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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밀약

한일협정 체결 5개월 전 '독도밀약' 있었다 한일협정 체결 5개월 전 '독도밀약' 있었다 정일권-고노 이치로 비밀협약 서명 1965년 1월12일 박정희 재가, 일본측 용산 미군기지에서 본국 전화 보고 [중앙일보] 김상진 월간중앙기자 | 입력 2007.03.19 09:32 | 수정 2007.03.19 12:21 ▲ 당시 요미우리신문 서울 특파원으로 독도밀약을 위한 정일권-고노의 연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시마모토 겐로(80) 지난 42년간 미궁 속에 묻혔던 한국과 일본의 ‘독도밀약’의 실체가 드러났다. 월간중앙은 19일 발매에 들어간 창간 39주년 기념 4월호에서 “한일협정 체결 5개월 전인 1965년 1월 11일 당시 일본의 건설장관 고노 이치로의 특명을 받아 서울을 방문한 우노 소스케 자민당 의원이 성북동 소재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자택에서.. 더보기
메이지 정부도 “독도는 조선 땅” 메이지 정부도 “독도는 조선 땅” 독도가 조선 땅이었다는 증거는 일본에 더 다양하고 확실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일본 고문헌뿐 아니라 메이지 정부도 독도를 조선 영토라고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시사IN 258호] 장정일 (소설가) | 기사입력시간 2012.08.31 08:57:45 8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겨온 일본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이번 일의 유탄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하나는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3·4위 결정전에서 박종우 선수가 펼친 ‘독도 세리머니’다. 올림픽에서 금지된 출전 선수의 ‘정치적 메시지’ 표명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기는 힘들지만, 행여 선수의 메달이 박탈되기라도 한다면, ‘바람’을 넣은 대통령도 책임을 .. 더보기
‘고지도에 독도는 우리 땅’ 국제재판선 힘 못쓴다 ‘고지도에 독도는 우리 땅’ 국제재판선 힘 못쓴다 [토요판] 역사적 권원은 중요한 문제 아닐수도… 한국이 반세기 동안 실효지배했지만…일본도 꾸준히 이의제기 [한겨레] 길윤형 기자 | 등록 : 2012.08.17 15:19 | 수정 : 2012.08.17 17:22 ▲ 독도 지난 10일 이명박의 독도 방문과 뒤이은 일왕 관련 언급으로 한-일 관계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은 1962년 이후 50년 만에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 조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실제 재판이 시작된다면 어떤 쟁점들이 다뤄지게 될까? 1965년 한일협정의 독도밀약 정일권 총리-고노 자민당 부총재 “해결하지 않은 것으로 해결” 한국의 실효지배 암묵적 인정 최근 엠비 독.. 더보기
박정희 정권은 왜 독도지킴이의 손을 부러뜨렸나 박정희 정권은 왜 독도지킴이의 손을 부러뜨렸나 [곽병찬 칼럼] 독도 밀약, 이제는 말해야 한다 [한겨레] 곽병찬 논설위원 | 등록 : 2012.08.15 20:17 | 수정 : 2012.08.15 21:35 ▲ 곽병찬 논설위원 군사독재 정권이나 보수정권이 가장 거론을 기피했던 문제는 희한하게도 독도였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때면 일쑤 들고나와, 반일감정을 자극해 국면을 전환시키곤 했지만,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무관심이었다. 이걸 모르고, 정치적 퍼포먼스에 말렸다가 선의의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 대장이다. 역사적으로 독도를 지킨 건 국가가 아니라 민간인이었다. 조선조 울릉도와 독도에서 왜구를 내쫓은 건 민간인 안용복이었다. 해방 후 독도를 지킨 건 예비역 특.. 더보기
8월 16일자 만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