G가 KLS를 대신해 매입 청구한 주식 수에 매입가격을 곱한 금액을 위약벌로 지급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KT&G는 2015년 말까지 KLS를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에 상장시키지 못할 경우 투자원금을 되돌려주기로 하고 180억의 외부투자금을 끌어들이면서 지급보증을 선 것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문제의 주주 간 계약서를 검토한 회계전문가들은 “약정내용대로라면 KLS 감사보고서에 투자금으로 기재된 180억 원은 실제로는 기업공개에 실패할 경우 KT&G에서 갚아줘야 할 차입금이나 다름없고 재무제표에도 부채로 기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KT&G 입장에서는 2016년 당시 영진약품과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에 실패할 경우 투자실패 책임뿐 아니라 180억 원의 우발부채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은 데 대해 형사처벌 책임까지 져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셈이다.

KT&G 측은 이에 대해 “KLS는 벤처기업이라 투자기관 입장에서는 원금 보전을 위한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게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회계전문가들은 “상장실패 시 우선주를 투자원금으로 되사주는 이면 약정을 했다면 그 자체로 형사 처벌감”이라며“KT&G는 불법 약정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영진약품과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출처  [단독]KT&G ‘신약 독성’ 숨기고 부당합병 강행 의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