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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오사카산 쥐새끼

“MB 시대는 ‘선진화 원년’ 아니라 ‘87년 체제’의 말기”

“MB 시대는 ‘선진화 원년’ 아니라 ‘87년 체제’의 말기”
[한반도평화 경남회의 현장] 평화-개혁의 결합 ‘2013년 체제’란?
기사입력 2011-09-25 오후 3:41:34


한반도평화포럼이 지역 순회 토론회의 일환으로 개최한 '2011년 한반도 평화 경남회의 : 2013년 한반도 평화와 경남의 선택'이 지난 22일 창원에서 열렸다. 행사에서는 포럼의 공동이사장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대북 포용정책의 역사와 향후 과제를 설명했다.

남북관계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정부와 민간 영역에서 북한과의 화해 및 협력을 이끌어왔던 두 '대가'의 설명은 알기 쉬우면서도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400여 명의 청중 역시 이들의 입담과 명쾌한 설명에 웃다가 박수를 보냈다. 축사를 한 김두관 경남도지사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발언을 경청했다.

창원MBC 홀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도 발표자로 나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과제에 대해 토론했다.

임 전 장관은 냉전 시대 종식 이후 정부가 추진했던 포용정책의 역사를 풀어냈고, 이종석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모순과 한계를 날카롭게 집었다. 백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차기 정권에서는 국내 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의 선순환을 실현해 '87년 체제'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문 전 대표는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와 한반도의 평화가 분리된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날 회의의 주요 발언을 재구성한 것이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

▲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대북 포용정책이 시작된 건 냉전이 끝난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다. 노태우 정부는 40여 년간 진행됐던 '자유진영 대 공산진영'이라는 대립 관계의 종식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출범했다. 당시 정부는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민중의 고조된 열망을 토대로 획기적으로 다른 정책을 제시했다.

그것이 1988년 7월 7일 나온 대통령 7.7 특별선언이다. 이는 대공산권 문호 개방, 북한과 관계 개선, 그리고 지금까지 북한을 적으로 상대했지만 앞으로는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상대해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시 대통령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런 선언을 했다면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만한 내용이었다.

7.7 선언에 따른 정책을 북방정책이라 부르며, 학술 용어로는 포용정책이라고 한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는 화해협력정책, 또는 햇볕정책이라 불렸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평화번영정책이라고 했다. 모두 연속선상에 놓인 포용정책이다.

포용정책의 역사적인 기여도를 보면 우선 노태우 정부 때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이뤄냈다. 3년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탈냉전 시기를 맞은 남북관계 발전 방안을 논의했고 이때 채택한 게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다.

기본합의서에서 납북은 국제적으로는 각각 주권국이지만 남북한 사이의 관계는 주권국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정하고 화해하는데 동의했다. 그러기 위해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방면의 교류협력을 약속했고, 서로 전쟁을 벌이지 말자고 했다. 군비도 감축하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나가기로 했다. 탈냉전 시기에 남북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이다. 아마 지금 남북이 어떤 합의서를 만들어도 이런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선언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햇볕정책을 통해 역사상 처음 정상회담이 열리고 6.15 공동선언이 채택됐다. 남북 기본합의서의 내용을 실천에 옮기자는 합의였다. 실천을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져야한다는 합의였다.

통일은 갑자기 될 수 없고 수십 년은 걸릴 것이기 때문에, 그 전에 통일된 상태과 비슷한 상황부터 만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이를 사실상의 통일 상황이라고 한다. 나누고 돕우며 남북의 고통을 해소할 방안을 강구하는게 통일과 비슷한 게 아니겠나.

그래서 중점적으로 시작한 실천 사항이 먼저 길을 뚫은 것이다. 길이 있어야 사람과 물자가 오고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산가족 한을 풀어주자는 것이었다. 셋째,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을 시작해 차후 백두산, 평양 등으로 관광사업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네 번째로, 남북이 통일에 이르기 위해서는 경제공동체를 건설해야 하는데 시범사업으로 개성공단을 하자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고 접촉·교류하는 것이었다.

휴전 이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40년 동안 남북을 오간 인원은 3,000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노무현 정부 말까지 44만 명이 남북을 오고갔다. 금강산 관광 인원은 190만 명이었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고 합의한 게 6.15 선언이었다.

이 선언에 이어 노무현 정부는 평화공영정책을 추진해 2차 정상회담을 통해 10.4 공동선언을 만들었다. 이 선언은 6.15 선언의 내용을 확대해 앞으로 40개의 사업을 함께 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이 선언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충돌의 바다였던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바꿔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노태우 정부부터 시작된 포용정책의 산물이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만든 합의였다. 그렇게 남북관계가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3개의 합의서를 토대로 보완·발전시키며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통일의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보면 포용정책은 북한을 인정하고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평화와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자는 정책이었다. 전쟁을 하고 싶지 않으면 이 방법밖에 없다. 혹자는 이를 두고 '퍼주기'다 '유화정책'이다 하는데, 그렇지 않다. 유화정책은 약자의 정책이지만 포용정책은 강자의 정책이다.

유화정책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체임벌린 영국 수상이 히틀러에게 체코슬로바키아를 내주고 전쟁하지 말자는 뮌헨조약을 맺었다가 히틀러가 이를 파기하고 전쟁을 일으켜 비웃음을 산 것을 말한다. 하지만 포용정책은 우리가 북한에 땅을 내준 게 아니다. 반대로 북한이 우리에게 개성과 금강산이라는 땅을 내줬다.

앞으로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북정책의 방향은, 포용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포용정책을 버리고 북한이 붕괴된다는 전제 하에 흡수통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붕괴해야 하니까, 돕거나 화해 협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적대적 대결정책으로밖에 갈 수 없다.

우리가 올바른 정책을 쓰지 않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나빠진다. 과거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했던 것 같이 북한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변할 수 있다고 보고, 평화통일을 목표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이를 국민들이 이해하고 정부에 요구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한반도평화포럼
과거 정부의 장관으로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제로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결례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건, 현 정부에 들어와서 지난 10년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2개의 합의(선언)는 법과 같이 지켜야하는데, 이 정부는 계승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과거 정부를 탓한다. 연평도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과거 정부를 탓하지 않았나.

한 신문에서 천안함 사태 때 '북한의 어뢰에 햇볕정책이 침몰됐다'고 했다. 엽기적인 발상이었고 기가 막혔다. 포용정책은 2008년 2월 25일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침몰시켰다. 그래놓고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청와대 고위직 인사가 나서 과거 정부를 비난하고 나서니. 현직 장관과 과거 장관이 누군인지 헷갈릴 정도다.

현 정부는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나왔다. 객관적인 결과만 말하면, 이로 인해 물적 피해가 엄청났다. 김대중 정부 때 서해교전과 같은 불의의 사고도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이 서로 합의해 이후 5년 간 교전에 따른 부상자나 민간인 피해는 한 번도 없었다.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대청해전부터 연평도 포격 사태까지 보면 비교가 되지 않나.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했을 때 과거 정부라면 장관 몇 명은 물러났을 텐데 이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더 암울해져 상황은 심각하게 악화됐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상식이 부재한 정책이다. 합리성, 현실성, 평화통일에 대한 미래 비전이 없고 국민을 무시한다. 있는 것이라곤 정략과 주관주의뿐이다.

이명박의 공약 '비핵.개방.3000'의 요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보 문제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도 재래식 군사력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핵 문제와 군사적 긴장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게 지난 정부의 목표였다. 하지만 이 정부는 아니라고 한다.

반대로 천안함 사태가 터지니까, 그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없으면 북핵 문제 해결도 필요 없다고 했다. 남북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 문제도 해결 안된다고 거꾸로 간 것이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은 북핵 문제가 심각하지만 군사적 대결 문제도 그만큼 중요하니 두 문제를 따로 놓고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우선순위를 바꿔가며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천안함 문제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에 따라 북한이 정말 공격한 것인지, 한미가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는 곳에 공격을 할 능력이 있는지, 한미 양국의 군사 정보력이 그렇게 약한지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음에도 정부는 북한 소행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만을 강요했다.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친북과 반북으로 갈라놓았다. 그러더니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심판당했다. 비합리성에 대한 결과다.

정부는 북한이 압박당하면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중국과 북한이 돌아가는 상황을 생각하지 않았다. 국제관계에 좋고 나쁜 건 필요 없다. 북한이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한 것은 중국 입장에서 국가 이익이다. 정부가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천암함 이후 대북 5.24 조치로 남북교류를 끊어 남한 쪽 피해액만 1조 원이 발생했다. 개성공단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장사가 될 것이라고 북한을 설득해 시작한 것이다. 금강산 관광 역시 중단하면 현대아산과 다른 기업들만 아프지 북한이 아픈가? 북한을 아프게 하려 할수록 우리가 더 많이 아프게 된다. 이 정부에는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 대응을 우려해 파주 주민들이 삐라(대북전단) 뿌리지 말라고 해도 정부는 (전단 살포 행위를) 방관한다. 개성공단 역시 남북 관계가 위험하면 차라리 직원을 철수시키던가 해야지 지금 보면 마치 북한에 이들을 인질로 잡으라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정권이 어딨나. 대북정책은 남북협력을 통해 기민적인 관계를 끊고 나가갔을 때 어떤 공통체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문제인데 현 정부는 이에 대한 비전이 없다.

또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정략적이고 주관적이다. 천안함 사태로 북한을 규탄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중국은 설득당하지 않았다. 도리어 우리만 망신을 당했다. 그래놓고 절반의 승리라고 한다. 연평도 포격 사태 때도 국제사회는 남북이 호전적으로 가고 있다며 조심하라고 했다. 남측이 연평도 포격 다음 달 서해상에서 사격 훈련을 했는데, 북이 여기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마치 북한이 한반도 안정을 관리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평화 촉진자로서의 남한의 역할이 한 방에 사라졌다.

2009년 싱가포르에서 남북(임태희-김양건)이 접촉했을 때도 (남측은) 북한이 요구한 사안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내용을 공개해버렸다. 협상은 일체 공개하지 않는게 철칙이다.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어제(21일)도 베이징에서 2차 남북 비핵화 회담이 열렸다고 하던데 이 용어는 말이 안된다. 6자회담이 북핵 관리를 위해 만든 것이고 6자회담 수석끼리 만나는 건 항상 비핵화 회담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6자회담 수석대표끼리) 많이 만났지만 비핵화 회담이라고 한 적 없다. 국민에게 이미지 정치를 하기 위해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결국 바람직한 대북정책은 현재 정부의 정책을 거꾸로 하는데 있다. 미래를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보면 남북관계를 관리할 수 있다. 현 정부의 정책에서 잘 한 점을 꼽을 수는 없지만 '반대로 하면 좋은 정책이 나온다'라는 걸 확실히 한 점은 있을 것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한반도평화포럼
'2013년 체제'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다. 2013년이 한국에서 어떤 해인지는 잘 알 것이다. 지금 잘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평가받는 이명박 정부가 퇴진하고 새 정부가 출범하는 해다.

생각하기 싫은 결과지만 한나라당이 재집권해도 포스트 이명박 시대가 시작되는 셈인데, 이 2013년을 단지 정부교체, 정권교체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열어야겠다는 취지를 담은 말이 '2013년 체제'다.

체제라는 어려운 단어를 쓴 이유는 따로 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87년 체제'가 지금까지 약 4반세기 동안 지속되면서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 정도로 큰 스케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자는 것이다. 단순히 이명박 정부보다 나은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해야겠다는 취지다.

그랬을 때 평화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6월항쟁 이후 들어선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공동선언이 정립한 기조를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단순히 복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이에 걸맞게 대한민국 내부가 개혁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종전에 분리되어 추진됐던 국내의 총체적 개혁 이슈와 남북 화해협력 과제를 맞물려 돌아가게 하자는 취지다.

이명박 정부가 어쨌든 우리 역사에 남긴 좋은 교훈 중 하나는 바로 이 점을 일깨워준 것이다. 국내 정치와 남북관계는 서로 밀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나만 잘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역사적인 과업을 남겼지만 국내에서 충분한 지지를 얻는데 실패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결과를 얻었다.

이명박에게는 4대강 사업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내 개혁에서는 기대가 없었다. 그렇지만 장사를 한 인물이라 실용적이니까 남북관계에는 일부 기대할 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명박이 처음부터 남북관계를 망쳐야겠다는 소신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국내에서 반민주적인 역주행을 하다 촛불시위에 부딪히고, 결국 냉전세력과 손잡을 수밖에 없게 돼 남북관계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엔 들었다가도 안 된 게 아닐까 한다.

또한 남북관계가 꼬이기 시작하면 국내에서 개혁을 반대하는 수구세력이 득세하게 된다. 이들은 비위에 안 맞으면 친북좌파, 빨갱이 아니냐고 하면서 토론을 할 수 없게 한다. 최근 정전사태 때도 한나라당에 있다는 누군가가 트위터에 북한 소행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지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게 북한 탓이면 누구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겠나? 게다가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빨갱이가 된다. 국내 문제와 남북 문제가 이렇게 맞물려 간다는 걸 깊이 깨닫게 한 이가 이명박이다.

2013년에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지금까지가 어떤 시대였는지에 대해 정리해야 한다. 체제라는 말을 쓰려면 지난 5년이 형편없었다는 평가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문제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완전한 말기적 증상으로 대혼란을 일으켰다고 봐야 한다.

1987년 6월항쟁은 현대사에서 정말 뜻 깊은 시민운동이었다. 4.19, 5.18, 부마항쟁도 있었지만 정권이나 헌법을 바꾸는 건 실패했다. 하지만 6월항쟁 이후로는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 과정이 진행됐다. 그런 의미에서 획기적 변화다.

6월항쟁으로 열린 건설적 동력은 민주화였지만, 두 가지가 더 있다고 본다. 하나는 경제적 자유화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재벌이 비대해진 단점도 있지만 종전의 한국 경제가 개발독재 체제로 국가의 강력한 지도와 업악에 의해 운영된데 비해 자유롭게 풀어준 것이다. 그와 동시에 탄압과 압살에 신음하던 노동운동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의 동력은 학생 운동권에서 자주와 통일이 중요한 구호였고, 실제로 통일과 민족 화해에 대한 열망이 큰 데에서 나왔다. 노태우가 군사 쿠데타의 주역 중 하나고 민정당 후보였음에도 북방정책을 취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것은 새로 열린 시대에서 이러한 동력의 기운을 탔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돌아가려면 세 가지가 선순환을 일으켜 적당한 시점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다보니 초기의 동력은 탕진되고 역작용이 나타났다. 민주화 자체도 심화되는 과정에 브레이크가 걸렸고, 경제적 자유화 역시 반시장적인 재벌 등 특권적인 경제주체만 자유로워지고 나머지는 더 억압당했다.

노동운동은 대기업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가 커지다 보니 사회 혁신의 동력을 상실했다. 통일 문제도 국내 개혁과 선순환되지 않으면서 지지를 얻지 못했고, '비핵.개방.3000'과 같은 터무니없는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당선됐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 비판할 건 많지만, 새로 시작한 시대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지 못해 말기 현상이 벌어진 것 역시 사실이다. 이를 청산했어야 했는데 우리의 실력이 모자라 청산은 커녕 역주행과 폭주의 대가를 받았다. 이명박의 '747공약'은 '칠수 있는 사기를 다 친다'는 뜻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는데, 국민을 우롱하는 공략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의 시대를 '선진화 원년'이라는 집약된 표현으로 제시했는데, 사실은 '87년 체제 사회의 말기'라고 봐야한다. 이제 이 시대를 마감하고 건설적인 동력을 되살리되 그대로가 하니라 새로운 시대를 맞는 동력을 찾아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87년 체제의 근본적 한계를 봐야하는 측면이 있다. 87년 체제는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를 청산하는데 일단 성공했지만 어디까지나 1953년 휴전 이후 굳어진 분단체제라는 토대 위해서 이뤄진 부분적 성과였다. 87년 체제가 극복하지 못한 '53년 체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되살리면서 남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독립된 통일운동가가 아닌, 자신의 일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53년 체제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는 게 '2013년 체제'의 취지다.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한반도평화포럼
앞서 들은 대로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결론는 다 나왔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이다.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천안함 관련 정부 발표를 믿는 사람은 10명 중 3명꼴이었다. 이는 국민들이 평화를 원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많은 국민들이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라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삶이 연관된다는 건 보편적 복지와도 관련이 있다. 최근 또다른 설문에서 국민의 40%가 삶의 질 개선을 바라고 있고 경제성장을 원한다고 답한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3년 전에는 이 응답률이 반대로 나왔었다. 보편적 복지가 실현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셈이다. 나머지는 우리가 하는 바에 달렸다.

이를 위해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민주진보진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치러진 대선에서 후보를 3번 냈지만 내년에는 2013년 체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야권 단일후보에 동참하지 않을까 싶다.

87년 체제에서 실질적으로 민주화 시대가 된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부터라고 한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 15년간 국민이 민주화 시대를 선택해온 셈이다. 2012년 정권이 바뀌고 평화와 복지라는 2013년 체제를 확실히 만들어 낸다면 다시 장기 집권도 가능하다.

우선 토건 경제 문제에 대한 대국민 토론을 벌여 앞으로는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돈을 반값 등록금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쓰도록 합의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삶의 질을 개선한 뒤에는 분단비용을 줄려나가면 더 많은 복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


출처  "MB 시대는 '선진화 원년' 아니라 '87년 체제'의 말기"